[인터뷰] 넷플릭스 〈중증외상센터〉 원작자 한산이가 작가
중증외상센터 의료현실…초인 ‘백강혁’에게도 버거워
“소수 의사들 사명감에만 기대면 대한민국 의료 소멸”

넷플릭스 시리즈 '중증외상센터'의 원작을 쓴 한산이가 작가는 의료 시스템을 고치지 않고 소수 의사들의 사명감에만 기대서는 양질의 의료를 유지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넷플릭스 시리즈 '중증외상센터'의 원작을 쓴 한산이가 작가는 의료 시스템을 고치지 않고 소수 의사들의 사명감에만 기대서는 양질의 의료를 유지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사진출처: 넷플릭스 드라마 '중증외상센터').

넷플릭스 시리즈 ‘중증외상센터’가 공개되자마자 반응은 폭발적이다. 중증외상센터는 답답한 한국 의료현실의 어두운 단면을 초인적인 외상외과 의사 ‘백강혁’으로 정면 돌파 하는 ‘메디컬 액션 활극’이다. 백강혁은 한계 투성이인 병원 시스템과 끝없는 위기 속에서도 압도적인 실력으로 환자를 살려낸다. 그가 수술실에 들어서는 순간, 불가능해 보이던 생존 가능성이 다시 열린다.

이 작품은 이비인후과 전문의인 한산이가 작가(본명 이낙준)가 쓴 웹 소설 〈중증외상센터: 골든아워〉가 원작이다. 지난 2011년 소말리아 해적에게 총탄을 맞은 ‘아덴만의 영웅’ 석해균 선장을 살려낸 당시 이국종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장(현 국군대전병원장)의 이야기가 모티브가 됐다. 또 그가 인턴 시절, 대형재난을 겪으며 의사로서 느꼈던 두려움도 작품에 녹여냈다.

그래서 일까. 작품 속 의료재난은 여느 때보다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귀성길에 나선 차량이 빙판길에 미끄러지면서 60중 연쇄 추돌사고가 잇따라 발생한다. 응급실은 포화되고 치료받지 못해 사망하는 환자들의 모습은 의료 체계 한계를 보여준다. 남수단에서 총상을 입은 군인을 살리기 위한 활약, 닥터헬기를 두고 벌어진 병원장과의 갈등 등도 현실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백강혁이라는 인물만큼은 허구에 가깝다.

한산이가 작가는 청년의사와 서면 인터뷰를 통해 백강혁이라는 비현실적인 캐릭터를 설정한 이유에 대해 “의료 현실이 너무 적대적이다 보니 이를 타파하기 위해서는 백강혁과 같은 초인, 먼치킨(웹 소설 등에서 강력한 힘을 가진 캐릭터)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그런 인물을 주인공으로 설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어려움이 들이닥칠 정도니 현실은 더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중증외상센터 속 의료진은 생사의 갈림길에 있는 환자를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열악한 의료현실과도 싸운다. 정부 지원금으로 운영되는 외상센터의 한계, 인력 부족은 물론, 적자를 이유로 운영 중단을 걱정해야 하는 의료 현실은 초인인 백강혁에게도 버거운 현실이다. 작가는 이같은 의료현실을 헤쳐 나가는 구조 자체가 “아포칼립스 세계관과 비슷해 보였다”고 했다.

그는 “지난 2014년을 기점으로 우리나라에 외상센터가 처음 들어섰고 정부에서 대대적인 지원을 약속하면서 상당한 성과가 있을 거란 기대가 있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며 “저수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진료비 청구액 삭감, 줄어드는 정부 지원, 늘어나는 소송 리스크 등 외상센터는 적대적인 시스템을 상대로 싸워야 한다. 이는 웹 소설에서 자주 보이는 아포칼립스적인 세계관과 비슷해 보였다”고 말했다.

중증외상센터의 폭발적인 인기 한편에 여전히 열악한 의료현실에 대해서도 씁쓸해 했다. 언제까지나 의료진의 사명감에만 기대 환자 생명을 살릴 수는 없다고 했다. 결국 의료 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는 “대한민국은 선진국에 들어선지 오래지만 아직도 사람을 살리는 의학 분야에서 만큼은 인색하다”며 “최근 망막박리를 겪으며 그런 생각이 더 들었다. 생명과 직결되고 정말 필수적인 부분에 대한 시스템을 고치지 않고서는 소수 의사들의 사명감에만 기대려고 한다면 언젠가는 반드시 대한민국 의료는 소멸할 것이다. 사명감도 닳아 없어지기 마련”이라고 했다.

넷플릭스 공개 10일 만에 글로벌 TV쇼 부문 1위, 전 세계 17개국 1위를 석권하며 여전히 상위 10위권에서 ‘롱런’하고 있는 인기 비결을 묻자 원작을 뛰어넘는 ‘초월작’을 만들어 준 드라마팀에게 공을 돌렸다. 그는 “원작도 웹 소설에서 인기작이긴 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며 “확실히 2차 창작물에 대한 복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최태강 작가와 이도윤 감독이 초월작으로 만들어 준 덕분”이라고 했다.

그는 작품을 통해 독자를 만나면서 느끼는 희열에 푹 빠져있다. 삼성서울병원에서 이비인후과 전공의 과정을 마친 뒤, 공군 군의관으로 복무하던 시절 읽기만 할 게 아니라 ‘나도 한번 써볼까’라는 생각에 펜을 들기 시작해 데뷔한 작품이 ‘군의관, 이계가다’이다. 앞으로 작가로서의 삶에 더 집중할 계획이다. 법의학물은 물론 판타지, 무협 장르에도 도전해 보고 싶다고 했다.

그는 “장르 소설을 너무 좋아했다. 그러다 직접 써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마침 시간적 여유가 생겨 도전했다. 글을 쓰는 것 자체가 너무 재밌기도 하다. 의도 했던 재미를 독자들이 느꼈다는 걸 댓글 등을 통해 확인할 때 희열을 느낀다. 계속해서 다양하고 재미있는 작품으로 독자들과 만나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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