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트루다 급여 확대, 2년째 정체…'폐암 악몽' 반복되나
암종 경계 허문 면역항암제, 심사 방식은 '제자리걸음'
2015년 3월 면역항암제 '키트루다(성분명 펨브롤리주맙)'가 국내에서 최초 허가된 이래 올해로 10년차를 맞았다. 그 사이 면역관문억제제의 혁신적인 치료 효과는 이미 다수의 임상 연구와 실전 치료에서 입증됐고, 암종을 초월한 활용 가능성 또한 의료계에서 수년째 강조되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급여 확대 심사는 여전히 지지부진하다. 2023년 6월 미충족 의료 수요가 높은 13개 암종에 대한 키트루다의 급여 확대 신청이 이뤄졌고, 이후 추가 제출을 거쳐 현재 17개 적응증이 심사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반복된 논의에도 정부는 2년이 다 되도록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이는 2017년 이후 4년간 비소세포폐암 1차 치료에 급여 확대가 늦어졌던 전례를 떠올리게 한다. 당시에도 치료 필요성은 분명했지만, 정부는 재정 부담과 기존 치료제와의 형평성을 이유로 결정을 미루면서 수많은 환자들이 글로벌 표준 치료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결국 폐암에서의 급여 확대는 2022년이 되어서야 이뤄졌고, 지금의 키트루다 역시 같은 길을 걷고 있다.
키트루다 급여 심사의 핵심 쟁점은 '재정분담안'이다. 정부는 제약사에게 재정 부담을 분담할 방안을 요구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논의가 반복되고 있다. 그러나 이미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표준 치료법에 대한 급여 논의가 2년째 표류하는 것은 정책적 한계를 드러내는 것과 다름없다.
현재 면역항암요법은 암종의 경계를 허무는 치료법으로 인정받고 있다. 특히, 키트루다는 'MSI-H' 또는 'dMMR' 변이를 가진 다양한 암종에서 치료 효과를 보이며, 다수의 고형암에서 표준 치료제로 자리 잡았다. 미국, 유럽, 일본 등 주요 국가에서는 키트루다의 적응증 확대가 빠르게 이뤄졌고, 보험급여 적용도 보다 유연한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반면 한국에서는 정부가 재정 부담을 이유로 결정을 늦추면서, 정작 필요한 환자들이 적절한 시기에 치료받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치료 패러다임이 바뀐 지 10년이 지나도록, 정부는 기존의 심사 방식을 고수하며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면역항암제는 개발 초기부터 수백 개의 글로벌 임상시험을 진행하며, 향후 특정 암종에 국한되지 않고 광범위한 암 치료에 활용될 것이라는 것을 시사해 왔다. 그렇다면 정부는 연구 용역을 통해서라도 이러한 암종불문 약제를 건강보험 체계에서 어떻게 다룰 것인지 고민했어야 했다.
하지만 정부는 새로운 급여 모델을 강구하기보다 기존의 심사 방식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이는 시대 변화를 외면한 채, 기존 관행만을 고수하는 행정 편의주의적인 태도다. 더구나 '적응증별 약가제도' 등 제약업계에서 제안하고 있는 새로운 정책적 접근 방식은 거부하면서, 단순히 제약사들에게 재정분담안을 지속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일종의 직무유기다.
암 환자에게 시간은 곧 생명이다. 치료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정책적 결단 없이, 계속해서 재정 부담을 이유로 재논의만 이어가는 것은 환자들에게 치료 기회를 박탈하는 것과 같다.
정부는 더 이상 책임을 미룰 수 없다. 새로운 치료 패러다임에 맞는 급여 정책을 마련하는 것은 국가의 책무다. 폐암 급여 당시 4년간의 악몽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지금 당장 실질적인 논의와 결정을 시작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