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석 교수 "교수 파업 '한방' 될 수 있었다…현장 지킨 게 패착"
문재영 교수 "의사도 파업 가능하나 환자 잃어선 안 돼"
의대생들, 휴학에 대한 고민 다양…"이해관계 따질 수밖에"
의정 갈등으로 전공의와 의대생들이 병원과 학교를 떠난지 1년이 다 돼가면서 교수들도 이대로 ‘자리를 지켜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반면 교수들마저 현장을 이탈하면 의사와 환자 간 관계까지 파괴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단국의대 가정의학과 정유석 교수는 지난 23일 연세의대 종합관에서 '의료환경 변화와 의료윤리'를 주제로 열린 한국의료윤리학회·한국간호윤리학회 추계합동학술대회에서 “(이번 사태에서) 여전히 아쉬운 점은 교수들의 ‘어정쩡함’”이라며 “전공의도, 학생도 (정부에) 위협이 되지 못했다면, 칼자루는 교수들에게 있었다. 전공의의 빈자리를 지키고 있던 교수들의 입장을 대변하자면 '설마 정부가 이 정도일 줄 몰랐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우리가 조금 버티면 상황이 악화되는 것을 정부가 인지하고 양보할 것으 생각했다. 최소한의 양심을 기대했다”며 “그런데 총선 이후에도 (바뀌지 않을 것을) 알아차리고 결단해야 했다”고 말했다.
대학병원 교수들이 '단기간의 강도 높은 파업’을 했다면 "정부에 큰 위협이 됐을 것"이라고도 했다.
정 교수는 “투쟁으로 목표를 달성하려면 위협적인 한 방이 필요하다”며 “당시 상황에서 가장 효율적인 투쟁은 대학병원 교수들의 단기간의 강도 높은 파업이었다. 그러나 교수들이 현장을 지키면서 정부에 큰 위협이 되지 않았다. 선의의 마음으로 현장에서 소진을 감수했던 게 오히려 패착이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공의와 의대생들이 사직과 휴학을 통해 피해를 입고 있는 상황에서 교수들도 대학병원에서 자리를 지켜야 할지 고민할 때가 왔다고 했다.
정 교수는 “의대생의 휴학·유급이 확정되려는 시점인데 교수들이 계속 침묵해도 되는가”라며 “사제(師弟) 윤리는 예컨대 부모와 자식 간 관계와 가장 유사하다. 자식이 억울하게 도리질을 당하고 있는데 묵묵히 직장과 살림하는 부모가 정상인가. 매우 고민된다”고 했다.
이어 “1학기에는 학생들이 유급되면 교수들도 다 함께 사표를 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까지 끌어오다가 이젠 ‘휴학 승인만 해도 다행’인 상태가 됐다”며 “교수들도 ‘힘들다’며 자리를 지키고 있어도 되는지, 내년이 되기 전까지 스스로에게 계속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충남대병원 중환자의학과 문재영 교수는 교수들까지 사직에 동참하면 의사와 환자 간 관계를 잃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나마 교수들이 병원 현장에 남으면서 ‘최소한의 신뢰’가 생긴 것이라고도 했다.
문 교수는 “환자와의 관계를 잃고 우리가 무엇을 얻을 수 있나. 정부를 이겼을 때, (진정) 이겼다고 할 수 있나”라며 “의사들은 ‘우리도 피해자이자 약자’라고 말하지만 사회에서는 100번을 이야기해도 통하지 않는다”고 했다.
문 교수는 “의사 파업이 정당화되려면 명분이 있어야 한다. 국민에게 지지를 받아야 명분을 얻고, 정부를 설득할 수 있다”며 “많은 이들이 (교수들에게) 아쉽다고 하지만 그나마 현장을 지켰기에 최소한의 신뢰는 남겼다고 생각한다. 모두 나가버리면 돌아올 학생은 누가 가르칠 것인가”라고 되물었다.
의사들도 "파업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그 대상은 병원장 등 '사업주'여야지 국민과 환자가 돼선 안 된다고도 했다. 문 교수는 “국민과 환자를 잃어버리면 다음에 우리는 아무 말도 못 한다. 정부가 원망스럽지만 사직·파업도 환자를 위해서 하는 것 아닌가. 환자의 피해를 감수하면서까지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이에 정 교수는 현재의 환자뿐 아니라 미래의 환자도 생각할 필요해야 한다고 했다. 의대 정원 증원이 향후 국민 건강에 불이익이 될 것이 분명하다면, 그 자체가 투쟁에 뛰어들 명분이라는 것이다.
정 교수는 “지금 당장 나에게 찾아오는 환자를 봐야 하는 의무에 대한 책임도 중요하다”며 “그러나 현재의 환자와 미래의 환자는 다르다. 의사들이 전문가로서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이 미래의 환자에게 큰 불이익이라고 생각된다면 의사와 환자의 관계 때문에 투쟁을 주저해야 할지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미래에 대한 관점, 그리고 환자 개인에 대한 피해, 사회 전체적인 관점에서의 환자 피해, 의사와 환자 간 관계를 모두 고려하면 의사 파업이 불가능하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학회를 참관한 의대생 A씨는 아직 의사가 아닌 만큼 의사와 환자 간 관계, 윤리의 관점까지 고려하기엔 어렵다고 밝혔다. 다만 의대생들 사이에서 휴학에 대한 여러 고민이나 다양한 의견이 많아지는 것은 사실이라고 전했다.
A씨는 “의사로서 환자를 보는 입장이라면 어떻게 행동해야 윤리적인지 고민하는 게 의미가 있었을 것”이라면서도 “의사가 파업을 하면 안 된다,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 등에 큰 의미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주변 의대생들의 의견은 매우 다양하다”며 “2년까지는 휴학하고 싶지 않다는 의견도 있고, 정부로부터 얻어낸 것이 없는 만큼 복귀할 수 없다는 입장도 있다. 차라리 빨리 복귀해서 졸업하고 싶다는 의견도 있다. 학생들 입장에서는 당장의 이해관계를 따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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