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섬유증 치료제 '오페브(성분명 닌테다닙)'가 특허 만료 시점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보험 급여권 진입이 가시화되면서 한국에서의 신약 접근성 문제가 다시금 불거지고 있다.

오페브는 2016년 10월 21일 국내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허가를 받아 한국 시장에 도입됐지만, 8년 가까이 비급여 상태로 남아 있다.

베링거인겔하임은 그동안 오페브의 급여권 진입을 위해 여러 차례 시도했으나, 높은 약가와 대체제인 '피르페니돈'과의 비교 문제로 인해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2025년 1월 오페브의 특허 만료를 앞두고 베링거인겔하임은 다시금 급여 도전에 나섰다. 올해 3월 오페브의 경제성평가 자료를 제출하고 현재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부터 급여 심사를 받고 있다.다가오는 약제급여평가위원회 심의 안건으로 오를 것으로 알려졌다.

그 사이 국내 제약사들은 오페브 특허 만료 시기에 맞춰 하나둘 제네릭 개발에 뛰어들었다. 영진약품을 비롯해 대웅제약, 현대약품, 삼아제약, 종근당 등 다수의 제약사들이 오페브 제네릭의 생동성 시험을 마쳤거나 허가 신청을 준비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때문에 설령 오페브가 이번 급여 심사를 통과해 급여권에 진입한다 해도 특허 만료 이후 '닌테다닙'의 약가는 현재의 절반 수준으로 낮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 상황을 두고 정부가 재정 부담이 줄 때까지 급여 적용을 미뤄온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고가 약제의 급여 적용을 최대한 늦춰 재정 부담을 줄이려는 정부의 전략적 결정이라는 분석이다.

그도 그럴 것이 오페브는 이미 해외 여러 국가에선 급여를 적용을 받아 사용돼 왔다. 그러나 국내 환자들은 지난 8년간 월 300만원이 넘는 오페브 치료 비용을 고스란히 감당해야 했다. 정부가 '환자'보다는 '비용 절감'을 우선시해 급여 적용을 늦춘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오페브 사례는 글로벌 제약사들이 신약 출시 시 한국 시장을 우선순위에서 제외하는 '코리아패싱'을 이야기할 때 대표적으로 언급된다. 국내 약가 정책의 낮은 보상체계와 복잡한 급여 심사 과정으로 글로벌 제약사들은 한국 시장을 우선순위에 두지 않는 상황이 전개되는 것. 그 피해는 국내 환자들만 고스란히 떠안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 반복되면 글로벌 제약사들은 혁신 신약 도입 시 한국을 후순위로 밀어낼 가능성이 커지고, 국내 환자들은 최신 치료제를 제때 제공받기 어려워진다.

이는 단순히 우려로만 그칠 문제가 아니다. 한국의 약가가 다른 국가들 약가의 참조 기준이 됐기 때문. 중국 등 여러 국가들이 한국의 약가를 참조 기준으로 삼겠다고 밝히며, 한국 약가의 낮은 보상 체계가 단순한 국내 문제를 넘어 글로벌 시장에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이에 글로벌 제약사들은 신약 전략을 세우면서 한국의 낮은 약가를 이유로 한국 출시를 주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약가 정책의 변화 없이는 더이상 코리아패싱이 우려가 아닌 현실로 자리잡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이번 오페브 사례는 코리아패싱의 문제를 명확히 보여주는 동시에 개선의 필요성을 시사하고 있다.

급여 심사 절차의 효율성 제고, 국제적 수준을 반영한 약가 조정, 그리고 약제 접근성 개선을 위한 정책 변화가 없다면, 임상시험 시장은 물론 한국의 제약 시장 경쟁력은 점점 더 떨어질 것이다. 앞다퉈 신약을 개발 중인 국내 제약사들의 글로벌 경쟁력에도 영향을 미칠 것은 자명하다.

정부는 혁신 신약이 환자들에게 신속히 제공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제도를 개선해야 하며, 이를 통해 글로벌 제약사들이 한국 시장을 외면하지 않도록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오페브 사례는 국내 제약 시장이 글로벌 제약사, 환자의 요구를 균형있게 반영할 필요가 있음을 상기시켜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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