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 원산협 심포지엄서 환경 조성 강조
"법·제도 개선하고 기술·서비스 개발로 저변 넓혀야"
정부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 계도기간이 이달 끝난다. 정부는 비대면 진료 제도화를 공언하고 관련 산업 활성화를 강조하고 있다. 산업계는 비대면 진료를 필두로 원격의료 가치를 내세우며 규제 완화를 요구하고 있다.
의료계 시각은 다르다. 의사가 필요하면 비대면 진료 할 수 있고 소비자가 원하는 대로 원격의료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환경부터 제대로 조성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지난 8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열린 원격의료산업협의회 출범 2주년 심포지엄에서 의료계 전문가들은 한국 의료 환경에서 원격의료가 나아갈 방향을 논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대한외과의사회 이세라 회장(서울시의사회 부회장)은 "비대면 진료를 원하는 의사도 분명 있다. 그러나 의사가 비대면 진료를 할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이 갖춰지지 않았다"며 "의료법 등 법률 규정 때문에 제대로 못 하고 해 봤자 돌아오는 이익도 없다"고 지적했다.
이 회장은 "의사는 의료기관에서만 진료해야 한다는 의료법 규정을 바꿔야 한다. 또한 현재 정부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의 진료량 기준을 비율이 아니라 인원으로 변경해야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막을 수 있다. 약품 배송 문제는 비대면 진료에 한해 선택분업을 도입해 풀 수 있다"고 했다.
서울대병원 핵의학과 강건욱 교수는 의료 데이터 규제도 완화해야 한다고 했다. 정부는 디지털 헬스케어를 활성화하겠다며 각종 논의와 제도를 이끌기보다 뒤에서 조율하고 감독하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했다.
강 교수는 "의료 서비스가 원격 기술을 도입하고 디지털화를 이뤄도 정작 서비스에 쓸 데이터가 소비자에게 없다. 금융 분야는 당국이 관리·감독하고 데이터는 민간에 넘겨줬다. 그런데 의료는 '민감 정보'라고 주지 않는다. 정말 혈당 수치가 은행 계좌 비밀번호보다 더 민감한 정보라고 보느냐"고 했다.
강 교수는 "이런 논리로 정부가 원격의료 관련 의제를 주도하면서 오히려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며 "소비자가 본인 데이터를 보유하고 (원격의료) 기업이 데이터를 검증하고 분석하고 이에 맞춰 처방하고 진료하는 데이터 중심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 정부는 전면이 아니라 뒤에서 인증 사업과 모니터링을 맡으면 된다"고 했다.
산업계가 원격의료 저변 확대를 위해 더 노력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왔다. 진료 영역으로 원격의료를 국한하면 의료계와 국민을 설득할 가치 창출이 어렵다는 것이다.
서울대병원 공공진료센터 권용진 교수는 "원격의료에는 원격 기술을 활용한 다양한 서비스가 존재한다. 원격의료가 만드는 가치는 진료 외에도 많다. 그러나 지금은 진료 접근성 차원에서만 원격의료 가치를 논하고 있다"고 했다.
권 교수는 "시범사업으로 안전성을 입증하면서 가치 창출 방안도 함께 모색해야 한다. 산업계가 이를 준비해야 한다. 국민이 '예전과 다르다'고 체감할 때 원격의료 가치도 발현되고 이를 이용하라고 소비자를 설득할 수 있다. 소비자가 설득돼야 구매도 이뤄진다"고 했다.
소비자가 원하는 기술과 서비스를 개발해 원격의료 범위를 넓히면 수가를 전제로 한 비즈니스 모델을 벗어날 수 있다고 했다.
권 교수는 "원격 기술을 활용해 지자체나 의료기관, 개인이 원하는 서비스로 개발 영역을 넓혀야 한다. 주민 대상 건강 프로그램을 활성화하는 기술이라면 지자체가 구매한다. 비용 절감에 도움 되는 원격의료 기술이면 의료기관이 도입한다. 개인 역시 필요했던 건강관리 서비스라면 보험 여부와 관계 없이 산다"고 했다.
권 교수는 "원격의료 구매자를 보험자로 국한하면 안 된다. 건강보험 안에만 존재하는 수익 모델은 시대에 뒤처진다"며 "소비자가 어떻게 돈을 내게 할지 고민해야지 단지 '보험자가 돈을 낸다'는 명제에 갇힌 접근법은 버릴 때"라고 지적했다.
이세라 부회장은 진료 분야도 건강보험 급여 등재를 기다리는 대신 비급여 항목에서 시작하는 방법이 있다고 했다.
이 부회장은 "데이터를 통해 안전성과 유효성을 확보해야 건강보험 급여도 가능한데 갈 길이 멀다. 정부는 비대면 진료에 대한 데이터나 통계를 제대로 확보하지도 않았다"고 비판했다.
이 부회장은 "비대면 진료에 대한 수요는 분명 존재한다. 비급여로라도 비대면 진료를 받겠다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다면 비급여부터 시작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면서 "원격의료라는 닫힌 문을 열 열쇠는 이렇게 준비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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