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무사 봉합 수술 맡긴 산부인과 수간호사는 처벌 면해
"간무사는 간호사와 달리 병원급 수술장 들어가면 안 돼"
간무사 처벌 이어질 수밖에 없는 의료 현장 되돌아봐야

간호조무사에게 무면허 의료행위를 지시한 울산 A병원에서 간무사와 함께 피부 봉합을 맡았던 수간호사는 기소되지 않았다(사진 출처: 게티이미지).
간호조무사에게 무면허 의료행위를 지시한 울산 A병원에서 간무사와 함께 피부 봉합을 맡았던 수간호사는 기소되지 않았다(사진 출처: 게티이미지).

간호조무사에게 무면허 의료행위를 지시한 혐의로 산부인과 전문의 6명이 한꺼번에 유를 선고 받은 울산 A병원에는 피부 봉합 수술에 참여한 의료인이 1명 더 있다. 재판부가 "3년 6개월간 A병원에서 간호조무사나 간호사가 진행한 봉합 수술이 622회에 이른다"고 한 대목에 나오는 간호사다. 그러나 간호조무사와 달리 기소돼 재판을 받지 않았다.

청년의사가 입수한 울산지방법원 판결문에는 이 사건 피고인인 의사 6명과 간호조무사 외에 '수간호사 B'가 등장한다. 간호사 B씨는 구속된 간호조무사 C씨보다 앞서 지난 2011년 A병원에 입사해 수술실 수간호사로 일했다. 지난 2014년 12월경 병원장 등 산부인과 의사들은 간호조무사 C씨는 물론 수간호사인 B씨에게도 수술 마무리 단계 피부 봉합을 맡겼다. 법령과 보건복지부 유권해석상 봉합은 반드시 의사가 수행해야 하는 행위로 간호사에게 위임할 수 없다.

법원이 공개한 범죄일람표에 따르면 이후 간호사 B씨는 지난 2015년 11월까지 약 11개월 동안 총 7차례에 걸쳐 제왕절개 마무리 피부 봉합 수술을 했다. 그러나 피고인으로 재판받은 C씨와 달리 B씨는 법정에 서지 않았다. 울산지방법원 공보실은 "B씨는 이 사건으로 기소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지난 2020년 경찰 수사 발표에 따르면 의사 6명과 간호조무사 C씨를 제외한 병원 의료진 10여명은 기소유예 처분에 그쳤다.

이에 대해 법률사무소 선의 오지은 변호사는 4일 청년의사와 통화에서 "간호사와 달리 간호조무사는 수술 참여 자체가 법을 넘어서는 행위라 법리적으로 방어할 여지가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오 변호사는 간호사 출신이다.

의료인이 아닌 간호조무사는 원칙적으로 간호사를 보조하는 업무를 수행한다. 의사 지도하에 간호와 진료보조 행위를 할 수 있는 건 의원급 의료기관으로 제한된다.

사건이 벌어진 울산 A병원은 약 40개 병상을 갖춘 병원급 의료기관이다. 수술실 수간호사인 B씨와 달리 간호조무사 C씨는 "수술장에 들어와 환자 손을 잡는 순간"부터 의료법 위반 문제가 생기는 게 오 변호사의 설명이다. 간호사처럼 의료인도 아니고 처음부터 업무범위를 벗어나기 때문에 "의사 지도·감독이 있었다"는 해명도 받아들여지기 어렵다고 했다.

오 변호사는 "간호조무사가 의원급 의료기관에서 간호사를 대신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간호조무사는 수술장에 들어와서는 안 된다. 병원급 의료기관부터는 수술 기구 전달을 간호사가 해야 한다"면서 "병원급에서는 간호조무사의 주사 행위도 의료법 위반인데 이를 인지하지 못했다가 의료기관 간에 분쟁이 발생하기도 한다"고 했다.

오 변호사는"병원에 따라 의사 인력 부족이라는 현실적인 이유로 의사 묵인하에 간호사가 업무를 대신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간호조무사는 그런 묵인의 대상에조차 포함되지 않는다"면서 "그런데 현장에서 간호사조차 부족하니 간호조무사들이 이 일을 하고 있다. '이가 없으니 잇몸으로 살자'는 격"이라고 했다.

이처럼 수술 수요에 비해 인력이 부족한 개원가에서 간호조무사는 대학병원의 PA(Physician Assistant) 같은 역할을 맡게 되고 무면허·무허가 의료행위가 적발되면 그만큼 사법처리 대상이 될 확률도 높아진다. 지난 2016년 발생한 권대희 씨 사망사건이나 지난 2021년 척추전문병원 대리 수술 사건도 의사와 함께 간호조무사가 기소됐다.

불법 대리 수술에 참여하는 간호조무사가 처벌을 피하기 위한 '방패' 역할이 되는 사례도 있다고 했다. 오 변호사는 진료 기록을 허위로 꾸며 수술 참여자를 숨기고 의사 지시로 이뤄진 무면허 의료행위를 "간호사와 간호조무사 업무 분담 과정에서 벌어진 일로 책임 돌리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수술 기록으로 간호사와 간호조무사 참여가 입증돼 병원장과 간호조무사가 나란히 구속된 울산 A병원이 "그나마 양심적인 사례"라고 했다.

병원과 협의해 '총알받이'로 나서는 간호조무사도 적지 않다고 했다. 면허제인 의사·간호사와 달리 자격제인 간호조무사는 '위험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이유다. 위법 사유를 떠맡는 대신 병원이 변호사 비용부터 벌금을 대납해주거나 소송 이후에도 고용을 보장하는 식으로 협의가 이뤄진다.

오 변호사는 "이외에도 알려지지 않은 사례가 많다. 의사·간호사 등 의료진 부족으로 간호조무사가 그 자리를 채우는 한 앞으로 대리 수술 사건에서 처벌되는 간호조무사도 계속 나올 수밖에 없다"면서 "왜 간호조무사가 자주 기소되느냐가 아니라 왜 의료 현장은 간호조무사에게 그런 일을 시키는가를 돌아볼 때"라고 했다.

저작권자 © 청년의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