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구로병원 신장내과 권영주 교수, 현실과 동떨어진 급여 기준 지적
내년 파브리병 새 가이드라인도 1차 경구제, 2차 ERT로 권고 예정

희귀질환 파브리병은 얼마 전까지 정맥주사인 '효소대체요법(ERT)'이 유일했으나 최근 경구제가 새로운 치료 옵션으로 등장하면서, ERT와 경구제를 효과적으로 사용해 환자 접근성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지만 현재 급여 기준은 이러한 특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전문가 지적이 나왔다.

고대구로병원 신장내과 권영주 교수는 최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현재 급여 조건상으로는 ERT가 1차, 경구제는 2차 약제로 지정돼 있지만 치료를 갓 시작하는 환자들에겐 1차로 경구제를 쓰고 그 뒤에 ERT를 쓰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지적의 이유로 두 약제가 지닌 서로 다른 특성을 꼽았다.

정맥주사인 ERT는 파브리병 진단을 받은 환자라면 범용으로 사용이 가능하다. 하지만 ERT 치료를 받기 위해서는 환자가 2주마다 병원을 방문해 수 시간 동안 주사를 맞아야 한다. 파브리병은 평생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환자들이 2주에 한 번씩 병원을 가야한다는 점은 큰 부담이다.

반면 경구제는 이틀에 한 알 경구로 복용하므로 환자 편의성을 크게 높인 것이 특징이다. 특히 파브리병은 유전성 질환으로 빠른 진단과 치료가 무엇보다 중요한데, 경구제는 어린아이들도 어려움 없이 치료를 시작할 수 있도록 돕는다.

하지만 모든 파브리병 환자가 경구제를 복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경구제는 효소를 안정화시키는 역할이기 때문에 효소가 전혀 없는 환자는 경구제가 소용이 없다. 유전자 변이 중 효소를 조금이라도 생성하는 경우에 경구제를 쓸 수 있다. 또 신장 기능이 어느 정도 유지되는 경우에 경구제가 적합하다.

사회생활이나 학업 등 한창 활동이 활발해 병원 방문이 쉽지 않은 젊은층은 격주마다 병원을 방문해야 하는 부담감에 치료를 시작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따라서 접근성을 낮추기 위해 경구제 복용 대상자라면 치료 초기에 경구제를 쓰다가 ERT 등 다른 치료법으로 넘어가는 방식이 더 효과적이라는 것이 권 교수 생각이다.

실제 미국과 유럽의 경우 경구제를 1차 약제로 쓰고 있다. 그런데 국내에서는 12개월 이상 효소대체요법을 실시한 경우에 경구제를 쓰는 조건으로 급여가 인정된다. 즉, 국내 급여 기준에 따르면 경구제를 2차 약제로 쓸 수밖에 없는 상황.

이에 학회가 먼저 나섰다. 대한신장학회 산하 파브리연구회는 실제 약제의 특성을 반영해 파브리병 치료 가이드라인 개정안을 준비 중이다. 권 교수에 따르면, 개정되는 가이드라인은 경구제 사용이 가능한 환자의 경우 1차 약제로 경구제를 먼저 사용하고 2차 약제로 주사제를 권고하는 내용을 담는다. 새 가이드라인은 내년에 공개된다.

다음은 파브리병과 치료 약제에 대한 권 교수와의 일문일답.

고대구로병원 신장내과 권영주 교수

-파브리병은 질환 자체도 생소하고 진단 자체도 힘들다고 알려져 있다.
파브리병은 효소가 결핍되어 생기는 유전질환이다. 해당 효소가 없으면 지질 성분이 혈관세포 등에 쌓이면서 혈관이 많은 신장, 심장, 뇌와 같은 장기에 문제를 일으킨다. 국내 파브리병으로 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는 150~180명인데, 아직 진단받지 못한 환자가 많아 실제 유병률은 이보다 3~4배 더 높을 것으로 추정된다.

파브리병 진단이 쉽지 않은 이유는 증상이 모호하기 때문이다. 소아 환자들의 경우 복통, 손발의 타는 듯한 통증, 운동 후에도 땀이 나지 않는 등 애매모호한 증상이 나타난다. 아이가 이러한 통증을 호소하더라도 부모들이 이를 꾀병으로 오인할 수 있어 진단으로 이어지기가 어렵고, 병원에 가더라도 통상적인 대증치료를 받곤 한다. 그 이후에는 신장질환, 심장질환, 뇌질환 등으로 증상이 나타나는데, 딱히 의심하지 않으면 파브리병이 질환의 원인이라고 감별하기가 어려워 이 시기에도 파브리병의 진단이 어렵다.

또 유전질환을 잘 알리지 않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성향 때문이기도 하다. 파브리병은 유전질환인 만큼 환자 1명을 중심으로 가계도를 그려보면 그 중 파브리병이 의심되는 친척들을 알아볼 수 있다. 그러나 환자들이 친척에게 이에 대해 잘 말하지 않는 편이다. 그동안 연락이 뜸했던 친척에게 좋지 않은 소식을 전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의료진 입장에서도 개인정보 등의 이유로 연락을 취할 수 없어 안타깝다. 유전질환에 대한 인식이 달라질 필요가 있다.

-파브리병만의 특이 증상이 있나. 혹은 신장 등 질환에서 파브리병을 의심할 만한 부분이 있다면.
전형적인 파브리병은 앞서 말한 증상이 소아기부터 나타난다. 비전형적인 경우에는 더 늦게 신장, 심장, 뇌 등에서 증상이 나타난다. 신장의 경우 단백뇨가 주증상으로, 방치할 경우 만성신부전으로 진행된다. 따라서 경미한 단백뇨, 즉 미세알부민뇨가 나타나는 시기에 치료가 필요하다. 파브리병이 뇌 질환으로 나타날 경우, 50대 정도에선 뇌졸중 형태가 MRI 상에서 일반 뇌졸중과는 약간 다르다. 심장의 경우 심장비대증이 주로 발병하는데, 흔한 증상이지만 고혈압 없는 심비대라면 파브리병을 의심해볼 수 있다.

성인 남성 환자는 먼저 신장질환, 심장질환, 뇌혈관질환 여부를 살펴보고 가계도, 소아 때의 통증 경험 여부 등을 통해 파브리병이 의심된다면 혈액검사로 효소 수치를 검사한다.

여성의 경우 유전자 변이에 따라 효소 수치가 다양하게 나타날 뿐만 아니라 심지어 정상으로 나타날 수도 있기 때문에 진단이 더 어렵다. 설령 증상이 경미해 파브리병을 전혀 의심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이 여성에게서 태어난 아들은 파브리병으로 증상이 나타날 확률이 굉장히 높다. 따라서 친척 간 파브리병에 대한 정보를 사전에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동안 파브리병 치료는 ERT가 유일했는데 지난 7월 세계 최초 경구용 치료제 '갈라포드'가 국내 출시됐다.
현재 우리나라 파브리병 치료제의 보험 급여 기준은 호주의 기준에 따라 경구제는 2차 약제로 지정돼 있다. 즉 우리나라에서는 1차 약제인 주사제로 1년 정도 치료를 진행한 이후에 경구제로 전환할 수 있다. 따라서 경구제는 신규 환자보다 기존에 주사 치료를 받고 있던 환자들에서 전환치료로 처방이 이뤄지고 있다.

경구제는 효소를 안정화시키는 역할을 하므로 효소를 어느 정도 가지고 있는 환자들만 사용할 수 있다. 효소가 전혀 없는 환자라면 ERT 치료를 받아야 한다. 효소의 양은 유전자 변이에 따라 결정되는 것으로 경구제 사용 가능 여부를 먼저 확인해야 한다. 사구체여과율이 30㎖/min/1.73㎡ 이상이면서 유전자 변이 상태가 경구제 사용에 적합하다면 경구제로 변경이 가능하다.

-임상현장의로서 경구제 등장은 어떤 의의가 있다고 보나.특히 경구제가 필요한 환자들이 있다면.
파브리병 환우회에서 신장질환 강의를 하던 중 환자로부터, 본인의 자녀 또한 파브리병 환자가 될 텐데 자녀의 경우 몇 살부터 치료를 시작하는 것이 좋냐는 질문을 받았다. 이에 치료는 일찍 시작할수록 좋지만, 주사 치료를 할 경우 아이가 2주마다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는 것에 대해 충분히 이해를 할 수 있는 연령이 돼야 한다고 답했다. 이제는 경구제의 등장으로 좀 더 쉽게 조기 치료가 가능해졌다.

소아뿐 아니라 젊은 연령대의 성인에게도 경구제는 굉장히 좋은 치료 옵션이 될 수 있다. 파브리병은 신장, 뇌, 심장 순서로 장기손상이 진행된다. 환자가 전혀 치료를 받지 않으면 40대부터 신장 기능이 나빠져 그 전에 치료를 시작하는 것이 좋다. 그런데 이 시기는 가장 사회생활이 활발한 연령층이므로 지금까지의 생활패턴을 완전히 바꿔 2주에 한 번씩 병원에 방문하는 것이 큰 부담이다. 이 때문에 환자들이 제때 병원에 오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개인적으로 사회생활이나 학업처럼 한창 활동이 많은 연령의 환자들에겐 (경구제 적용 가능 대상자라면) 경구제를 1차 약제로 사용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미국과 유럽은 경구제를 1차 약제로 쓰고 있으며, 호주와 우리나라에서만 2차 약제에 해당된다. 접근성을 생각한다면 경구제를 쓰다가 다른 치료법으로 바꾸는 것이 더 유용하다고 보는데, 우리나라는 반대로 되어있다.

-개정을 앞둔 파브리병 치료 가이드라인에 이러한 내용이 반영되나.
그렇다. 경구제를 사용할 수 있는 환자들은 1차 약제로 경구제를 먼저 사용하고 2차 약제로 주사제를 권고할 예정이다. 이 내용을 포함시키다 보니 개정안 발표가 예정보다 늦어졌다. 현재 원고 작업을 마쳤고 내년 학회지에 발표할 시기를 논의 중이다.

다만 새 가이드라인의 내용이 급여 차원에서 법적으로 반영되기까지는 시간이 더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이 내용을 포함해 파브리병 조기 치료를 권고하는 방안 등을 정부와 지속적으로 논의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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