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사 신문 청년의사] 후방지역 병원 개설과 장비확충을 중심으로 한 ‘의무발전 5개년 계획’에 대한 현직 군의관들의 반응은 한마디로 냉담했다. 이 계획을 수립한 국방부 의무발전T/F팀은 대부분 의료현장을 떠나 있는 사람들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현장의 실정을 잘 모른 채 만들어진 대책이라는 것이다. 본지는 사단급 실무 부대와 군 병원 등 군 의료 체계 현장에서 복무한 경험이 있거나 복무 중인 여러 군의관들의 주장을 취합, 다음과 같은 대안을 제시해본다.

첫째, 사단급 실무부대부터 의료장비 확충하라

군 의료의 질적인 수준을 높이기 위해 가장 시급하게 해야 할 일은 대형병원을 짓거나 후방 병원의 수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최일선에서 진료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사단급 의료시설을 먼저 현대화해야 한다.

현재 가장 많은 수의 병사들이 배치되어 있는 곳은 경기 북부와 강원도 지역인데, 이 지역은 군 의료시설은 물론 민간의료 시설도 부족한 곳이다. 그러나 사단 부속 의무대에는 군의관이 배치돼 있을 뿐, 기본적인 검사장비의 수가 부족할 뿐만 아니라, 장비의 노후화로 제대로 된 진단을 수행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노충국씨 사건을 비롯, 잇따라 터져 나오고 있는 병사들의 사망사건 소식을 접하고 있는 군의관들은 “기도하는 마음으로 제대 날짜만을 기다리면서 생활한다”고 전해진다. 수많은 장비가 필요한 현대의학의 특성상 아무리 의지가 있어도 ‘몸만 갖고서는’ 개선할 수 있는 여지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한 군의관은 “총 쏘는 법을 배운 사람이 단도 한 자루 들고 어떻게 싸우겠냐”는 말로 그들의 고충을 표현했다. 그는 “야전 군의관들은 웬만큼 확신이 서는 경우가 아니면 대부분 군 병원으로 환자들을 이송 처리하는 분위기”라고 말해 사단급 부대에 의료장비 보급이 시급하다는 사실을 확인시키고 있다.

둘째, 군의관들에게 적절한 교육을 실시하라

실무 부대로 전입해 곧바로 진료 현장에 뛰어드는 군의관들은 실제 환자를 접하면서 당황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 전문의 자격까지 따고 나서 입대했지만 자신의 전공 과목 외의 질병에 대해서도 진단 및 치료를 해야 하는 경우가 빈발하기 때문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군대에서 발생하는 질병이나 사고 등의 특성에 대한 교육이 사실상 전무하다는 것. 실제로 군의관들은 현장 배치 전 9주 동안 ‘군사훈련’만 받을 뿐 군대 내 환자 진료의 특성 등에 대해서는 거의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 문제에 관해 한 군의관은 “군대의 특성상 전공과목과는 다른 질병도 진단해야 하는 경우가 발생한다”면서 “훈련 과정에서 병사들에게 빈발하는 부상이나 질병 등이 어떤 것들이 있는지 알려주고 그에 대한 실용적인 대응 방법에 대한 교육을 받는다면 보다 적절한 진료활동을 수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군 병원에서 일하고 있는 또 다른 군의관은 “최근 들어 바깥(사회)에서는 의사들의 보수교육에 대한 관심과 필요성이 점차 커져가고 있지만, 군의관들은 새로운 의술을 습득하기는커녕 군입대 전에 배웠던 의료지식과 기술들마저 잊어버릴 수밖에 없다”고 성토했다. 그는 또 “의학학술대회에 참여하려 해도 상급자들의 눈치를 봐야 하는 처지라 거의 참가할 수가 없다”며 “개인적인 휴가를 사용해야 겨우 참가할 수 있는 정도”라고 푸념했다.

이에 따라 군 의료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군대 내에서 발생하는 의료사고를 줄이기 위한 차원에서라도 입대 초부터 전역 때까지 군의관에 대한 지속적인 보수 교육이 필요하며, 군은 이를 적극 지원할 필요가 있다. 또한 군대 내의 각종 질병통계 마련 등도 시급하다.

셋째, 군 병원은 전방지역에 추가 설립하라

국방부는 수천억원을 들여 후방 지역인 부천에 대형 병원을 설립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그러나 경기도 북부와 강원도 등 절대 다수의 군부대가 위치해 있는 전방 지역에 군 병원을 짓는 것이 훨씬 실효성이 있을 것이라는 게 군의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군 의무 관계자는 “노충국씨 사건 등을 계기로 병사들의 진료접근권을 높이라는 요구가 빗발치고 있는 상황”이라며 “정말 병사들을 치료하고 싶다면 부천병원을 짓는 것보다 전방에 병원이 건립하는 게 먼저”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지금 국방부는 부천병원을 민간인과 병사들 모두 진료할 수 있는 시설로 구상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이렇게 되면 아무래도 병사들을 진료하는 빈도가 낮아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 군의관은 “부천병원을 짓는 것은 병사들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일부 간부 및 그 가족, 예비역 장성들을 위한 것이라는 비판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넷째, 군 병원 및 군의관의 역할 분명히 하라

일부 군 병원, 특히 국군수도병원의 경우 매년 11, 12월 무렵에는 장성 및 영관급 예비역 군인들의 신체검사가 이루어지는 통에 정작 필요한 사병들의 진료에 차질을 빚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시기는 비교적 환자들이 많이 발생하는 시기라서 원래부터 의료인력이 부족한데도 군의관은 물론 간호장교와 의무병까지도 현역 및 예비역 간부들의 신체검사 등에 투입되고 있다는 것.

이 병원의 한 군의관은 “예비역 군인들이 본인부담금을 면제받을 수 있다는 이유로 건강검진을 군병원에서 받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다. 현직에 있는 상급자들이 이들의 건강검진에 신경을 쓰라는 말을 하면 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그렇지 않아도 인력난을 겪고 있는데 자칫하면 입원하고 있는 환자들의 진료에 차질을 빚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군 병원은 현역 장병들을 대상으로 한정시켜야 한다”며 “일반 종합병원처럼 모든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것이 아니라 감염센터, 외상센터, 등 같은 다빈도 질환에 집중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이와 함께 군대 내에서의 군의관 역할에 대한 올바른 인식 확립이 필요하다. 1년간 전방부대에서 근무 후 상급 부대로 옮긴 또 다른 군의관은 “군의관들은 ‘섬’같은 존재로 살아가고 있다. 환자들을 진료하는 ‘의사’로서의 직분에 충실하다 보면 다른 장교들과의 관계 맺기가 원활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모 지역 군 병원에서 복무 중인 다른 군의관도 “상관들은 군의관들에게 의사이기 전에 군인이 되기를 먼저 요구한다”며, “현재의 군 시스템 안에서는 아무리 훌륭한 진료 실적을 쌓아도 그 공로를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고백했다.

이처럼 상당수의 군의관들은 ‘의사’와 ‘군인’이라는 두 가지의 직업 사이에서 심각한 심리적인 갈등을 겪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군 당국은 군의관들이 처한 이러한 상황을 이해하고, 적절한 대응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기획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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