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만성 GVHD 환자들 "제도 사각지대 해소 절실해"
조혈모세포이식을 받고 혈액암을 극복했다는 기쁨도 잠시, 많은 환자들이 또 다른 걱정에 사로잡힌다. 이식 이후 따라오는 중증 희귀 합병증 '이식편대숙주질환(Graft versus Host Disease, 이하 GVHD)'이 생존까지 위협하며 환자를 옥죄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질환이 희귀질환 지원에서도, 암 산정특례에서도 배제돼 있다는 점이다. 제도적 사각지대 속에서 환자들은 치료제 앞에 두고도 사용할 수 없는 절망을 호소한다.
지난 20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서미화 의원(더불어민주당) 주최로 열린 '혈액암 생존 그 이후를 말하다 – 중증·희귀합병증 치료환경 개선을 위한 정책토론회'는 이러한 환자들의 절규를 사회적으로 환기시키는 자리였다.
GVHD, 생존 이후의 또 다른 위협
조혈모세포이식은 혈액암 환자들에게 완치를 위한 마지막 관문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이식의 끝에는 또 다른 시련이 기다린다. 이식 과정에서 기증받은 면역세포가 환자의 신체를 이물질로 인식하고 공격하면서 발생하는 GVHD는 이식 환자의 최대 절반에서 나타난다. 증상은 피부 발진과 구강 점막 손상에서 시작해 폐, 간, 신장, 근육 등 주요 장기까지 전신적으로 퍼진다.
특히 이식 100일 이후 나타나는 만성 GVHD는 '섬유화(fibrosis)'를 동반해 장기 경화와 기능 상실로 이어진다. 실제 환자의 42%는 진단 당시 이미 4개 이상의 장기에 손상을 입은 상태로 나타났다.
이날 첫 번째 발제를 맡은 서울아산병원 소아청소년종양혈액과 김혜리 교수는 "암이 재발하지 않아도 GVHD 합병증으로 사망하는 경우가 빈번"하다며 GVHD를 '혈액암 환자의 비재발 사망 원인 1위 합병증'으로 지목했다.
이어 "만성 GVHD는 환자에게 암보다 더 큰 고통을 주는 합병증"이라며 조기 진단과 적극적인 치료 환경 개선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제도권 밖에 내몰린 환자들
문제는 GVHD가 질환 분류상 애매한 위치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이차성 질환이라는 이유로 희귀질환 산정특례 대상에서 배제되고, 암 질환 산정특례에서도 제외된다. 때문에 환자와 의료진은 'GVHD 환자들이 제도권 밖으로 내몰리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 환자단체에 따르면, 다수의 환자들이 "치료제가 있음에도 경제적 이유로 사용할 수 없다"고 토로한다. 특히, GVHD 환자들의 평균 치료비는 일반 혈액암 환자보다 50% 이상 높고, 장기간 치료로 인한 소득 상실까지 겹치면서 사실상 치료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린다.
이날 토론회 패널로 참석한 GVHD 환자 최혜경 씨는 "단순히 걷는 것조차 환자들의 소원일 정도로 일상이 무너진다"며 "치료제가 눈앞에 있는데 비급여라 접근조차 못 하는 현실이 너무 잔인하다"고 호소했다.
벨루모수딜, 한 달 약값만 1,000만원
만성 GVHD 치료는 1차로 스테로이드 요법이 사용된다. 그러나 문제는 절반 이상의 환자가 반응하지 않아 2차, 3차 치료로 넘어간다는 점이다. 또한 2차 치료제인 JAK 억제제 '룩소리티닙(상품명 자카비)' 역시 GVHD 치료의 핵심인 섬유화 진행은 막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져 근본적인 해법이 되지 못한다.
이런 가운데 최근 개발된 '벨루모수딜(상품명 레주록)'은 GVHD에 특화된 최초의 표적치료제로 염증 및 섬유화 모두에 효능을 입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에서도 희귀의약품으로 허가를 받았지만, 아직까진 건강보험 급여 적용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두 번째 발제를 맡은 서울성모병원 혈액내과 곽대훈 교수는 "벨루모수딜은 염증과 섬유화를 조절하며 75%의 높은 반응률을 보였다"며 "이전 치료제에는 개선이 없었던 폐, 간에서도 유효성이 입증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곽 교수는 "벨루모수딜은 한 달에 1,000만원 가까운 치료비용이 든다"며 "환자들은 약값을 감당할 수 없어 3차 치료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날 또 다른 패널로 참석한 한국혈액암협회 박정숙 사무국장 역시 "희귀질환 치료제가 허가만 되고 급여화되지 않으면 환자에겐 아무 의미가 없다"며 "벨루모수딜이 사실상 마지막 희망임에도 환자들은 고가 약제비를 전액 부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박 사무국장은 "최근 이재명 정부가 발표한 국정과제 중 '국민 의료비 부담 완화' 부분에 '희귀·중증·만성질환 환자 지원 강화'가 포함돼 있는 만큼, GVHD 환자들의 절박한 상황을 반영해 신약 급여화 및 제도 개선이 시급히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삶의 질 붕괴와 사회경제적 부담
만성 GVHD는 환자의 삶을 전방위적으로 무너뜨린다. 국내 조사에 따르면 환자의 75%가 소득을 잃었고, 25%는 영구적 장애로 노동시장에서 퇴출된다. 중증 환자 3명 중 1명은 우울증과 불안을 겪는다.
이날 토론회 현장에 청중으로 참여한 GVHD 환자 카페 운영자는 "눈물샘이 손상돼 울지도 못하고, 폐 기능이 30% 이하로 떨어져 몇 분 이상 걷지 못하는 환자도 있다"며 "이런 상황이 수년간 이어지면 환자는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완전히 고립된다"고 호소했다.
전문가들은 GVHD로 인한 사회경제적 손실이 국가 전체에도 부담으로 작용한다고 경고한다. 환자들의 노동 생산성 저하, 장기적 치료 비용 증가는 건강보험 재정을 압박하며 초고령화 사회에서 더 큰 위험 요인이 될 수 있다.
이번 토론회를 주최한 서미화 의원은 "만성 GVHD는 제한적 치료법과 높은 의료비로 환자의 생명을 위협하지만 산정특례 등 의료 혜택에서 제외돼 사각지대가 발생하고 있다"며 "합병증으로 또다시 생명을 위협받는 혈액암 환자가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실질적인 대안을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또한 정부 측 패널로 참석한 보건복지부 보험약제과 김은희 사무관 역시 "환자들의 절실한 목소리를 들은 만큼 급여 등재 절차가 원활히 진행되도록 적극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김국희 약제관리실장도 "미충족 수요(Unmet Need)가 높은 치료제는 환자에게 반드시 필요하다는 데 공감한다"며 "기금 등을 통한 임시 재원 마련 등 다양한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