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COPD 환자 300만명…치료는 20만명 불과
질병 부담 연 1조4천억…사회경제적 비용 심각
급성악화 반복 시 사망률 4.3배 증가…예방이 핵심
"두필루맙 급여 여부는 환자 생존과 직결"

더불어민주당 서영석 의원
더불어민주당 서영석 의원

"약이 있어도 치료받지 못하는 세상, 국가는 이 난제를 외면해서는 안 됩니다."

효과가 입증된 치료제가 있음에도 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숨 쉴 권리조차 온전히 누리지 못하는 현실을 지켜본 더불어민주당 서영석 의원의 말이다.

신약 개발이 멈췄던 만성폐쇄성폐질환(Chronic Obstructive Pulmonary Disease, 이하 COPD) 치료 분야에 10여 년 만에 등장한 생물학적 제제 '두필루맙(상품명 듀피젠트)', 하지만 국내 환자들은 여전히 급여의 벽 앞에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지난달 3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어르신 숨 쉴 권리 보장을 위한 COPD 정책 토론회'는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서 의원의 주최로 마련됐다. 토론회에서는 치료 사각지대에 놓인 COPD 환자들의 절박한 목소리와 함께, 새로운 치료제의 보험 등재 필요성이 주요 쟁점으로 논의됐다.

지난 6월 3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는 더불어민주당 서영석 의원(보건복지위원회 소속)의 주최로  '어르신 숨 쉴 권리 보장을 위한 COPD 정책 토론회'가 열렸다.
지난 6월 3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는 더불어민주당 서영석 의원(보건복지위원회 소속)의 주최로 '어르신 숨 쉴 권리 보장을 위한 COPD 정책 토론회'가 열렸다.

"폐암만큼 무거운 고통, 그런데도 모른다"…숨어 있는 COPD 환자들

"COPD는 단순한 '숨찬 병'이 아닙니다. 폐 기능이 비가역적으로 손상되는, 조기 발견이 어려운 진행성 질환입니다. 환자에게는 삶의 질 저하뿐 아니라 폐암과 맞먹는 수준의 질병 부담을 안깁니다."

인천성모병원 호흡기내과 최준영 교수
인천성모병원 호흡기내과 최준영 교수

인천성모병원 호흡기내과 최준영 교수는 이날 토론회에서 COPD의 질환 특성과 우리나라에서의 의료 현실, 조기진단 체계 미비 등을 짚으며 국가적 관리체계 개편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COPD는 흡연, 대기오염, 실내연소물, 결핵 등 다양한 환경적·유전적 요인에 의해 기도와 폐포에 만성 염증이 반복되면서 발생하는 질환이다. 이 과정에서 폐조직이 서서히 파괴되고 기도는 좁아지며, 결국 폐기능이 점차 저하된다. 대표적인 증상으로는 호흡곤란, 만성기침, 가래, 천명(쌕쌕거림), 흉부 압박감 등이 있으며, 병이 진행될수록 일상생활은 극도로 제한된다.

문제는 폐기능이 약 50% 이상 손실되기 전까지는 뚜렷한 증상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또한 한번 손상된 폐 기능은 다시는 회복되지 않아, 조기진단과 악화 예방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한국은 COPD 유병률이 특히 높은 나라다. 만 40세 이상 인구의 12.7%가 앓고 있으며, 65세 이상 고령층에서는 25.6%에 달한다. 환자 10명 중 9명이 60세 이상일 정도로, 고령화와 함께 환자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현실은 '진단도, 치료도 안 되고 있는 병'이다. 최 교수는 "100명 중 2.3명만이 자신이 COPD 환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고, 그중 절반만이 치료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COPD는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같은 다른 만성질환과 비교해도 인지도와 치료율이 압도적으로 낮습니다."

진단이 늦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최 교수는 크게 두 가지를 꼽았다. 첫째, 대중과 의료진 모두 COPD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 둘째, 폐기능 검사 등 조기진단 체계가 일선 의료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일반의 대상 교육 부족과 급여 기준의 경직성도 치료 기회를 제한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현재 국내에서 진단된 추정 환자 수는 20만 명에 불과하지만, 미진단 추정 환자 수는 무려 300만 명 이상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게 최 교수의 설명이다.

급성악화 반복되면 사망률 4.3배…"한 번의 악화가 생사를 가른다"

"환자 입장에서 급성악화는 단순한 증상 악화가 아닙니다. 실제로 죽을 고비를 넘기는 것이고, 이후에는 정상적인 삶이 무너질 수 있습니다."

서울성모병원 호흡기내과 이진국 교수
서울성모병원 호흡기내과 이진국 교수

서울성모병원 호흡기내과 이진국 교수는 COPD 치료의 핵심은 증상 완화가 아니라 '급성악화 예방'에 있다고 강조했다.

급성악화란 급성악화는 환자의 호흡기 증상이 치료 약제를 추가해야 할 정도로 급격히 악화된 상태를 말하며, 심한 경우 응급실 방문 또는 입원이 필요하다. 흔히 '호흡곤란의 발작'이라고 표현될 만큼 위중하며, 이는 환자의 생존 가능성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급성악화를 3번 이상 겪은 환자는 그렇지 않은 환자에 비해 사망률이 4.3배, 심혈관질환 발생 위험은 6배 이상 높습니다. 악화가 반복될수록 폐기능은 가속도로 저하되고, 결국 환자는 산소통 없이는 일상생활조차 어려운 상태에 이르게 됩니다. 치료를 받는다 해도,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실제 통계에서도 급성악화를 경험한 환자는 5년 내 생존률이 절반 이하로 떨어지며, 심지어 악화를 겪지 않은 환자들도 5년 이내 20%가 사망한다. 치료 시기를 놓치면 단지 입원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지속 가능성' 자체가 위협받는 것이다.

기존 치료로 조절 안 되는 환자, 전체의 60%…"대안은 생물학적제제"

이 교수는 국내 COPD 환자 수가 최소 300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는 상황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는 20만명 남짓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고위험군으로 분류되는 환자는 약 9만 명에 달하며, 이들은 악화 반복으로 인한 재입원을 겪고 결국 대부분 사망에 이른다.

"COPD 환자가 한 번 입원하면 평균 200만 원 이상의 직접 치료비가 듭니다. 여기에 간병, 조기 퇴직, 생산성 저하 등 간접비까지 합치면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납니다. 급성악화를 막는 것은 단지 환자 개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국가 재정을 지키는 일이기도 합니다."

COPD의 표준치료는 흡입형 코르티코스테로이드제(ICS), 지속성 베타2작용제(LABA), 지속성 항콜린제(LAMA)로 구성된 3제 병용 요법이다. 그러나 최 교수는 "3제 요법으로도 환자 60%가량은 조절되지 않으며, 이들은 악화 반복과 입원을 되풀이하는 고위험군"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고위험군 환자들에게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 바로 '두필루맙'이다. 국내에서는 2025년 3월, 혈중 호산구 수치가 높은 제2형 염증 동반 COPD 환자를 적응증으로 허가됐으며, 10년 만에 등장한 새로운 치료 옵션으로 주목받고 있다. 두 건의 글로벌 3상 임상시험에서 두필루맙은 ▲중등도 이상 급성악화 연간 발생률 최대 34% 감소 ▲폐 기능 개선 ▲삶의 질 향상 등 주요 지표에서 유의미한 결과를 보여줬다.

하지만 두필루맙은 아직 건강보험 급여 적용이 되지 않아, 대부분의 고령 COPD 환자에게는 그림의 떡인 상황이다.

"이 약은 2주 간격으로 투여해야 하며, 한 달 약제비가 약 150만 원에 달합니다. 대부분이 고령자이자 고위험군 환자인 COPD 특성상, 이 비용을 개인이 감당하기엔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이 교수는 "미국, 독일, 아랍에미리트, 룩셈부르크 등 이미 여러 국가에서는 두필루맙에 대해 급여를 적용하고 있으며, 우리보다 경제 수준이 낮은 나라들도 환자 접근성을 인정하고 있다"며 "우리나라에서 급여 적용이 지연되는 건 직접의료비만을 중심으로 판단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우리는 간접비, 생산성 손실, 보호자 부담 등 전체 질병 비용의 구조적 그림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COPD는 연간 1조 원 이상의 사회경제적 부담을 주는 질환이며, 고가이긴 해도 두필루맙은 그 비용을 줄이는 데 있어 비용-효과적인 선택지가 될 수 있습니다."

최 교수는 "국내 COPD로 인한 연간 사회경제적 비용은 약 1조 4000억 원으로, 이는 허혈성 심질환의 3배, 당뇨병의 5.5배에 달한다"고 설명하며 "급성악화를 막는 것이 곧 사망률을 낮추고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가장 직접적인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신약을 바라보는 시선이 '비용'이 아닌 '예방적 투자'로 바뀌어야 할 때"라고 덧붙였다.

한편, 이날 토론회에서는 정부와 전문가, 환자단체 대표 등의 토론도 이어졌다. 이들은 한목소리로 COPD 환자의 진단 체계 강화와 함께, 생물학적 제제에 대한 조속한 급여 적용 필요성을 주장했다.

대한노인회 송재찬 사무총장은 "COPD는 고령화에 따라 폐 기능이 점진적으로 악화되는 질환이지만, 많은 환자들이 초기에 질환을 인지하지 못한 채 진단과 치료 시기를 놓치고, 결국 증상이 상당히 악화된 뒤에야 병원을 찾게 되는 경우가 많다"며 "앞으로 흡연, 대기오염 등으로 유병률이 더욱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예방 중심의 조기 진단 체계 구축과 함께 중증 악화에 대비한 치료 접근성 개선, 그리고 보험 재정 투자의 우선순위를 둘러싼 사회적 논의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대한노인회는 COPD를 비롯해 의료 사각지대에 놓인 고령층 질환에 대한 정책 개선과 관리체계 정비를 위해 계속해서 목소리를 낼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림대성심병원 호흡기-알레르기내과 황용일 교수(대한결핵및호흡기학회 보험이사)는 "COPD 치료 환경은 지난 20년간 실질적인 변화 없이 정체돼 있으며, 현재도 대부분의 환자들이 20년 전과 유사한 치료제를 처방받고 있다"며 "질환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여전히 낮은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최근 두필루맙과 같은 새로운 생물학적 제제가 등장하면서, 급성악화로 인한 입원 부담이 실제로 줄어들고 있는 사례들이 나타나고 있다"며 "고령화에 따라 COPD 유병률은 계속 증가할 것이기 때문에, 앞으로 더 많은 혁신적인 치료제들이 도입돼 환자들이 보다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림대강동성심병원 호흡기-알레르기내과 박용범 교수(대한결핵및호흡기학회 재무이사)는 "환자 스스로 질환을 인지하고 예방하려는 노력이 중요하지만, 동시에 국가 차원에서도 국가검진에 폐기능 검사를 도입하고, 위험인자 관리와 백신 강화, 진단·치료 관련 교육 강화 등 종합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그는 "천식과 COPD 치료에 쓰이는 생물학적 제제들은 효과가 입증됐음에도 불구하고, 급여 기준이 과도하게 엄격하고 약가가 높아 환자 접근성이 낮은 상황"이라며 "특히 호흡기 장애 환자들을 위한 산정특례 확대와 급여 기준 완화가 절실하다"고 덧붙였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김국희 약제관리실장은 "COPD는 조기 진단을 통해 환자를 발굴하고, 적절한 시기에 치료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간병 부담과 사회경제적 비용도 매우 큰 질환이라는 점을 심평원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며 "약제 급여의 원칙은 '효과가 입증된 약을, 합리적인 가격에, 적절한 환자에게 신속히 제공하는 것'이며, 심평원과 복지부는 이를 실현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효과적인 신약에 대해 신속한 급여 적용이 이뤄질 수 있도록 정부 차원에서 검토를 진행 중이며, 환자들의 치료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들을 다각도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 김연숙 보험약제과장은 "COPD는 다른 질환에 비해 훨씬 더 중증이고 고통스럽고, 사망률 또한 높은 질환임에도 불구하고 인지도와 치료율이 매우 낮은 상황"이라며 "복지부도 예방과 조기 진단, 급성악화 예방의 중요성에 깊이 공감하고 있으며, 이를 정책적으로 반영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어 "고령화가 가속화되면서 건강보험 재정이 국민의 건강한 노후를 뒷받침하는 역할을 점점 더 크게 맡게 되는 만큼, 복지부는 중증·희귀난치 질환의 신약에 대한 급여 접근성을 확대해 나갈 예정"이라며 "COPD 관련 신약도 그 중요성과 급여 필요성을 충분히 고려해 신중히 검토하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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