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10여년 전만 하더라도 중국의 데이터가 이렇게 많이 발표되지 않았는데, 이제 중국의 데이터가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지난달 30일부터 이달 3일(현지시각)까지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미국임상종양학회 연례회의(ASCO 2025) 현장에서 만난 국내 한 임상개발 전문가의 말이다. 학회가 끝난 지금까지 이 말이 뇌리에 남아있는 이유는 중국의 성장 속에서 국내 신약개발 기업들의 전략이 크게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원메디슨(구 베이진)과 안텐진 등 글로벌 신약개발 회사가 등장하고 전 세계 1위 블록버스터 약물인 키트루다에 대항하는 이중항체 물질을 개발하고 있는 중국. 여기에 지리적 접근성과 데이터 품질을 무기로 매년 임상시험 점유율에서 1위 자리를 놓치지 않았던 서울은 작년 중국 베이징에 선두 자리를 내 주기까지 했다.
이제 더이상 중국의 임상 데이터 품질에 의문을 품는 글로벌제약사는 많지 않다. 이런 상황 속에서 글로벌제약사는 아시아인 데이터를 확보하기 위해 중국에서 임상시험을 활발히 수행 중이다. 실제로 중국 기업들은 ASCO에서 이중항체와 항체접합의약품(ADC) 관련 임상 데이터도 활발히 발표했다.
중국이 이처럼 신약개발 분야에서 성장을 이어가고 있는 상황 속에서 국내 기업들의 현실은 어떤가. 2015년 한미약품의 기술이전을 시작으로 글로벌 시장에 문을 두드린 국내 신약개발 기업들은 여러 악재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신약개발을 이어갔다.
국내 바이오벤처들은 2015년의 한미약품을 거울 삼아 기술이전 실적을 차곡차곡 쌓아 나가며 자체 초기 임상까지 수행 중이다. 그 속에서 리가켐바이오사이언스, 알테오젠, 에이비엘바이오 등 기술이전 실적을 기반으로 임상 역량까지 쌓아가는 기업들이 등장했다. 유한양행은 오스코텍 등 바이오텍과 적극적인 협업으로 렉라자라는 글로벌 신약을 내 놓았다.
하지만 렉라자 이후 올해 ASCO에서 국내 기업의 임상 데이터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티움바이오, 이뮨온시아, CJ바이오사이언스, 제이인츠바이오와 같은 몇몇 기업은 제외하면 포스터를 통해서라도 임상 성과를 공유한 신약개발 기업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항암제 개발에 주력하고 있는 국내 신약개발 기업들의 성과라고 보기엔 초라한 성적표였다.
기술이전은 여전히 국내 기업이 신약개발을 위해 활용해야 하는 주요 전략이다. 다만 기술이전만으로는 지속가능한 사업 모델을 구축할 수 없다. 이제 우리나라도 기술이전 이후의 전략을 고민해야 할 때다. 바이오벤처는 자체 임상을 진행해 기술이전 계약금 등 계약규모를 키우고, 셀트리온과 삼성 등 대기업은 자금력을 기반으로 적극적인 인수합병을 통해 자체 임상 개발과 제품 확보도 고려해야 할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