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드 보컬 이재준 미래여성병원장, 시집도 펴내
생명 오가는 현장 긴장감 음악과 글쓰기로 풀어
"탄생 기쁨 나누는 산부인과, 정책으로 뒷받침을"
밴드 '리겔' 보컬은 산부인과 전문의다. 진료실과 분만실을 가쁘게 오가던 발걸음은 해가 지면 밴드 연습실로 향한다. 새벽 당직을 서며 작곡하고, 진료하면서 느낀 점을 가사로 쓴다. 밴드 경력만 30년 넘고, 무대 경험도 수백 회에 달한다. 부산 미래여성병원 이재준 원장 이야기다.
록 가수이자 산부인과 전문의가 이번에는 시인이 됐다. 이 원장은 최근 첫 시집〈그래서 어쨌단 말이냐〉를 펴냈다. 실용서〈이재준 원장의 Q&A 산부인과〉, 음악 에세이 〈시간에 음악이 흐르면〉에 이어 세 번째 저서다.
이 원장은 지난달 23일 청년의사와 화상 인터뷰에서 "음악과 시는 같은 파동이다.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고 했다.
이 원장이 처음 음악에 관심을 가진 건 고등학생 때다. "힘들 때면 언제나" 노래를 불렀다. 가난한 고등학생에게 음악은 유일한 도피처였고, 노래는 삶을 지탱하는 힘이었다. 어려운 집안 형편에 천문학자의 꿈을 접고 의대로 진학했지만, 음악만큼은 포기하지 않았다.
이 원장에게 음악은 단순한 취미가 아니다. 밤샘 근무에도 시간을 쪼개 작곡하고, 일주일에 한 번은 프로 뮤지션들과 합을 맞춘다. "다른 뮤지션들과 합주를 하면 스트레스가 '확' 날아간다"며 어릴 때도 지금도 음악은 여전히 "나를 버티게 해주는 원동력"이라고 했다. 이런 일상을 지키고자 자기 관리도 철저히 하고 있다. 매일 새벽 5시 30분이면 일어나 1시간 이상 운동하고 병원으로 출근한다. 이 원장은 "운동을 시작하면서 호흡이 좋아졌다. 여전히 헤비메탈 밴드 보컬로 활동할 수 있는 비결"이라며 웃었다.
예술가로서 삶은 글쓰기로 이어졌다. 이 원장이 보기에 "음악과 시, 글쓰기는 하나"다. 산부인과 전문의로서 삶도 마찬가지다. 산부인과는 생명의 탄생과 죽음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이 원장은 "흔히 아기가 태어나는 순간은 아름답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죽음이 있다"며 "탄생은 곧 한 생명을 딛고 일어나는 일"이라고 했다. 산부인과 전문의로서 임신과 출산을 돕지만 "엄마를 살리고자 생명을 지워야 할 때도 있다"며 "그럼 인간이란 과연 무엇인가, 생명이란 무엇인가 고민하게 된다"고 털어놨다. 이렇게 "진료 현장에서 마주하는 긴장감"과 "생명에 대한 성찰"이 모여 자연스럽게 시가 됐다.
이 원장은 이렇게 "탄생과 죽음이 엇갈리는" 현장의 무게감을 이겨내고 있다. 하지만 의사 개개인이 각자의 방법으로 긴장감을 견디며 진료를 이어가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했다. 제도적 뒷받침도 필요하다. 가장 시급한 것은 무과실 의료사고 법적 책임 완화다. 유엔(UN)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모성사망률은 2020년 기준 10만명당 8.1명이다. 신생아 사망률은 2022년 기준 1,000명당 1.3명이다. 이 원장은 여기에 산부인과 의료진이 "아무리 노력해도 피할 수 없는 상황"이 있다는 점을 우리 사회가 놓쳐선 안 된다고 했다.
"어쩔 수 없는 현실"조차 의사에게 모든 책임이 돌아가면서 산부인과는 '필수의료'이면서 '기피과' 처지가 됐다. 분만을 포기하고 진료실을 떠나는 산부인과 전문의도 계속 늘고 있다. 이 원장은 "당장은 출생률이 낮아 남아 있는 의료진으로도 버틸 수 있지만 언제까지 시스템이 유지될지 모르겠다"고 했다. 더 많은 사람이 떠난 뒤 "마지막까지 남은 이들이 감당해야 할 짐은 상상이 안 된다"고 했다.
이 원장은 "정부가 의료사고와 분쟁에 대처할 최소한의 보호 장치를 마련해 주길 바란다. 감정 소모는 줄이고 갈등을 제도로 해결하는 체계가 자리 잡으면 산부인과 지원자도 자연스럽게 늘어나리라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어려운 여건에도 산부인과를 지망하는 후배들에게는 따뜻한 조언을 건넸다. 이 원장은 "초음파로 자라나는 생명을 대면하고, 태아가 움직이는 모습을 지켜보거나 심장 뛰는 소리를 들을 때 산부인과 전문의로서 누리는 기쁨이 정말 크다"고 했다.
그는 "산부인과 의사는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소리인 아기의 첫 울음 소리를 매일 듣는다. 뱃속에서 막 나온 아기를 받는 순간의 감정은 말로 다 설명하기 어렵다. 다른 과에서는 접하기 어려운 귀중한 경험"이라면서 "생명의 시작을 바로 곁에서 지켜보고 싶다면, 산부인과 의사의 길을 걸어보길 권한다"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