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사-대한중환자재활학회 신년기획①]
생존자 50~70% ‘집중치료 후 증후군’ 경험
예방법인 재활치료 효과, 해외에선 이미 입증

선진국 의료체계는 위독한 환자를 치료하면서 생존 이후 삶까지 고민한다. 반면 한국은 그렇지 못하다. 아직은 환자를 살리는데 급급하다. 중환자실 퇴원 이후 삶을 고려한 수가 등 제도적 지원은 없다. 이런 현실에 한국 의료진은 ‘중환자 난민’을 걱정한다. 이에 청년의사는 대한중환자재활학회와 함께 하는 신년기획에서 한국 의료체계가 놓치고 있는 ‘중증환자 재활치료’를 다룬다.

①집중치료 후 증후군, 재활치료 효과는?
②재활치료가 불러온 변화
③살리는데 급급한 한국 의료 현실
④중증환자 재활치료 장려하는 선진국 의료제도
⑤‘중환자 난민 시대’ 끝내려면

중환자실이라고 하면 여러 개의 선을 달고 누워 있는 ‘의식 없는 환자’가 떠오른다. 위독한 환자들이 있는 곳이기에 살아서 나오는데 관심이 집중된다. 언뜻 병상에 오래 누워 있는 환자들을 보며 걱정하는 건 ‘욕창’ 정도다. 하지만 중환자실 퇴원 후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겪는 환자들이 많다. 움직이지 못하고 오래 누워 있어서 생긴 기능 저하 때문이다.

기능 저하로 생기는 대표적인 문제가 신체적인 장애다. 20~30대 젊은 환자도 중환자실에서 일주일 동안 누워만 있으면 근육량 감소로 바로 걷지 못한다. 이를 ‘중환자실 획득 쇠약(ICU-Acquired Weakness, ICUAW)’이라고 한다. 10일 이상 인공호흡기를 적용한 환자 중 67%에서 중환자실 획득 쇠약이 발생했다는 보고도 있다(Critical Care 2015년).

중환자실에 입원한 환자들은 기능 저하로 퇴원 후에도 '집중치료 후 증후군'
중환자실에 입원한 환자들은 기능 저하로 퇴원 후에도 '집중치료 후 증후군(PICS)'을 경험하는 비율이 높다. 하지만 조기에 재활치료를 받은 중환자는 그렇지 않은 환자보다 일상 회복이 빠르다(사진 출처: 게티이미지).

중환자실 생존자 50~70%가 경험하는 PICS

중환자실 획득 쇠약이 생기면 치료가 더디고 퇴원 후에도 오랫동안 신체 기능이 회복되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다. 국제학술지 ‘The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NEJM)’에는 급성호흡부전으로 중환자실 치료를 받은 환자 중 61%가 퇴원한 지 5년이 지났는데도 예상보행 능력의 80% 이하를 보였다고 보고된 바 있다(2011년).

서울아산병원 재활의학과 김원 교수는 “단순히 침대에 누워 있으면서 근육이 약해지는 비사용 쇠약뿐만 아니라 다기관 부전(multiorgan failure)의 일종인 중증질환 신경근육병이 발생해 심해지기도 한다”며 “중환자실 획득 쇠약은 보행 기능 등 운동능력 저하만 일으키는 게 아니고 인공호흡기 이탈을 지연시키고 중환자실 재실 기간, 생존율에도 악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중환자실 치료 후 근 위축과 골 소실, 관절 구축, 연하장애, 일상생활 수행 능력 저하, 피로, 불면증 등이 생기기도 한다고 했다.

섬망이나 언어 능력 저하, 기억·집중력 저하 등 인지장애가 생기기도 한다. 국제학술지 ‘The Journal of the American Medical Association(JAMA)’에 따르면 미국에서 중증 패혈증으로 입원했던 환자 1,19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장기코호트 연구 결과, 중등도·중증 인지 기능 장애 발생 위험이 3.3배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우울, 불안 등 정신적인 장애를 호소하는 환자들도 있다. 김 교수는 “중환자실 퇴실 후 1년이 지난 시점에도 생존자의 약 3분의 1이 임상적으로 의미 있는 우울 증상을 호소하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했다.

이같은 기능 저하로 인해 생기는 신체·인지·정신적 장애를 ‘집중치료 후 증후군(Post-Intensive Care Syndrome, PICS)’이라고 한다. 중환자실 입원 환자들이 모두 PICS를 앓는 것은 아니지만 발생률이 높다.

중환자실 생존자의 50~70%가 PICS를 경험한다는 연구 결과가 국제학술지 ‘Journal of the American Academy of Physician Associates(JAAPA)’에 보고되기도 했다(2016년). 지난 2021년 일본 연구진이 ‘Critical Care’에 발표한 연구 결과에서도 중환자실을 퇴원하고 6개월 뒤 한 가지 이상 장애를 경험한 비율이 63.5%였다. 네덜란드에서도 내과계 중환자의 58%, 응급수술을 받은 외과계 중환자의 64%가 PICS를 경험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Am J Respir Crit Care Med, 2021년).

특히 65세 이상이거나 기저질환이 있는 환자들이 PICS 고위험군이다. 중환자실 치료 강도와 장기 부전 정도가 PICS 발생 위험을 높이기도 한다.

양산부산대병원 호흡기내과 여혜주 교수는 “장기적인 기계환기 치료는 근육 소모와 침상 안정 상태를 유발해 중환자실 획득 쇠약 발생 위험을 증가시킨다”며 생존자의 25~50%에서 중환자실 획득 쇠약이 발생한다고 했다. 또한 생존자의 50%가 장기적인 호흡 문제를 경험하고 10~30%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호소한다고 했다.

중환자실에서 살아서 나왔지만, 그 이후 PICS로 삶 자체가 흔들리는 일도 많다. 일본 연구진이 중환자실 치료 후 생존한 328명을 추적 조사한 결과, 24%가 퇴원한 지 1년이 지나도 취업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PLOS ONE, 2022년).

해외에서 입증된 중증환자 재활치료 효과

예방법은 있다. 증증환자 재활치료다. 중환자실에 입원한 환자들을 대상으로 재활치료를 조기에 실시하면 재원 기간을 줄이고 빠르게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 중증환자 재활치료 효과는 해외에서 이미 입증됐다. 선진국은 중환자 치료 과정에 재활이 포함되도록 제도와 수가체계를 마련해 놓고 있다.

김원 교수는 ”중환자실 환자 상태에 따라 치료 단계가 결정되는데, 협조가 가능한 환자는 본인의 근력을 사용해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적극적인 재활치료가 필요하다”고 했다. 김 교수는 기관 삽관이나 인공호흡기를 착용하고 있는 환자는 물론 ‘에크모(ECMO, 체외순환막형산화요법)’ 적용 환자도 재활치료가 가능하다며 “기본적인 안전 기준을 지켜서 재활치료를 하면 환자 건강에 영향을 주는 이상반응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다만 안전하고 효과적인 재활을 위해서는 다학제팀원들 간 협력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환자의 건강 상태와 회복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가 발생했다면 PICS로 진단하고 치료하는 게 좋다”며 Post-Intensive Care Syndrome Questionnaire (PICSQ)와 Healthy Aging Brain Care Monitor (HABC-M), Mini-Mental State Examination (MMSE), Montreal Cognitive Assessment (MoCA) 등을 평가 도구로 사용할 수 있다고 했다.

서울아산병원 중환자·외상외과 이학재 교수는 중증환자 재활치료를 적극적으로 시행하는 해외에서 PICS 예방에 효과적이라는 연구 결과가 꾸준히 나오고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 2009년 국제학술지 Lancet에는 증증환자 재활치료로 섬망 기간을 2일 정도 줄였고 기계환기 기간도 2.7일 감소했다는 연구결과가 실렸다. 지난 2022년 ‘Critical Care Medicine’에 보고된 연구 결과에서는 재활치료로 중환자실 재실 기간을 1.2일 단축하는 효과가 나타났다. Critical Care Medicine에는 지난 2024년에도 조기 재활치료로 기계환기 기간을 평균 1,76일 단축하고 중환자 재실 기간을 1.16일 줄이는 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가 실렸다. 중환자실 획득 쇠약 빈도가 재활치료를 받은 중환자에서 낮았으며 1년 뒤 인지장애 유병률도 감소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Lancet Respir Med, 2023년).

여혜주 교수는 “조기 재활치료는 근육 약화와 침상 안정으로 인한 기능 저하를 예방하고 환자의 독립적인 이동성과 일상 활동을 촉진한다”며 “최근 연구에서 조기 재활은 심부전 환자에서 입원 중 사망률을 감소시키고 평균 입원 기간과 재입원율을 줄이는 효과를 보였다”고 강조했다. 여 교수는 “조기 재활치료는 단기적인 신체 기능 회복과 입원 기간 단축에 효과적임이 입증됐다”이라며 “장기적인 기능적 결과와 삶의 질 향상에 대한 연구도 진행 중”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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