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의사들이 내놓은 처방전]② 리셋 or 점진적 개혁
"제도 개편 없으면 급여비 지불 못할 수도" 경고
실손보험 품는 등 건강보험 상품 다양화 필요성 제기
필수의료 문제 해결을 위한 정부와 의료계 고민이 계속되고 있다. 의과대학 정원 확대, 공공의대 설립, 비대면 진료 제도화, 응급의료체계 개편, 지불제도 개혁 등 다양한 방안이 제시되지만 사회 갈등만 키우는 모양새다. 복잡하게 얽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한민국 의료체계 전반을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청년의사가 창간 31주년을 맞아 젊은 의사들과 한국의료를 진단하고 해법을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사회: 청년의사 박재영 편집주간
토론: 강민구 대한전공의협의회장
장성인 연세의대 예방의학과 교수
정윤빈 세브란스병원 일반외과 입원전담교수
정재훈 가천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
(이상 가나다 순)
초고령화 진입, 인구 감소 등 인구구조에 큰 변화가 오는 상황에서 정부와 보건의료계가 직면한 가장 큰 과제 중 하나는 건강보험제도 지속가능성이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2월 ▲의료적 필요도 기반 급여기준‧항목 재점검 ▲공정한 자격‧부과제도 운영 ▲합리적 의료이용 유도 ▲불법행위 엄단 및 비급여 관리 혁신 등을 추진과제로 담고 지출·수입·재정관리 구조 등 제도와 구조 개편 방향을 제시한 ‘건강보험 지속가능성 제고 방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그 자체에 대해 젊은 의사들은 비관적이었다.
사회자 : 건강보험 지속가능성과 고령화는 밀접한 연관이 있다. 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강민구 : 건강보험재정이 적자로 돌아서는 시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 건강보험 급여 영역에서 제대로 된 서비스를 받지 못하면 ‘보험료를 더 지불해서라도 패스트트랙으로 서비스를 받겠다’는 요구가 커질 것이다. 이런 요구들이 정치적으로 조직화되면 막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런 사태가 오기 전에 건강보험의 급격한 붕괴를 막을 수 있는 대안을 찾아 절충안을 마련하는 것이 낫다.
건강보험 미래는 보장 축소가 기본
정재훈 : 인구감소‧저출산‧고령화가 가장 심각한 형태의 위기라고 생각한다. 건강보험이 지속가능하지 않은 이유, 국민연금이 지속가능하지 않은 이유, 한국 조선업이 지속가능하지 않은 이유 등도 이와 연관이 있다.
앞으로 건강보험은 기본적으로 축소의 건강보험으로 (보험료를) 더 많이 받으면서 적게 보장해줄 수밖에 없다. 결국 국민을 어떻게 설득하느냐가 문제다. 대통령 임기가 5년인 단임제 정부에서 과연 이런 설득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설득보다 건강보험제도에 큰 파국이 있은 후 재정립되는 게 더 빠를 것이다.
사회자 : 건강보험제도가 파국으로 가는 것을 막을 수는 없나.
정재훈 : 일부를 고치면 2~3년 정도는 더 버틸 수 있고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문제 등은 조금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미봉책이 전체적인 관점에서 좋다고 보지 않는다. 완전한 패러다임 전환이 있어야 하고 이 전환이 과격한 형태로 올 가능성이 높은데, 우리 사회는 아직 준비가 안돼 있다.
강민구 : 파괴적 혁신, 개혁 등을 이야기 하는데 대화와 타협을 통해 혁신할 수 있다고 본다. 때문에 (건강보험제도 지속가능성을 위해 국민들을) 설득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했으면 좋겠다.
특히 이번 정부 마지막이나 다음 정부 초반이면 보험료율 상한에 대해 논의해야 하한다. 국민 설득이 어렵겠지만 시도는 해봐야 한다. 지금과 같은 건강보험체계를 유지하면서 보험자에 따라 (보장률을) 나누거나 대체 보험을 도입하는 식으로 제도 개혁을 해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고령화에 따른 인구구조 변화 등으로 어려움이 크겠지만 중증입원환자 영역 등 시장에서 결코 해결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서는 혁신적으로 보장을 더 해주는 논의들이 있어야 한다.
건강보험 내 다양한 상품 필요
정재훈 : (현 정부에서도) 건강보험제도를 점전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건강보험 종합계획을 수립하는 등 작업들을 하고 있지만 몇가지 문제가 있다. 우선 속도가 너무 느리고 정책 의사 결정에 시간차가 많다. 예를 들어 공공정책수가 개념이 나온 지 이미 오래인데 아직 본격적으로 도입되지 못했다. 모두가 점진적 해결책 마련을 선호하지만 이렇게 해서 우리가 과연 (건보제도 문제가 더 심각해지기 전에) 시간을 맞출 수 있을지에 대해 절박함이 있다.
장성인 : 혁신이냐 점진적 개혁이냐로 나뉘는 것 같은데, 점진적인 방법이라고 이야기 하는 것도 사실 엄청나게 혁신적인 내용이다. 단일 보험자체계를 깨거나 단일 보험자 안에서 상품을 여러가지 만드는 것이 최소 단계인 것 같은데 이것도 어려울 것 같다. 지금도 (건강보험제도와 관련해) 문제가 터지고 있고 앞으로도 터져서 진짜 (제도를) 바꿀 타이밍이 올 것인데, 그때부터 고민하지 말고 지금부터 고민했던 내용들을 빠르게 정책으로 만들어야 한다.
사회자 : 보험료를 일괄 인상하는 방안과 보험료는 동일하게 지불하지만 본인부담금을 유연하게 조정해 실제 의료기관에서 직접 지불해야 하는 비용을 차등화하는 것 중 어떤 방법이 더 낫다고 생각하나.
정윤빈 : 의료행위와 이용한 의료기관 종별로 본인부담을 차등하는 것은 좋은데 자칫 잘못하면 현장에서 굉장한 부담이 될 수 있다. 지금도 비급여 진료인데 건강보험으로 처리해달라는 환자나 경증인데 진단명을 중증으로 바꿔달라는 환자들도 많다. 제도의 유연함을 위해 도입한 것이 환자와 의사 간 갈등을 키워 현장에 부담을 가하는 수준이 되면 오히려 더 어려운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장성인 : 할 수 있는 방법은 다 시도해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동시에 두가지를 다 시도해도 (건강보험 지속가능성 문제가 해결) 될까말까 하다. 문제는 수익이 높아 보험료를 많이 지불하는 사람들이 ‘내가 보험료를 많이 지불했는데 다른 사람들이 의료이용을 너무 남발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인식 때문에 보험료를 지불하는 세대와 쓰는 세대 간 갈등이 있을 수도 있다.
실손보험, 보험사 망해도 된다는 생각으로 손봐야
사회자 : 실손의료보험 문제도 짚어봐야 할 것 같다.
정재훈 : (건강보험제도 지속가능성과 관련해) 이런 논의들이 나오는 것이 굉장히 좋은데, 우리나라는 실손보험 때문에 수많은 논의가 무력화된다.
장성인 : 개인적으로 실손보험도 법으로 한번 쳐낼 수 있다고 본다. 나라가 망하게 생겼는데 못할게 뭐가 있나.
정재훈 : 그렇긴 한데, 실손보험은 민간과 개인 간 사적 계약이기 때문에 개선하기 어렵다. 여러 방안들을 생각했는데, 민법이나 상법으로는 계약 변경이 굉장히 어렵고 특별법을 만들 필요가 있지만 이 방법도 헌법재판소까지 가면 패소 가능성이 높다. 일단 신규 계약을 중단시키고 시간이 지나길 기다려야 한다.
장성인 : 실손보험 본인부담금을 50%로 올리는 등 회사가 망해도 상관없다는 정도로 개선해야 한다.
정재훈 : 실손보험 판매 회사들은 망해도 괜찮은데, 실손의료보험 때문에 본인부담금, 가격통제 기전, 수가 조정 기전 들이 다 무력화되고 있는 것이 문제다.
장성인 : 실손보험 본인부담금을 50%로 올린 후 공공 실손보험을 하나 만들어서 가입하게 하자는 것이다.
사회자 : 공공 실손보험이라는 것이 나라에서 실손보험을 만들자는 의미인데, 건강보험 특약 늘리는 것과 어떻게 다른가.
장성인 : 건강보험 상품을 다양하게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지금 건강보험 수준에서 단일 상품이라는 것은 말이 안된다. 그래서 살아남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강민구 : 실손보험이 시작부터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고는 해도 망하게 하는 것 보다는 역할을 전환시키는 방향을 고민해야 한다. 실손보험이 공적인 성격을 가지면서 다양한 패키지를 만들어낼 수 있는 역할로 제도화해야 한다.
정윤빈 : 국민 입장에서 지금까지 (건강보험제도를 통해) 평등하게 보장해 왔던 것을 등급을 나눈다고 하면 성숙하게 받아들일 수 있느냐를 생각해 봐야 한다. 결국 잘 설득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강민구 : 그래서 정치적 역설이 필요하다. 보편적 건강보험제도를 지키려면 역설적이게도 혁신이 필요하다. (보장) 등급을 나눠야 나머지 90%의 국민이 보장성을 지킬 수 있다고 정치적으로 설득해야 한다. 향후 15년 내 큰 변화가 온다. 보험료율 8% 상한을 돌파하고 10여년 되면 건강보험재정 적자 문제가 불거질 것이다.
멀지 않은 미래에 급여지급 체불시대 올 것
사회자 : 15년이 지나기 전에 시스템이 실패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강민구 : 은퇴 연령이 늦어지고 있기 때문에 건강보험이 생각보다 잘 버틸 수 있다고 본다.
정재훈 : 건강보험제도의 첫 실패 사례는 재정 적자 때문에 현재 정기적으로 지급되는 급여진료비용이 언젠가부터 정기적으로 지급되지 않는 문제가 발생할 것으로 보고 있다. 멀지 않은 미래에 시작되고 처음에 한두달 정도 체불되다가 6개월에서 1년 정도로 늘어날 것이다. 이정도 상황이 되면 급여진료 분야 의사들이 ‘더이상 안될 것 같다’고 생각하게 되고 거기서부터 제도 붕괴가 시작된다.
장성인 : 이렇게 되면 의료기관에서 건강보험 환자를 더이상 진료하지 않게 될 것이다. 이에 대해 정부에서 불법이라고 이야기 해도 할 수 있는 게 삭감 뿐이다. 비용 지불이 안되는 시점부터 삭감이 의미 없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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