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FIFA U-20 월드컵 2023 대표팀 팀닥터 배지훈 교수

‘FIFA U-20 월드컵 아르헨티나 2023’ 한국 대표팀 팀닥터로 함께한 고려대구로병원 정형외과 배지훈 교수는 청년의사와 인터뷰에서 국내 유소년 선수 부상관리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청년의사).
‘FIFA U-20 월드컵 아르헨티나 2023’ 한국 대표팀 팀닥터로 함께한 고려대구로병원 정형외과 배지훈 교수는 청년의사와 인터뷰에서 국내 유소년 선수 부상관리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청년의사).

시간이 많이 지났고 열기도 식었지만 지난 5월 23일부터 6월 12일까지 우리나라의 젊은 축구대표팀은 아르헨티나에서 투혼과 열정을 보여줬다. ‘FIFA U-20 월드컵 아르헨티나 2023’ 대표팀 이야기다.

그라운드를 누비는 선수들이 드라마 주역이었다면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들을 지원했던 조연들도 있다.

그 중에서도 경기 전후 선수들의 상태를 면밀히 살피고 최상의 컨디션으로 그라운드를 누빌 수 있도록 ‘팀닥터’ 역할을 한 사람은 고려대구로병원 정형외과 배지훈 교수다.

배 교수는 지난 2019년 19세 대표팀 아시안컵 예선전에 팀닥터로 참여한 것을 시작으로 젊은 대표팀과 인연을 맺고 이번 월드컵에도 팀 닥터로 참여했다.

대학병원 전문의이자 의과대학 교수로서 삶에서 한달 가까운 시간을 비우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대한축구협회 공문, 병원장과 직원들의 배려로 배 교수는 아르헨티나로 떠날 수 있었다.

프랑스 이기고 현지에서도 좋은 결과 예상

한국시각 5월 23일 새벽 3시 대한민국과 프랑스의 예선전이 열렸다. 결과는 2대1 대한민국의 승리. 이승원 선수(강원FC, MF)와 이영준 선수(김천상무프로축구단, FW)가 골을 넣었다. 이날 이후 국내에서 U-20 월드컵에 대한 관심이 고조됐는데, 아르헨티나 현지에서도 열기가 감지됐다.

배 교수는 “프랑스와 첫 경기를 이기고 나서 (한국에 있는) 여러 지인들에게서 연락이 왔다. 개인적으로도 프랑스와 첫 경기를 보고 ‘어, 이거 이번에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데’라는 생각을 했다. 기대가 커지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대한민국 대표팀은 예선에서 프랑스를 이기고 온두라스, 감비아와 비기면서 1승 2무로 결선무대에 올랐고 16강에서 에콰도르를 3대2, 8강에서 나이지리아를 1대0으로 이기며 4강에 올랐다.

4강에서 강호 이탈리아를 만나 최선을 다했지만 1대2로 패했고 3~4위전에서는 이스라엘을 만나 1대3으로 패하며 최종 4위의 성적으로 대회를 마감했다.

배 교수는 “4강에 진출한 후 한국에서 거리응원이 펼쳐졌고 4강전이 열린 라플라타 스타디움에는 한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한인회 회원 약 500여명이 직접 경기장을 찾아 태극기를 흔들며 응원해줬다”며 “대표팀 선수들이 지금까지 그런 응원을 받아본 적이 없어서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8강전 짜릿했고 4강전 가장 아쉬워

선수들은 매경기 최선을 다하며 국민들에게 명장면을 선물했다. 배 교수는 이 중에서도 에콰도르와 16강 전을 가장 잘한 경기, 나이지리아와 8강전을 가장 짜릿했던 경기, 이탈리아와의 4강전을 가장 아쉬운 경기로 꼽았다.

배 교수는 “나이지리아와 8강전은 진짜 짜릿했다. 밀리는 경기를 하다가 연장전까지 간 것인데, 연장전에 돌입하면서 ‘제발 승부차기까지는 가지 말자’는 이야기를 했었다”며 “지난 3월 열린 2023 AFC U-20 아시안컵에서 우즈베키스탄과 승부차기 끝에 패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배 교수는 “그런 마음으로 연장전에 돌입했는데 코너킥 상황에서 최석현 선수(충남 단국대, DF)의 헤딩골이 들어갔고 벤치에서 스텝과 코치진 모두 얼싸안고 기뻐했다”며 “(8강전 전) 연습에서 세트피스 훈련을 열심히 했는데 훈련한대로 골이 들어가서 더 짜릿했다”고 회상했다.

배 교수는 “아쉬운 것은 4강전이다. 전반에 선취골을 먹고 이승원 선수의 페널티킥으로 동점을 만든 후 하프타임 때 락커룸에서는 ‘이길 수 있다’는 분위기였다”며 “후반에 이탈리아 선수들 체력도 많이 떨어지고 우리 골키퍼 선방이 계속 나와 분위기도 좋았는데 아쉽게도 교체선수에게 프리킥 득점을 허용했다. 이후 시간이 너무 없어서 힘들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배 교수는 “그날 선수들이 그라운드에서 정말 열심히 뛰긴 했지만 사실 체력적으로 많이 힘든 상황이었다”며 “이탈리아 선수들이 피지컬이 좋기도 하지만 주먹과 팔꿈치로 우리 선수들을 치는 등 파울을 많이 했는데, 심판이 파울을 거의 불어주지 않아 선수들도 많이 힘들어 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프랑스와 예선전 승리 후 선수단과 스텝들이 함께 찍은 사진(제공: 대한축구협회).
프랑스와 예선전 승리 후 선수단과 스텝들이 함께 찍은 사진(제공: 대한축구협회).

아들같은 선수들과 ‘라포’ 형성하기

팀닥터는 선수들과 일거수 일투족을 함께하며 몸 상태를 면밀히 관찰해 감독과 코치들에게 컨디션을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감독과 코치는 팀닥터의 의견을 듣고 선수 훈련, 경기 출장 등을 결정한다.

때문에 자신의 경기 출장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의사’ 타이틀을 단 배 교수는 대회 초반까지만 해도 젊은 선수들이 가까이 하기 힘든 어른들 중 하나였다.

배 교수는 “아들이 2003년 생이어서 선수들을 보며 아들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하지만 선수들이 봤을 때 나는 팀닥터였다”며 “팀닥터 말 한마디면 경기 출전이 어려울 수도 있으니 아무래도 다가오기 쉽진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배 교수는 “하지만 제가 집에서 아이를 대하듯 친근감 있게 대해주고 대회 기간 중 정도 쌓이다 보니 나중에는 ‘경기에서 골을 넣었는데 박사님은 왜 와서 축하해주지 않느냐’는 농담도 할 정도가 됐다. 그 이야기를 듣고 이제 아이들이 마음의 문을 열었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이번 대표팀 선수들 중 가장 실력이 좋고 인기가 많았던 배준호 선수(대전하나시티즌, FW)와 에피소드도 소개했다.

배 교수는 “배준호 선수가 16강 에콰도르전에서 도움과 골로 부각됐을 때 국내 주요 언론과 인터뷰를 했다. 보통 선수들은 팀닥터를 ‘박사님’이라고 부르는데, 당시 인터뷰에서 제 이름을 거론하며 감사를 표했다. 선수가 팀닥터 이름을 기억해서 직접 거명해주는 것을 보고 개인적으로 뿌듯함을 느꼈다”고 전했다.

배 교수는 “이번 대회를 통해 배준호 선수가 인기가 많아졌다. 때문에 선수 유니폼을 바라는 사람들도 많았는데, 제가 준호에게 ‘니 이름 이니셜과 내 이름 이니셜이 BJH로 같으니 니 유니폼은 나 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그래서 대표팀 마지막 경기인 이스라엘과 3~4위전에 입었던 유니폼은 제가 갖게 됐다”고 개인적 인연도 전했다.

하지만 선수들과 라포르(rapport)가 형성될 수록 팀닥터로서 역할 수행에 어려움도 있었다.

배 교수는 “축구경기는 보통 일주일에 한경기 정도 하는데 이번 대회는 3주 동안 7경기를 해야 했다”며 “어린 선수들이 (성인 선수들에 비해) 아직 준비가 안돼 있는 부분들이 있는데, 짧은 기간에 여러 경기를 뒤다보니 체력적으로 어려움이 많았다”고 말했다.

배 교수는 “선수 기용 최종 결정은 감독이 하지만 팀닥터는 선수 몸 상태를 정확히 전달해줘야 한다. 팀닥터가 ‘이 선수는 출전할 수 없다’고 하면 감독도 선수 기용을 하지 않는다”며 “하지만 당시 상황은 (출전을 막는 것 보다는) 컨디션을 최상으로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최선이었다”고 회상했다.

배 교수는 “선수들 역시 예선부터 난적들을 꺾고 16강, 8강, 4강 전을 치르는 과정에서 많이 힘들어했지만 끝까지 최선을 다했다”며 “때문에 이탈리아전이 끝나고 나서 선수들과 코치진, 스텝들 모두 아쉬움의 눈믈을 흘렸다”고 말했다.

온두라스 전 영웅 박승호 선수 부상 때 가장 긴장

팀닥터로서 대회기간 중 가장 긴장한 순간은 온두라스 전에서 박승호 선수(인천유나이티드, FW)가 부상을 당한 순간이었다. 박 선수는 온두라스 전에서 후반 교체 투입돼 2대 2를 만드는 동점골을 넣었지만 득점 후 부상으로 다시 교체됐다.

배 교수는 “박승호 선수가 득점한 후 10여분 정도 지났을 때 그라운드에서 한 선수가 갑자기 쓰러졌다. 피파 주관 경기에서는 선수가 쓰러져도 심정지나 뇌진탕 의심이 아니면 팀닥터가 그라운드에 들어가기 위해 심판 콜이 있어야 하지만 너무 위험해 보여 콜 전에 뛰어들어갔다. 다행히 심판이 바로 콜을 해줬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배 교수는 “들어가서 보니 (심정지나 뇌진탕 등) 심각한 상황은 아니었는데 박승호 선수가 ‘다리에서 뚝 소리가 났다. 경기가 어려울 것 같다’고해 바로 교체했다”며 “뚝 소리가 나는 손상이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어 병원에서 엑스레이와 MRI 촬영까지 한 결과 골절 판정을 받아 이후 경기 출전이 어려워졌다”고 덧붙였다.

배 교수는 “전공분야가 무릎이기 때문에 정확한 의학적 소견을 듣기 위해 국내 발목 전문의 선생님과 통화한 후 수술 결정을 내렸다. 16강 진출이 거의 확정이었기 때문에 선수는 귀국하지 않고 선수단과 함께하고 싶어했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워 먼저 귀국할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선수단 입국 시 환영식에는 참석했다”고 했다.

박승호 선수의 뜻밖의 부상으로 공격수 자원이 부족해진 대표팀에서는 이영준 선수가 전경기를 모두 뛰어야 했다. 짧은 기간 많은 경기를 뛰어야 하는 대회 특성상 대표팀에게는 아쉬운 부분 중 하나다.

어린 선수들 위한 꾸준한 부상관리 시스템 필요

개인적으로 병원 내 농구팀을 꾸려 대회에 나갈 정도로 스포츠를 좋아하고 정형외과 의사로서 대표팀 팀닥터까지 경험한 배 교수는 국내 유소년 선수 부상관리 시스템에 대한 아쉬움도 표했다.

배 교수는 “축구뿐만 아니라 모든 종목에 해당될 것인데, 유소년 선수들 부상이 발생했을 때 가이드라인에 따라 선수를 보호하고 회복시키고 시합에 복귀시키는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며 “우리나라는 아직 미국이나 유럽에 비해 부족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배 교수는 “이런 부분에 대해 대한스포츠의학회나 대한정형외과학회에서 충분히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관련 가이드라인을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목소리를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 있는 감독, 코치들과 소통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배 교수는 “각 종목 협회마다 팀닥터가 있는 곳도 있고 없는 곳도 있다. (축구협회) 의무위원들도 본업이 있다보니 대표팀 선수들에 대한 지속 관리가 안된다”며 “축구협에 상주하며 어린 선수들의 몸상태를 지속 관리하는 시스템이 있으면 좋은데,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있다. 어린 선수들을 위해 좋은 시스템이 만들어지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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