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신대 복음병원 혈액종양내과 이호섭 교수
급성림프모구백혈병은 매우 공격적인 진행 양상을 보이며, 재발 역시 잦은 특성을 갖고 있다. 이로 인해 성인 환자의 5년 생존율이 35.5%에 불과할 정도로 예후가 좋지 않다.
급성림프모구백혈병 환자의 생존율을 높이기 위한 중요한 열쇠는 재발의 강력한 예측 인자인 미세잔존질환(Minimal Residual Disease, MRD)을 치료하는 것이다. 미세잔존질환은 환자의 재발 및 사망 위험과 밀접하게 연관된 만큼, NCCN (National Comprehensive Cancer Network) 가이드라인에서도 완전관해 도달 후 미세잔존질환 모니터링을 권고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 환자들에게 미세잔존질환 치료는 눈앞에 있음에도 쉽사리 손에 닿을 수 없는 뜬 구름 같은 이야기다. 현재 국내에 해당 적응증으로 ‘허가 받은’ 치료제는 있지만, ‘급여가 적용되고 있는’ 치료제는 없기 때문이다.
2020년에 급성림프모구백혈병 환자의 미세잔존질환 치료에 대해 허가를 획득한 암젠의 블린사이토는 현재까지도 해당 적응증에 대한 유일한 치료제다.
허가의 근거가 된 BLAST 연구에 따르면, 첫 번째 완전관해를 획득한(1st complete remission, CR1) 미세잔존질환 양성 환자에게 블린사이토를 1주기 투여했을 때 83%가 미세잔존질환 관해를 경험했다. 블린사이토 1주기 투여 후 미세잔존질환 음성을 달성하지 못한 환자의 무재발생존기간(relapse free survival, RFS) 중앙값은 5.7개월인 반면, 미세잔존질환 음성을 달성한 환자는 RFS 중앙값에 도달하지 못했다.
장기 관찰 결과에서는 멀게만 느껴졌던 ‘완치’의 가능성도 엿볼 수 있었다. CR1 미세잔존질환 환자 중 블린사이토 1주기 투여 후 미세잔존질환 음성을 달성한 환자는 전체생존기간(overall survival, OS) 중앙값에 도달하지 못했다. 미세잔존질환 음성을 달성하지 못한 환자의 전체생존기간(OS) 중앙값이 10.6개월인 것과 비교하면 놀라운 결과다.
특히 올해 개정된 NCCN 가이드라인에서는 1차 완전관해 후 미세잔존질환이 존재하거나 증가하는 성인 급성림프모구백혈병 환자에게 블린사이토를 유일한 치료 옵션으로 권고한 바 있다.
이미 미국, 영국, 독일, 스위스 등 해외 주요국에서는 블린사이토의 임상적 유용성을 인정하고 미세잔존질환 치료에 대해 급여를 적용하여, 많은 환자들이 치료 혜택을 누리고 있다.
명확한 연구 데이터를 갖추어 치료 가이드라인에서 단독 권고되며, 해외 각국에서 널리 사용되는 치료제가 국내에서는 급여라는 장벽에 가로막혀 있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치료되지 않은 미세잔존질환으로 인해 재발 위험에 놓인 환자들이 많다. 만약 재발로 이어진다면 병세가 급격히 악화되어 긍정적인 예후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치료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지에 내몰리는 환자가 없도록 조속한 급여 환경 개선을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