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혈액학회 이제환 이사장, "초기 임상 배제되며 도입 시기 늦어져"
국내외 임상시험 개시에도 인체세포등 관리업 허가까지 투여 지연돼
"수요일에 T세포 채집하기로 했는데, 그날 새벽부터 00이 상태가 안 좋아졌어요. 하루 반 동안 엄마 아빠 동생 옆에서 얘기들으며 버티다가 6월 10일 목요일 낮 2시 53분에 고향인 하늘나라로 돌아갔어요. (중략) CAR-T를 못해준 게 평생 한이 되겠지만, 이제 아프지 않은 곳으로 갔다는 것으로 위안해 봅니다. (중략) 부디 CAR-T가 빨리 접근성이 좋아져 우리 아이처럼 목숨을 잃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CAR-T 치료를 위한 T세포 채집을 코앞에 두고 결국 하늘나라로 떠나버린 13세 A군의 어머니가 지난 11일 블로그에 올린 게시글이다.
2014년 급성림프구성백혈병을 진단 받고 재발을 거듭하며 7년간 병마와 싸워온 A군. 최근 국내 도입된 CAR-T 세포치료제 '킴리아'라는,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기회를 간절히 기다렸지만 끝내 A군에게 그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비단 A군만의 일은 아니다. 2017년 8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킴리아'가 최초의 CAR-T 세포치료제로 허가된 지 벌써 4년에 가까운 시간이 지났지만, 한국에서는 올해 6월에서야 겨우 첫 투여 사례가 나왔다.
CAR-T 세포치료제의 개발은 혈액암 치료 분야에 가장 큰 성과로 꼽히고 있다. 재발을 거듭하고 더이상 치료옵션이 남아있지 않은 환자에게 CAR-T 세포치료제는 완치를 기대할 수 있게 하는 '꿈의 치료제'로 불리고 있다. 관련 전문가들은 종국에는 CAR-T 세포치료가 혈액암의 표준치료로 자리잡게 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기도 하다.
"CAR-T 세포치료제의 늦은 도입, 우리나라엔 뼈아픈 부분"
이토록 유망한 CAR-T 세포치료제가 어째서 국내에 도입되기까지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린 걸까? 대한혈액학회 이제환 이사장은 그 원인으로 '초기 임상시험에서의 배제'를 꼽았다.
이제환 이사장은 "CAR-T 치료제는 다른 약과는 달리 제조 공정이 복잡하고 그에 따른 규제나 비용 부담도 많아, 우리나라가 글로벌 제약사들이 진행하는 초기 임상시험에 참여하지 못했다"라며 "그러다 보니 도입 자체도 많이 늦어지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국내 CAR-T 도입이 늦어지긴 했지만 전 세계적으로 CAR-T는 가장 핫(hot)한 치료제"라며 "그러나 가슴 아프게도 지금 우리는 전 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CAR-T 연구 데이터들을 그저 바라보고만 있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최근 첨단재생바이오법(이하 첨바법)이 생기면서 규제 부분이 좀 더 명확해지고, '킴리아'가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승인을 받음에 따라 국내 CAR-T 치료 에도 속도가 붙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제환 이사장은 "첨바법 생기고 많은 연구기관들이 재생의료실시기관 허가를 받으며, 국내에서도 CAR-T 임상시험이 시작됐다"며 "이와 더불어 관련된 연구비도 풀릴 것으로 보여 점차 CAR-T 자체 개발에도 속도가 붙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국내 기업인 큐로셀이 자체 개발 중인 CAR-T 치료 후보물질 'CRC01'의 1상 임상시험을 시작했고, 지난 4월 20일 삼성서울병원에서 국내 첫 CAR-T 세포치료제 투여 환자가 나왔다.
재발·불응성 미만성 거대B세포림프종(DLBCL) 환자 치료에 개발 중인 이 약은 현재 국내 의료기관 중 유일하게 '인체세포등 관리업' 허가를 받은 삼성서울병원에서 약 100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2상 임상시험까지 진행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국내 자체 개발 연구가 활발해질수록 환자들의 CAR-T 치료 접근성은 올라갈 수밖에 없다는 게 이 이사장의 설명이다.
이제환 이사장은 "CAR-T 치료에 있어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슬프게도 돈"이라며 "킴리아의 경우 약값만 4억~5억원에 달하며, 전처치나 후처치 비용까지 생각하면 5억원이 훌쩍 넘는 비용이 든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런 비용을 개인이 부담할 수 있는 환자가 과연 얼마나 될까"라고 반문하며 "환자들이 CAR-T 치료를 받기 위해서는 건강보험급여가 적용돼야 하는데, 4억~5억원에 가까운 정부 부담은 사회적 공감대를 얻기 쉽지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
이 이사장은 "킴리아 치료를 위해서는 전처치와 후처치 등이 필요하다. 단순히 킴리아 약가만이 문제가 아니다"라며 "예를 들어 CAR-T 치료 후 발생할 수 있는 사이토카인방출증후군(CRS)를 관리하기 위해서는 토실리주맙과 같은 약제가 필요한데, 이런 부분에 대한 급여 준비도 전혀 돼 있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렇기 때문에 CAR-T 치료는 더욱더 국내 개발이 중요하다"라며 "중국에서도 자체적으로 개발이 이뤄지고 있다. 자체 생산이 가능해지면 CAR-T 치료의 가장 큰 단점인 '돈 문제'의 해결 실마리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인체세포등 관리업' 허가, CAR-T 치료 지연에 한몫
국내 환자들의 CAR-T 치료제 투여가 늦어지는 데는 첨바법도 한몫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현재 큐로셀말고도 글로벌 제약사인 얀센 역시 다발골수종 치료에 개발 중인 후보물질 'JNJ-68284528'의 3상 임상시험을 국내에서 진행 중이다. 한국 참여 환자수는 12명으로 삼성서울병원, 서울성모병원, 서울대학교병원이 연구기관으로 참여했다.그러나 첨바법에 따른 '인체세포등 관리업'으로 허가 받은 의료기간은 현재 삼성서울병원 한 곳이 유일해 그 외 병원에 등록된 환자들은 사실상 해당 기관이 '인체세포등 관리업' 허가를 받을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다.
이 이사장은 "CAR-T 치료제를 쓰기 위해서는 '인체세포등 관리업' 허가를 받도록 돼 있다"며 "T세포를 채집해서 분리하는 과정을 의료기관에서 하느냐 안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데, 킴리아의 경우에는 의료기관에서 이런 프로세싱을 해야 하기 때문에 허가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앞서 언급한 A군 역시 원래 다니던 병원에서 '인체세포등 관리업' 허가가 8월에야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7년간 다니던 병원을 옮겨야 했다.
늦었지만 한국에서도 CAR-T 치료 기반이 하나둘 마련되고 있다. 규제부터 시작해 첨바법 적용 제1호 약제로 킴리아가 허가를 받으면서 급여에 대한 논의도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하지만 환자들이 CAR-T 치료로 완치에 대한 소식을 처음 들은 지는 이미 수년이 지났다. 그 사이 우리나라 환자들은 희망이, 기대가 현실로 이어지지 못했다. 하루 빨리 '희망 고문'에서 고문이란 단어가 떼어지길 기대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