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령사회 일본, 재택의료를 실험하다’ 번역한 서울대병원 장학 교수

초고령 사회에 진입한 일본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고령 인구가 급격히 늘면서 의료·요양비용 등을 포함한 사회보장급부비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반면 생산연령인구는 줄어 국가 재정을 압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인구 당 병상수가 많고 재원기간이 긴 일본의 의료이용 특성으로 인해 사회보장급부비를 향한 압박은 점점 커지고 있다.

이에 일본은 오는 2025년까지 전국 약 135만 병상 중 약 20만 병상을 감소시켜 재정 부담을 줄이겠다는 방침을 내놨다. 대신 주거를 중심으로 의료와 돌봄, 복지를 유기적으로 제공하는 ‘지역포괄케어 시스템’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병상 감소가 또 다른 사각지대를 만들었다. 암이나 만성질환 등을 앓고 있는 고령자들이 오히려 ‘의료난민’ 위기에 처한 것이다. 이 같은 의료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최근 일본이 새로운 실험을 시작했다.

엄밀히 말하면 일본의 임상의인 ‘시바하라 메이이치’가 지난 2012년 일본의 폐허가 된 병원의 병상이나 건물을 ‘재택형 의료병상’으로 소생시킨 ‘이신칸’이 의료난민 구출을 위한 방안으로 탄생한 것이다.

‘의사의 마음을 갖고 있는 공간’이란 의미가 담긴 이신칸이 추구하는 재택형 의료병상은 일본에서 의료 의존도가 높은 환자의 요양병상에 일상의 기능을 더한 집합주택으로 재택요양과 병원 입원의 장점을 합친 새로운 의료 및 요양모델로 떠오르고 있다.

빠른 고령화 속도로 일본을 추격하고 있는 한국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부과방식으로 운영되는 우리나라 노인장기요양보험도 보험료를 납입하는 근로연령계층이 보험급여를 수급하는 노년계층을 부양하고 있지만 고령화 속도가 빨라지면서 노인장기요양보험 재정을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효율적인 재정 지출과 더불어 어쩌면 우리도 겪을지 모를 의료난민이 되지 않기 위한 정책적 고민이 필요한 시점에서 신간 ‘초고령사회 일본, 재택의료를 실험하다’가 출간됐다. 책은 이신칸을 탄생시킨 시바하라 메이이치가 쓴 ‘재택형 의료병상’을 번역한 것으로 서울대병원 성형외과 장학 교수가 번역을 맡아 이신칸이 탄생하게 된 배경과 새로운 시도 과정을 상세히 담아냈다.

장 교수를 만나 한국의 노인의료 정책과 더불어 재택형 의료병상이 초고령 사회를 대비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새로운 해법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해 들어봤다. 장 교수는 최근 청년의사가 만드는 의사들을 위한 의학전문채널 ‘의대도서관’에 출연하기도 했다.

- 번역을 맡게 된 배경이 궁금하다.
어머님이 경도인지장애 판정을 받고 어떻게 케어를 해야 할까 고민하던 상황에서 일본 학회 참석차 홋카이도의 한 서점을 들렀을 때 이 책을 발견했다. 원제는 ‘의료난민을 구하는 재택병상’이었다. ‘의료난민’, ‘재택병상’이라는 단어가 매우 자극적이었고 임상의가 직접 쓴 내용이다 보니 현실 감각이 돋보일 것 같다는 생각에 이 책을 발견하고는 단숨에 읽었다. 일본에서 시작된 새로운 시도에 새삼 놀라면서 우리나라에서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 관심이 갔다. 우리보다 먼저 초고령화 사회를 맞이한 일본의 솔루션을 우리가 벤치마킹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어 번역하게 됐다.

또 일본에서 태어나 한국인으로서 정체성 혼란을 느끼던 초등학생 시절 한국으로 들어왔다. 서울의대를 졸업한 후 일본으로 돌아가 성형외과 전문의 및 의학박사를 취득하며 10년을 더 있었다. 이후 한국으로 들어와 서울대병원에 재직하고 있다. 일본과 한국의 의료시스템을 모두 경험한 임상의로 흥미롭게 읽은 책을 공유하고 싶었다.

- 고령화를 준비하는 일본의 고민도 깊어 보인다. 일본의 상황은 어떤가?

세계 최고의 의료보험 시스템으로 수명이 늘어났는데 결국 부메랑처럼 그로 인한 고령화 문제를 맞닥뜨리게 됐다. 일본 지인들도 너무 심각하다고 할 정도다. 고령화로 인해 노인이 노인을 돌보는 ‘노노케어’나 자신도 인지장애 환자인데 인지장애 배우자를 돌봐야 하는 ‘인인케어’가 자살문제로 이어진 사건도 있었다. 또 대책 없는 병상 축소가 갈 곳 없는 의료난민을 양산하게 되는 원인이 됐다.

- 저자는 재택의료와 입원의료의 장점을 조합한 재택형 의료병상인 ‘이신칸’을 초고령화 사회 의료 및 요양모델로 제안했다. 가족 돌봄에 의존하는 재택의료에서 벗어나 효율적으로 의료 서비스를 공급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강점이 있어 보인다.

기존의 의료시스템 안에서 해결하지 못하는 환자군을 수용할 수 있는 하나의 선택지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성기와 종말기 환자에게 요양병상을 제공하고, 체계적인 간호 케어를 상시 제공함과 동시에 해당 지역 개원의가 외래를 담당하면서 필요에 따라 방문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특히 적정한 비용 범위 내에서 본인이 거주하고 정들었던 지역 안에서 생의 마지막을 보낼 수 있다는 점이 강점이다. 또 무너져 가는 지역의료를 다른 측면에서 활성화시킨다는 점에서 매우 좋은 예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어디까지 발전할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빈자리가 나면 가는 요양병원 아냐…맞춤케어 하는 곳"

- 재택형 의료병상이 일본에서 성공하기 위해 필요한 요소가 있다면?

일본 의료시스템 안에서 재택형 의료병상이 성공하려면 무엇보다 인력 조달과 지역 포용성이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자원봉사와 간호 인력이 지속적으로 지원돼야 하는데 현지인 도움이 없이는 안 될 거다. 또 우리나라처럼 혐오시설로 인식돼 지역민들이 반대한다면 결코 운영될 수 없다. 지금까지 이신칸의 시작은 성공으로 보인다. 책이 처음 나왔던 지난 2018년 3개 정도였다면 현재 41개까지 늘었다.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단순히 요양병원처럼 빈자리가 나면 가는 곳이 아니다. 코디네이터가 있어 적합한 환자를 충분한 상담 후 모시고 와서 맞춤 케어를 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곳이다.

- 재택형 의료병상에 유휴 간호사를 활용한 점도 눈에 띈다.

의료현장에서 간호 인력은 많이 필요하지만 힘든 직업이라 이직률과 사직률이 높은 편이다. 지역과 연계해 해당 지역 내 유휴 간호사들이 재택형 의료병상에서 간호경력을 살려 일할 수 있도록 해 인력 자원을 순환할 수 있도록 한 점도 특징이다.

- 우리나라 상황도 마찬가지다. 고령화로 인한 노인의 돌봄과 의료제공에 대한 고민이 커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재택형 의료병상이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나.

정책적으로 시도를 해볼 수 있겠으나 법적인 부분은 물론 우리나라 의료 시스템 안에서 수요가 있을지 등 다양하게 살펴봐야 할 것 같다. 하지만 24시간 간호 체계를 갖추는 대신 의사를 아웃소싱 방식으로 필요에 따라 운용하는 부분은 당직을 서보거나 중소병원에서 일해 본 의사라면 충분히 이 시스템에 대해 공감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임상의인 저자가 경험한 것처럼 대학병원이 아닌 중소병원에서 당직을 서게 되면 수십 병상이 있지만 당직 의사는 1명뿐이다. 응급한 상황이 아닌 경우를 제외하고는 간호사들이 모든 일을 한다. 급성기 환자가 아닌 입원 환자들의 경우 의사가 체크할 일이 별로 없다. 저자는 어느 정도 치료가 끝났지만 돌봄이 필요한 환자들이기 때문에 의사 없이도 충분히 돌아갈 수 있다는 걸 직접 실험을 해본 거다. 처음 새로운 시스템에 대해 일본에서도 거부감이 많았다고 들었다. 하지만 의사 없이도 돌아갈 수 있다는 점을 입증했고 체험한 것이기 때문에 반박하는 의사는 없을 거다.

- 이 책을 누가 읽었으면 좋겠나.

일본의 사례지만 적어도 갈 곳이 없는 환자가 갈 곳이 생겼다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이신칸 같은 전문적인 병상이 본인이 살던 지역이나 근처에 있다면 환영받을 수 있지 않겠나. 의료난민을 해결하는 역할은 해주고 있는 것 같다.

재택형 의료병상을 주로 이용하는 만성기와 종말기 환자를 돌봐야 하는 가족이 있거나, 실제로 방문간호를 제공하는 사람들, 현장의 의료진들, 또 정책을 만드는 정부 관계자들이 이 책을 봤으면 좋겠다. 이 책을 읽고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된다면 국민들도 정부에 정책 제언을 할 수 있지 않겠나. 국민의 니즈가 있다면 정책화 과정에 더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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