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 의사들 우려 목소리 커져…“판단의 파장 훨씬 클 수 있어 신중 필요”
정부·여당과 대한의사협회 간 합의에 반발한 의대생들이 의사국가고시 실기시험을 거부하기로 하고 투쟁을 지속해 나가기로 하자 선배 의사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올해 의사국시 실기시험에 응시한 의대생들은 전체 응시대상자 3,172명 중 446명으로 14%에 그쳤다.
복지부는 앞서 지난달 31일 의대생의 90% 가량이 의사국시 거부 의사를 밝히자 시험 일정을 지난 1일에서 8일로 늦추고 시험 재접수 기한을 7일 0시까지로 연장한 바 있다.
하지만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 비상대책위원회가 전국 40개 의과대학 응시자대표회 의결에 따라 만장일치로 국시 거부를 유지하기로 결정하면서 재접수에도 불구하고 전체 응시자의 86%가 거부의사를 밝혔다.
그러자 1년 유급을 각오하고 투쟁에 나서는 의대생들을 향한 선배 의사들의 진심 어린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
서울대병원 권용진 교수는 SNS를 통해 “교수로서, 선배 의사로서 정책 추진과정에서 투명성이라는 민주적 과정 등이 약식처리된 채 추진된 사회를 물려주게 돼 미안하고 부끄럽다”고 운을 뗐다.
권 교수는 “여러분은 불공정에 분노했고 공개와 투명성이 미흡한 정책과정에 분노했다”며 “젊은 청년들이기에 사회 부조리함에 맞서 싸울 수 있고, 또 싸워야 한다. 그것이 역사이고 사회 발전의 동력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권 교수는 “현재 여러분이 처한 상황은 주장의 순수성과 관계없이 깊은 상처를 받기 직전에 놓여 있다”며 “의료계 대표인 의협이 정부와 합의를 했고 이를 무시하는 것은 민주적 절차를 부정하는 자가당착에 빠질 수 있다”고 했다.
권 교수는 “여러분의 결정에 따라 교수도, 전공의도, 의협도 절대 원하지 않는 선택에 몰리게 될 것”이라며 “사회는 ‘사회적 신뢰를 지킬 것인지’, ‘후배들을 지키는 집단 이기주의자들인지’ 이분법적으로 물을 것”이라고도 했다.
권 교수는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는 투쟁이 돼야 한다고 다독였다. 서두르기 보다 다음을 모색하기 위해 신중함을 잃지 않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권 교수는 “여러분의 반대 세력 입장에서 보면 모든 합의를 뒤집을 수 있고 의사들을 오합지졸로 몰 수 있다”며 “의료계에 가장 큰 상처가 남을 거다. 지금은 명분이 더 종요해 보일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상처는 깊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권 교수는 “여러분의 분노는 옳지만 오늘의 전술은 잘못됐을 수 있다”면서 “단순하고 명쾌하게 판단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 판단의 파장은 의료계와 사회 전체의 역사에 훨씬 큰 파장을 불러올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여러분이 학교로 돌아와 그 다음을 모색할 때인 것 같다”면서 “국시 문제는 응시하겠다고만 한다면 모든 교수들이 나서서 시험을 다시 볼 수 있도록 여러분을 도울 것”이라며 “신중한 판단을 부탁한다”고 당부했다.
투쟁을 유지키로 한 의대생들을 향해 극한 대립으로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을 피하고자 다시 한 번 신중하게 고려해 줄 것을 부탁하기도 했다.
한국의학교육협의회 관계자도 “정부에 의대생들 국시 거부가 전공의 파업과 연결돼 있는 상황이니 미뤄달라고 요청했으나 더 이상 정부가 연기하지 않겠다고 이야기하니 더는 (요청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학생들도 생각해야 할 부분이 있다. 투쟁 외에도 방법은 많다. 공부를 하면서 투쟁을 할 수도 있다”면서 “이런 기회가 많지는 않겠지만 전공의들도 파업을 접으려고 하는 상황에 학생들이 이를 붙잡고 있는 꼴이 된다. 앞날이 너무 걱정된다”고 했다.
한편, 복지부는 국시 응시율이 낮지만 당장 8일로 예정된 실기시험을 예정대로 치르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미 한차례 재응시 기회를 줬음에도 응시하지 않았고, 재응시 기회를 또 주는 것은 국가시험을 보는 타 직종과 형평성에도 맞지 않는다는 판단에서다.
복지부 한 관계자는 “의사국시 응시 기간을 이틀 연장함으로써 구제 방안을 모두 마련해 줬다”며 “더이상 해줄 수 있는 게 없다”고 답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