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의원과의 싸움서 '敗'…"건드리지 말았어야 할 역린을 건드렸기 때문"

[청년의사 신문 송수연]
대한의사협회 106년 역사상 최초 불신임을 당해 자리에서 물러난 회장이 된 노환규 전 회장은 취임 후 2년 동안 대의원이나 시도의사회장들로부터 ‘불신임 경고’를 끊임없이 받아왔다. 회무를 독선적으로 한다는 게 기존 의료계 지도부의 가장 큰 불만이었다.
노 전 회장과 시도의사회장, 대의원들은 사사건건 부딪혀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럴 때마다 어김없이 등장했던 경고가 ‘불신임’이었다. 지난해 8월에는 ‘토요휴무가산-만성질환관리제 빅딜설’이 제기되면서 한차례 홍역을 치르기도 했다. 당시 조행식 대의원은 노 전 회장이 ‘IT 기반 질병관리서비스업체’가 개입하는 한국형 만성질환관리제 모형을 개발, 이를 통해 추후 사적 이익을 추구하려 했다며 전체 대의원 242명에게 편지를 보내 노 회장에 대한 불신임안 발의 동의서를 받았다. 이때는 불신임안 발의 요건(재적대의원의 3분의 1)인 81명을 넘지 못해 불발됐다.
3·10 총파업 등 그 어느 때보다 강도 높은 대정부 투쟁을 벌였던 올해에도 이들의 대립은 계속됐으며 급기야 대의원회가 노 전 회장을 배제한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 일선에서 물러나라는 일종의 경질인 셈이다. 이 과정에서도 불신임 경고는 이어졌다.
하지만 이번에는 경고에 그치지 않았다. 불신임 경고가 실행으로 이어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건 노 전 회장이 내부개혁을 강조하며 내민 ‘대의원회 해산 카드’였다.
노 전 회장은 비대위에서 빠지라는 대의원회의 결정에 ‘사원총회(회원총회)를 통한 내부개혁’으로 반기를 들었다. 노 전 회장은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나 “회장과 의장, 상임이사회와 대의원회 운영위로 권한이 분산돼 있는데 회원들의 권한은 없다”며 “의협의 가장 큰 권력을 회원들에게 돌려줘야 한다. 중요한 의사 결정을 회원 투표를 통해 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사원총회 안건으로 대의원 선출 방식을 변경하는 정관개정안 외에도 대의원회 해산을 다루겠다고 했다. 노 전 회장과 대의원회의 대결 구도가 ‘개혁 세력 vs 반(反)개혁 세력’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때문에 노 전 회장 불신임안을 논의한 지난 19일 임시대의원총회에 178명이라는 대의원이 참석한 것은 자신들이 척결돼야 할 구세력, 반개혁 세력으로 몰린 것에 대한 반감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많다.
한 대의원회 운영위원은 “노 전 회장을 불신임하는 이유에 대해 여러 가지 얘기들을 했지만 결정적이었던 건 대의원회 해산이었다”며 “노 전 회장이 대의원회를 해산하겠다고 해서 불신임된 것”이라고 말했다. 대의원인 한 개원의사회장은 “내가 언제부터 물러나야할 노회한 인물이 됐느냐. 혁명을 통해 뒤바꿔야 할 정도로 의료계가 썩어 문드러졌다는 의미냐”며 “의료계가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하게 분열되고 있는 책임을 이쪽(대의원)으로만 몰아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노 전 회장 취임 초기 있었던 대의원회와의 대립은 시도의사회장을 거쳐 의협 회장이 되는 ‘정규 코스’를 밟지 않은 비주류 출신 회장에 대한 주류의 반감으로 보는 시각도 있었다. 이후에는 독선적인 회무 추진 방식이 문제가 됐었다. 그래도 불신임 경고가 실행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대의원회 해산 카드’를 공개한 지 19일 만에 노 전 회장은 불신임 됐다. 이에 노 전 회장이 건드리지 말았어야 할 ‘역린(逆鱗)’을 건드렸다는 말도 나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