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을지대병원 외과 문윤수 교수

1.

"선생님, 어제 사망진단서 세장이나 작성하셨네요. 고생하셨습니다."

아침 컨퍼런스에서 충혈 된 눈으로 전날 환자들을 말한다. 세 번 사망 선언하고, 사망진단서세장에 서명해야만 하는 상황을 담담히 말씀하신다. 낮 시간에 작업 도중 높은 건물에서 추락한 환자, 스스로 목숨 끊은 환자. 마지막 사망진단서는 새벽 1시에 한 생명을 마무리하는 도장이 찍혀나갔다. 오토바이 사고로 가슴, 배에 피가 나 수술 중 환자가 못 버티고 사망한 환자. 총 세 장 사망진단서에 면허번호와 사망 선언한 의사 서명이 적혀나갔다.

나도 지금껏 수없이 많은 사망진단서를 썼으며 앞으로 내 면허가 있는 한 얼마나 더 쓸지 미지수다. 하지만 어느 사망진단서도 흔쾌히 쓴 적도 없고 다시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의사면허를 가진 내가 바라고 해야 하는 것은 사망진단서 서명이 아니라 환자가 회복해 건강히 걸어 퇴원하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수많은 사망진단서가 머리에 맴돌고 떠났지만, 내가 너무나 쓰고 싶지 않았던 사망진단서 한 장과 내 마음 한편에 나도 모르게 써버리고 부끄럽게 지워버린 사망진단서 한 장은 계속 남아 있다.

"상태가 안 좋아지면 연락 주세요. 바로 오겠습니다."

사고 직후 달려온 회사 관계자들은 어디론가 전화하더니, 수술 직후 주치의인 내 설명을 듣는 척만 하고 그들이 하고 싶은 말만 한 후 병원을 떠났다. 그 순간 두 다리를 잃고 몸뚱이만 남은 청년은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중환자실에서 몸부림치고 있다. 청년은 코리안 드림을 선물해주리라 믿어왔던 회사 사람들이 이 정도로 매정할지는 몰랐을 것이다. 이미 두 다리는 몸통에서 분리된 상태이고 인공호흡기에 피와 약물이 주렁주렁한 상태로 마음만은 간절히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 꿈꾸고 있다. 사망진단서를 쓰기 싫었다. 어떻게든 두 다리를 잃어버린 저 청년을 살려야겠다는 마음뿐이었다. 영화 국제시장에서 독일 어느 탄광에서 운명한 우리네 할아버지, 아버지들처럼 저 청년을 허망하게 보내기 싫었다.

‘기계로 골반 압착 받는 20대 환자입니다. 혈압도 잡히지 않고 의식도 없습니다.’ 숨이 넘어갈 듯한 119 구급대원 말과 동시에 밀어닥친 그 청년은 나와 1박 2일 함께 하였다. 다음날 내가 그렇게 쓰기 싫었던 그 서류를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 왔다. 수없이 쏟아 붓는 피와 수액, 약물에도 그 청년은 버티지 못하였다. 몸통과 두 다리가 분리되어 있는 청년은 마지막 살아있다는 생명 끝자락을 보여주던 모니터 숫자도 방금 0으로 바뀌었다. 집에서 연락받겠다고 냉정히 말하고 떠난 회사 관계자는 다른 상사와 왔다. 그들은 청년 목숨이 궁금하지 않고 원하는 것은 단 한 가지였다.

“서류 주세요."

회사 관계자 말은 정확히 풀어서 말하면 ‘사망진단서 빨리 주세요’다. ‘빨리’라는 단어가 그들 눈에 또렷이 쓰여 있다. 함께 일하는 회사 동료를 추모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떻게든 빨리 사건처리하고 마무리하려고 내뱉은 차가운 한마디였다.

2.

머릿속으로 사망진단서를 작성하고 있다. 직접사인은 다발성 장기부전, 아니면 패혈증이라고 써야 하나 썼다 지웠다 반복한다. 직접사인은 다발성 외상, 구체적으로 개방성 골반뼈 골절이라고 써야 맞다. 이어지는 원인에는 교통사고, 칸이 길게 더 있으면 25톤 트럭에 깔려 뭉개짐이라고 쓰고 싶었다. 잊을 때가 되며 다시 쓰는 사망진단서이지만 언제나 어떻게 써야 한 사람의 마지막을 정확히 기록할 수 있을지는 고민이다. 어쩌면 트럭에 깔려 으스러진 골반 사진을 사망진단서에 첨부해야 가장 잘 설명을 해주리라 생각된다. 외인사, 사고 칸을 클릭한 후 사고 시간과 장소를 적으면 마무리된다. 사망진단서가 머릿속에서 마무리되어가던 중, 그녀 머리맡에 모니터 알람 소리가 크게 울려 내 머리를 한대 때렸다. 그녀는 살아있다. 썩어가는 골반과 다리 근육, 피부를 바라보고 동시에 모니터에 그녀 혈액과 피부에서 자라는 고약한 균을 보니 암담하였다. 그나마 균에 맞는 항생제가 남아 있다는 사실이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지난 가을이다. 소리가 아니라 뼈와 살이 으스러지는 절규다.

“너무 아파요. 허벅지, 다리가 너무 아파요. 아파 죽겠어요.”

“이제 자게 해줄게요. 지금부터 안 아프고 잠들게 해줄게요."

그녀를 강제로 잠들게 하고, 입안에는 관을 억지로 넣고 인공호흡기에 숨을 맡겼다.

‘아파 죽겠어요’ 가 그녀가 이 세상에서 내는 마지막 목소리가 아니고, 분명 다시 살아나 고통스런 절규가 아닌 아름다운 목소리로 다시 말하리라 나는 믿었다. 그러나 최악의 경우, 마지막 그녀 목소리를 들은 사람이 내가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항상 있었다.

인간이 어디까지 다칠 수 있는지 한계를 보여주고, 몸이 산산조각 으스러진다는 말은 그녀에게 해당한다. 사람 몸은 내부 장기와 뼈를 보호하기 위해 근육, 피하지방과 피부로 단단하게 겹쳐져 있다. 그녀는 자신 몸보다 수백 배 무겁고 커다란 트럭에 깔렸다. 골반뼈 반쪽이 으스러지며 한쪽 골반부터 엉덩이, 허벅지에서 다리까지 피부, 근육이 떨어져 나갔다. 119구조대에 실려 온 그는 한쪽 엉덩이부터 허벅지까지 피부가 덜렁거리며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치료를 뼈부터 시작해야 할지 골반 근육, 피부, 혈관 어디부터 시작해 살려내야 할지 도저히 가늠이 안 됐다. 25톤 트럭에 깔린 그에게 골반과 허벅지가 몸통에 붙어 있는 자체가 기적이었다.

허겁지겁 달려온 가족, 남편은 환자 상태를 듣고 무작정 울기만 하였다. “꼭 살려주세요” 말하며 하염없는 눈물만 흘렸다. 나는 그를 보며 “25톤 트럭에 깔렸는데…”라며 말을 흐렸다.

오직 생존을 위해 치료를 하나하나 시작했다. 피부와 근육 일부 봉합, 골반뼈 임시 고정, 인공항문수술을 했다. 수술하는 동안 그녀는 잘 버텨주었다. 하지만 나는 입, 코, 목에 관이 주렁주렁 달린 그를 보고 매일 눈물만 쏟아내는 그녀 남편에게 무슨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남편은 어제도 오늘도 같은 말만 한다. 고개를 푹 숙이고 뚝뚝 떨어지는 눈물을 훔치며 말한다. “꼭 살려주세요. 꼭 살려주세요.”

“살아있다는 게 기적입니다. 최선을 다해 치료하겠습니다.” 나 또한 매일 같은 말만 반복했다.

새로운 문제들이 생겨났다. 살아있다는 자체가 기적인 그녀에게 피부, 근육, 뼛속으로 파고드는 감염은 도저히 막을 수 없었다. 썩어가는 근육과 피부를 수차례 도려내는 중에 의식이 없어지고 동공 반응이 사라졌다. 처음 다칠 때 허리뼈 안 척추신경을 싸고 있는 막이 손상되었다. 썩어가는 엉덩이 근육이 가까스로 버티던 그 막까지 쳐들어가 뇌척수액이 쏟아져 나왔다. 뇌를 보호하는 뇌척수액이 빠져 뇌가 부어버리고 의식은 없어졌다. 설상가상보다 더하게 생명 끝자락 낭떠러지로 떨어지고 있는 그녀다. 엉덩이, 허벅지가 썩고 뇌가 부어가면서 의식 없는 그녀는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내 눈앞에서 그녀 몸이 썩어가며 저 깊은 뇌 속까지 생명의 추를 갉아먹고 있다.

나도 모르게 마음속으로 그녀 사망진단서를 적고 있었다. 피부이식 전문 의료진과 시설이 부족한 이곳에서 계속 치료하게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여 썩어가는 피부와 근육이라도 살리기 위한 마지막 희망으로 화상 전문병원으로 전원가기로 결정했다.

나와 매일 울음으로 함께 치료하던 남편은 전원 직전 마지막 남은 눈물을 울컥 쏟으며 꾸벅 인사했다.

“나중에 와서 꼭 인사드리겠습니다.”

눈물과 함께 마지막 인사를 남기고 떠나버린 남편과 그녀가 나도 모르게 쓴 사망진단서와 함께 내 머릿속 어딘가로 사라졌다.

"안녕하세요."

그녀가 환하게 웃으며 말한다. 내가 사망진단서 썼던 그녀가 내 앞에 있다.

외래환자 명단 화면에 그녀 이름이 있다. 지난 가을 기억에서 지우고 싶은 이름이다. 울부짖는 목소리와 비참하고 잔인하게 으스러진 골반과 허벅지가 아직도 생생하다. 중증외상환자가 해가 지나 외래진료 예약하는 경우는 대부분 미처 받아 가지 못한 서류나 보험회사 직원이 대신 진료 기록을 받으러 올 때다.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은 처참했던 그날을 생각하며 나는 혼자 괴로워하고 있었다. 나는 환생을 믿지 않는다. 믿는 종교도 없고 권역외상센터에서 중증외상환자들의 수많은 죽음과 내가 쓴 사망진단서 날짜가 결코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문이 열리고 휠체어를 타고 방긋 웃으며 남편과 들어오는 그녀가 보인다. 나는 지난가을 사고 직후 잠들기 직전 마지막 그녀 모습을 기억하기에 단번에 알아봤다. 이 병원을 떠나기 전 여러 관들을 꽂고 퉁퉁 부은 얼굴과는 달리 너무나도 건강한 모습이다.

내 머릿속 구석에 들어있는 사망진단서를 얼른 찢어 버렸다.

3.

그래서 우리는 삶의 마지막 한 장 서류에 관해 생각해야 한다. 인생은 손을 움켜쥐고 태어나서 펼치며 마감한다. 동시에 출생증명서와 사망진단서에 의사 서명으로 하나의 삶이 시작과 마감한다. 그 서류 한 장을 어느 누구는 빨리 받아 처리해버리고자 하며, 다른 누군가는 어떻게든 받지 않고 생명 끈을 더 이어가려 한다. 한편에서 그 서류를 쓰는 사람은 어떤 내용을 쓸까 고민하기도 하며, 미리 머릿속에 쓰기도 한다. 누군가는 매일 반복해서 쓰지만 받아들이는 가족은 절대로 받고 싶지 않은 한 장의 종이다.

우리 삶을 서류 한 장으로 마무리할 수 없다. 그리고 어느 누구도 그 서류를 강요할 수 없다. 삶에 대한 의지, 생명에 대한 목적은 누구에게나 평등하다. 비록 골반 아래가 으스러지고 부서진다 하더라도 가슴 안에 심장은 누구보다 뜨겁게 뛰고 있다. 서류를 재촉하고 빨리 사건을 마무리하고 싶은 그 이기적인 회사 관계자들에게 보란 듯이 청년 심장이 뛰고 있고, 두 눈 속에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아직 남아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사망진단서에 ‘직접사인-다발성 장기부전, 원인-대량출혈, 개방성 골반골절, 작업 도중 깔림’이라는 글자 밖에 적어내지 못하였. 적을 빈칸이 더 있다면 ‘육신은 사망하였지만 청년 영혼은 아직 살아있어 고향 네팔로 떠났습니다’라고 적어내고 싶다.

청년이 떠난 후 수없이 많은 사망진단서에 내 서명과 면허번호가 찍혀 나갔다. 청년이 떠났던 가을이 다시 온 어느 날, 나도 모르게 심장이 뜨겁게 뛰는 그녀 직접사인을 무엇이라 적을지 고민하는 나를 발견하고 스스로 반성했다. 사망진단서에 적어내는 직접사인과 그에 따른 원인이 한 삶을 마감하는 마지막 서류이며, 거꾸로 그 환자 문제를 한 줄로 적어내는 것이다. 내 면허는 사망진단서를 쓰기 위한 것이 아니라 환자를 어떻게 하면 살려 가족 품으로 행복을 위해 가는 역할을 하기 위해 필요하다.

우리 자신은 삶의 마지막을 아무도 알지 못한다. 마지막이 자신에게 다가올 때까지도. 생명의 끝맺음, 사망진단서 서명을 잠시 멈추고 다시 환자를 생각하며 의사와 환자를 연결한 마지막 끈을 놓지 않는다면 환자는 살 수 있다. 낭떠러지 끝에 환자와 가족이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주치의가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면 반드시 살아 돌아온다.

‘사망진단서 서명을 멈추겠습니다. 다시 환자 옆으로 가겠습니다.’

<수상소감-대전을지대병원 외과 문윤수 교수>

외과의사가 되어 메스를 잡고 환자들과 함께 한 지 이제 곧 강산이 두 번 변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의사는 환자에게 도움을 주고 베푸는 직업이라고 배웠으나, 환자들을 통해 오히려 의사인 내가 삶의 가치와 소중함도 배울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바쁜 와중에서도 글을 쓸 수 있게 배려해 주는 가족, 특히 아내에게 감사드립니다. 권역외상센터에서 일하는 외과의사 남편, 아빠를 이해해 주고 응원해 주는 가족에 감사드립니다. 잦은 당직 근무에 바쁜 남편을 대신해 남편 몫까지 집안일을 해주는 아내에 감사와 사랑의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의사만이 환자를 치료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환자 스스로 노력과 환자 가족 모두가 함께 노력해야지 환자는 쾌유한다고 생각합니다. 첫 만남은 너무나 암담하였지만 환자 자신, 가족, 그리고 의료진 모두의 노력으로 살아난 환자에 감사드립니다. 제가 일하고 느낀 것을 글로 쓰고 이런 수상까지 하게 되어 저와 함께 하였던 모든 환자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글 제목 '사망진단서'처럼 사망진단서를 작성하고 마지막 클릭, 전자서명을 한 날에는 무거운 마음이 가득합니다. 무거운 마음 한편에는 대신 더 많은 환자들을 위하고 살리려 노력해야 한다는 채찍으로 알고 있습니다. 글에 나온 마음속에 사망진단서를 작성하였지만 살아난 환자는 지금도 건강히 잘 회복하여 건강하게 살고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환자에게 감사드립니다.

언제나 힘이 되어주시고 사랑과 격려해 주시는 부모님과 장인, 장모님께 감사 말씀을 드립니다. 항상 병원과 환자에게 아빠, 남편을 빼앗겨 기다리느라 고생하는 중에도 틈틈이 남편 글을 읽어주고 남편이 자주 틀리는 맞춤법을 슬그머니 고쳐주는 아내, 아빠가 글을 써서 상을 탔다고 가장 기뻐해 주었던 상후, 리후에게 마음 깊은 사랑을 전하고 싶습니다.

부족한 글을 읽어주시고 수상작으로 뽑아주신 심사위원을 비롯하여 청년의사 관계지분들 모두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졸작을 수상작으로 뽑아둔 것은 더욱 환자를 열심히 진료, 치료하라는 격려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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