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탄연세소아청소년과 우샛별

퇴근 후, 너른 백화점 안에서 여러 번 길을 헤매다 결국 안내도를 보고서야 유아동 코너를 찾을 수 있었다. 보기만 해도 분유 냄새가 나는 것 같은 나풀대는 작은 옷들이 주변에 수없이 널려 있었다. 잠시 머뭇대다 가장 가까이 있는 매장으로 들어갔다. 웃는 낯의 직원이 재빨리 따라붙었다. 선물, 이라고 입을 떼자마자 질문이 이어졌다.

“지금 애기가 몇 개월이죠?”

“36주 4일이요.”

“아, 애가 아직 태어나지 않은 건가요?”

“아뇨, 애기가 미숙아예요.”

“어머, 그러시구나. 애기 엄마가 걱정이 많으시겠네요.”

호들갑을 떠는 중년의 직원에게 대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이주연 아기는 미숙아이다. 32주 5일로 태어난, 상태가 그리 나쁘지 않아 한동안 신생아 중환자실의 중간 구역에 있다가 지금은 정상아실로 자리를 옮긴. 한 손바닥에 다 들어오는 동글동글한 머리통과 조그마한 얼굴이 귀엽기 그지없고 얇게 진 쌍꺼풀과 오뚝한 코가 조화로운. 나는 수수한 배냇저고리를 권하는 직원에게 고개를 저었다.

“저기에 있는 핑크색 양 그려진 걸로 하고 싶은데요.”

“저건 유기농이라 다른 것보다 가격이 좀 나가는데. 선물용으로야 뭐 너무 좋죠.”

나는 유기농 면 배냇저고리와 그 위에 입힐 우주복, 아이를 감쌀 외출용 이불에 모자, 양발, 신발까지 모조리 다 보여 달라고 했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가장 비싸고 좋은 것들로 계산했다. 양손 가득 쇼핑백을 들고 백화점을 나섰다. 택시 기사에게 병원의 주소를 말하고 나서 좌석의 시트에 깊게 몸을 묻었다. 곱게 포장되어진 아기 옷들을 보자 마음이 기쁘기보단 착잡했다.

신생아실에 도착한 나를 보자 당직 간호사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선생님 퇴근한 거 아니었어요? 뭐 잊고 가셨나요?”

“아뇨, 저기… 이거.”

나는 잠시 주춤대다가 양손에 든 쇼핑백을 간호사에게 내밀었다. 쇼핑백의 내용물을 확인한 간호사가 한층 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애기 옷이네요? 이거 선생님이 사셨어요? 왜요?”

“그게, 내일….”

“네?”

“이주연 아기 가는 날이 내일이잖아요. 옷이라도 새 거 입혀 보내는 게 모양이 좋을 것 같아서, 그래서 백화점 간 김에 그냥….”

주절주절 변명하듯 말을 잇는 내 손을 어느덧 가까이 다가온 간호사가 가만히 모아 잡았다. 전해져오는 체온이 따뜻했다. 그녀는 다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주연 아기, 선생님이 많이 예뻐하셨죠. 무슨 마음인지 알겠어요. 아기들 퇴원할 때 다들 새 옷 입고 가는 거 보고 사 오신 거죠?”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입을 열었다가는 목 멘 소리가 나올 것 같았다. 그 옷의 주인, 이주연 아기는 내가 지난 한 달 동안 참 예뻐했던 아기였다. 나는 전공의 이년 차였고 전체 신생아실 주치의를 맡은 지 두 달이 조금 넘은 상태였다. 신생아 중환자실의 일은 언제나 벅찰 만큼 많았지만 나는 매번 시간이 날 때마다 이주연 아기에게 손수 분유를 먹였다. 당직날 밤이면 품에 오래오래 안아 토닥이며 잠을 재웠다. 내가 잠 잘 시간도 부족했는데 평온하게 눈감은 모습이 너무 예뻐 품에서 내려놓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예쁘고 고운 아기인데 그동안 아무도 면회 오는 사람이 없었다. 아기의 엄마와 아빠는 모두 고등학생이었다. 결혼한 상태도 아니었고, 의도치 않은 임신이었기에 누구도 아기를 키울 수 없다고 했다. 결국 아기는 아무도 찾지 않는 신생아실에서 한 달을 보낸 후 다음날이면 아동 복지회로 떠나게 되어 있었다. 그 동안 그런 아기들을 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이상하게 유독 이주연 아기에게는 마음이 갔다. 마치 누구도 자신을 원하지 않은 것을 알기라도 하는 양 잘 울지도 않고, 울어도 금방 멈추던 아기. 조심스레 안아주면 얼굴을 내 품 쪽으로 돌리고 새근새근 금방 잠에 빠져들던 아기. 분유를 먹인 후 가만히 세워 안고 있을 때면 풍겨오던 그 달달한 아기 냄새가 얼마나 사랑스러웠던가. 그런 착하고 예쁜 아기가 그저 아무 무늬 없는 뻣뻣한 흰 옷을 입고 병원을 떠나는 것이 나는 못내 마음 쓰였다. 그러니까 내가 산 아기 옷은 이주연 아기를 위한 처음이자 마지막 선물이었다. 떠날 때만이라도 누구에게 못지않은 좋고 예쁜 옷을 입고 가라고, 그러고 싶어서.

“선생님, 어쩜 이렇게 잘 어울리는 걸 골라 오셨나 몰라. 너무 예쁘네요.”

간호사들의 호들갑에 나는 슬쩍 새 옷을 입은 아기를 돌아보았다. 조금은 큰 듯한, 하지만 색과 무늬가 들어간 새 옷을 입은 아기는 정말 귀엽고 예뻤다. 아무 것도 모른 채 천진한 표정으로 옷소매 부분을 빨고 있는 아기를 잠시 쳐다보다가, 얼른 핑계를 대고 신생아실을 빠져나왔다. 새 옷을 입은 것을 보면 마음이 괜찮을 줄 알았는데 어쩐지 더 서글퍼졌다. 저렇게 귀여운데, 저렇게 사랑스러운데…. 심란함에 나는 그날 밤 맥주 두어 캔을 앞에 두고 오래도록 잠들지 못했다. 고작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이라곤 옷 한 벌 사주는 것밖에 없구나, 하는 생각이 자꾸만 맴돌아서.

다음 날은 내내 일에 집중이 되지 않았다. 이주연 아기가 떠나기로 한 시각은 오후 한 시경이었다. 나는 서둘러 신생아실 보호자들과의 오전 면회를 마쳤다. 점심을 먹으러 가자는 동기들에게 핑계를 대고 신생아실에 남았다.

“선생님, 마지막으로 한 번 안아주세요.” 복지사가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와중, 간호사가 주변에서 서성대는 내게로 이주연 아기를 내밀었다. 일부러 아침부터 아기 쪽으로 눈을 돌리고 있지 않던 차였다. 보면 마음만 더 아플 것 같았다.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저기 복지사님도 기다리고 계시는데 얼른 가야죠.”

“그러니까 어서요, 선생님. 아기도 선생님 마지막으로 보고 싶어 할 거예요.”

나는 머뭇대다 아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내가 전날 사온 옷을 입고 조그만 양말에 모자까지 쓴 아기는 평소보다 몇 배는 더 귀해보였다. 그 모습을 보자 차마 더는 외면할 수 없었다. 나는 아기를 받아들어 품에 꼭 끌어안았다.

“어머나, 아기가 웃네요. 얘 웃는 거 처음 보네.”

나는 가만히 아기를 쳐다보았다. 처음보다 살이 붙은 아기의 얼굴에 미소와 함께 조그만 볼우물이 패여 있었다. 어쩐지 눈이 마주친 것 같아, 하고 생각한 순간 아기가 까르르, 하며 소리 내어 웃음을 터뜨렸다. 정말 간호사들의 말대로 처음 보여주는 웃음이었다. 이곳이 천국이라면 이 아기는 천사겠구나, 싶을 정도로 아주 맑고 천진한 웃음. 나는 아기를 마주보고 같이 웃어주었다. 그 동안 나와 신생아실 식구들이 살뜰히 보살핀 이 아기가 새로운 삶을 향해 떠나는 길이 슬프지 않도록. 언제든, 어디에서든 행복하기를 바라며.

*환자의 이름은 가명을 사용하였습니다

<수상소감 - 동탄연세소아청소년과 우샛별>

적지 않은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 어렴풋이 기억이 납니다. 신생아실에 있던 시절 조심스레 안고 있던 그 아기의 따뜻한 체온이.

그 체온이 오랫동안 따뜻하게 제 마음을 데웠던 것도. 제가 사온 새 옷을 입고 떠나는 아기를 보며 기도했습니다.

아기가 입은 첫 옷이, 제가 정성을 담아 고른 저 옷이 부디 아기를 좋은 곳으로 인도하기를. 그리하여 앞으로 펼쳐질 아기의 삶에 행복한 일만 가득하기를. 언제든, 어디에서든. 이것은 아주 짧게 만났다 헤어졌지만 여전히 그 아기를 기억하는 한 의사의 소박한 소망입니다.

속으로만 품고 있던 그 마음을 조금이나마 밖으로 표현할 수 있게 기회를 주시고 과분한 상까지 주신 한미약품과 청년의사에게 깊은 감사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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