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아산병원 ‘ESG위원회’ 구성으로 수면 위로 떠오른 의료기관+ESG
친환경‧사회책임 경영‧투명준법경영 등 핵심…의료기관 규모 확대 등 숙제

ESG란 ‘Environment’, ‘Social’, ‘Governance’의 머리글자로, 기업활동에 친환경, 사회적 책임 경영, 지배구조 개선 등 투명 경영을 고려해야 지속 가능한 발전을 할 수 있다는 뜻을 담고 있다.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기업과 투자자의 사회적 책임이 점차 중요해지면서 세계적으로 많은 금융기관이 ESG 평가 정보를 활용하고 있으며, 2000년 영국을 시작으로 스웨덴, 독일, 캐나다, 벨기에, 프랑스 등 여러 나라에서 연기금을 중심으로 ESG 정보 공시의무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우리나라 금융위원회는 오는 2025년부터 자산총액 2조원 이상의 유가증권시장 상장사의 ESG 공시 의무화를 도입하기로 했으며, 2030년부터는 모든 코스피 상장사로 확대할 예정이다. 이미 수십년 된 이론인 ESG가 우리나라에도 큰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것이다.

더욱이 ESG 바람이 병원계에서도 불기 시작해 주목된다.

국내 최대 의료기관 중 하나인 서울아산병원은 최근 병원 내 ‘ESG위원회’ 설립을 공식화했다. 아직 위원회 구성 단계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할지에 대해서는 명확지 않지만 울산대 건설환경공학부 박흥석 교수, 한림대 사회복지학부 석재은 교수, 미아앤컨설팅 최명주 대표가 아산병원 ESG위원회에 참여하는 등 병원계에 새바람을 몰고올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목이 집중된다.

간호계 ‘태움문화’ 근절도 ESG 경영 될 수 있어

전문가들이 말하는 ESG와 의료기관의 결합은 특별한 것보다는 해야할 일을 제대로 하는 것이다.

의료기관이 ‘의료기관으로서’ 사회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일을 찾고 그 일을 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 나가며, 그 과정에서 주변 환경을 고려하고 의사결정에 투명성을 더하는 것이 ESG의 시작이라는 뜻이다.

한림대 사회복지학부 석재은 교수는 ‘사람을 중시하고 사회적 상생을 도모하는 사회적 책임경영’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석 교수는 “‘태움’ 등 비인간적인 나쁜 근무문화를 근절하고 병원 내부에서부터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사람을 성장시키는 조직으로 변모해야 한다”며 “또한 밖으로는 의료기관과 밀접히 연결된 의료 관련 업체와 상생을 모색하는 것은 물론이고 어떤 이유에서든 적절한 의료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의료서비스에 소외된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고 의료서비스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사회적 책무를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

석 교수는 “아픈 사람에 대한 의료서비스의 질을 높이는 동시에 선제적으로 예방에 힘 쓰는 것도 중요하다”며 “낮은 자세로 아픈 사람들의 목소리에 더 많이 귀기울이는 방식으로 의료서비스 문화를 바꿔나가야 한다”고 했다.

석 교수는 “아픈 사람들의 작은 목소리 하나 하나로부터 의료기관이 해야 할 일이 더욱 명확해지고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한 성장의 싹이 커나갈 수 있다”며 “또한 투명한 소통과 원칙적 경영은 신뢰를 통해 지속가능한 의료기관의 성장의 기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아앤컨설팅 최명주 대표는 “의료 자체가 ESG 중 ‘S’인 Social과 관련이 깊다. 개인적으로 S를 본업으로 삼고 있는 의료기관도 (ESG) 도입을 통해 좀 더 S일 필요가 있다는 것”이라며 “사회에서 더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 대표는 “예를 들면 아산병원의 경우 많은 투자로 의료정보시스템을 구축했는데, 이를 각 지역 1~2차 의료기관들에 저렴하게 제공해 (국내 의료기관 간) 의료정보체계 호환성 확보와 체계화에 기여할 수 있다”고 밝혔다.

최 대표는 또한 거버넌스 전문가로서 ESG 도입에 대해 “지금도 우리나라 의료기관들 경영 투명하게 하고 있지만 결국 투명성이라는 것은 효율적 목표 달성으로 이어져야 한다”며 “이런 관점에서 (의료기관의 각종 목표 설정과 달성 시)가성비를 높일 수 있는 방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 대표는 “개선에는 끝이 없다. 현재 전세계적으로 ESG와 관련한 지표들이 600개 정도 되며 이중에서 의료기관에 적용할 수 있는 지표들도 많다”면서 “현재 아산병원과 함께 수많은 지표 중 의료기관에 적용 가능한 지표를 골라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특히 최 대표는 “ESG위원회를 공식화한 아산병원 외 우리가 이름을 들어본 종합병원들은 다 ESG에 관심이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며 “ESG라는 것 자체가 모든 기업이나 기관들이 일상적으로 체화해 실행해야할 과제들”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최 대표는 “앞으로 ESG 지표가 여러 분야에서 (제대로 된 경영의) 잣대가 될텐데 ESG를 등안시 했을 때 향후 신뢰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수술, 진료 등은 다 잘하는데 왜 ESG 점수가 낮지라는 평가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새 것 아닌, 잘하는 것 찾아 사회에 영향 줘야

의료기관은 이미 ESG의 핵심 중 하나인 사회활동을 활발히 펴고 있으니 새로운 것을 찾으려 하지 말고 잘하는 것을 찾아 사회에 좋은 영향을 줘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울산대 건설환경공학부 박흥석 교수는 “지금 우리나라를 보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전부 사회봉사 정도로 생각한다. 제철소에서도 사회적 책임으로 가난한 사람을 도와준다”며 “이런 생각은 완전히 잘못된 생각이다. 각 기업이 잘할 수 있는 방법으로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의료기관도 의료기관 본연의 역할을 기본으로 사회적 책임을 어떻게 할 것이냐는 고민을 해야 한다”며 “자꾸 다른 영역에서 사회적 책임을 생각해서는 안된다. 다만 우리나라의 경우 (아산병원이) 이제 시작인데 어떤 방법을 찾을 것인지 고민을 많이 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박 교수는 보건의료와 관련해 수많은 갈등구조가 존재하는 우리나라에서 아산병원 등 의료기관이 기관 내 서비스를 바탕으로 사회활동을 활발하게 하는 것 자체가 지역 내 의료기관들의 반감을 살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박 교수는 “이런 점들을 잘 고려해서 지역 의료기관과 협력해 자신들이 가진 의료기술을 전파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며 “이런 움직임이 지역 중소병원을 고사시키는 것이 아닌 상생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외 박 교수는 환경전문가로서 ESG 중 ‘E’에 해당하는 환경에 대해 ‘의료기관이 환경문제를 해결하는 첫번째는 의료폐기물 관리’라는 피상적인 접근만 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환경이라는 개념을 폐기물 정도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환경은 비단 폐기물 문제 뿐만 아니라 의료기관을 감싸고 있는 모든 것을 환경이라고 생각해야 한다”며 “(넓은 시각으로) 환경을 생각해 지속가능한 기관이 되는 길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석재은 교수는 “ESG에서 강조하는 원칙과 항목들은 어떤 면에서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동안에도 해왔던 것들이다. 다만 좀 더 조직적으로 의식적으로 관리하자는 것”이라며 “의료기관은 그동안에도 사회적 기여활동을 많이 해왔다”고 말했다.

석 교수는 “ESG 도입을 통한 가장 큰 차이점은 하나의 커다란 연결된 생태계 속에서 의료기관과 관계 맺고 있는 것들에 대해 접근하는 관점”이라며 “의료기관의 독립적 생존과 발전을 도모하기보다는 상생과 시너지를 모색하는 접근을 하게 된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석 교수는 “환자의 마음과 고통에 깊이 공감하며 접근한다면 더욱 큰 장기적 성장 기반을 만나게 될 것”이라며 “이는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한 선순환 생태계를 만들어 줄 것이다. 예컨대 당장 경제적 가치가 없는 희귀질환에 대한 관심과 사회적 책무를 다하는 것이 더 큰 경제적 가치로 오는 선순환을 충분히 기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의료기관 ESG 도입, 규모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의료기관의 ESG 도입과 관련해 지금까지 보건의료계에 금기시 되는 ‘의료영리화’를 수면 위로 올려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의료기관이 ESG로 사회에 영향을 주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보건의료산업 규모가 더 커져야 한다는 것이다.

아산병원이 ESG위원회를 발족하는 자리에서 ‘의료기관과 ESG’를 주제로 발제한 서울대 법학대학원 김화진 교수는 우리나라 의료기관이 ESG를 도입하기 위해 전제돼야 할 조건으로 의료산업화를 꼽았다.

김 교수는 “(미국의) 메이오클리닉은 1년 매출이 약 8조원으로 삼성물산의 절반쯤된다. 그런 규모에서 나오는 사회기여 역량은 우리가 꿈꾸기 힘들다”며 “병원이 ESG를 제대로 구현하려면 더 대형화돼야 하고 결국 결론은 병원의 영리사업 확대”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기금이나 기부금은 한계가 있고 파급효과도 적다. 한국의료는 세계 최고의 인재들이 쌓아올린 것이기 때문에 엄청난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데 ‘의료는 공공재’라는 이상한 생각에 막혀서 산업화 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국가적으로도 매우 안타깝다. 병원 재정 확충이 ESG에 기여할 수 있다. 기업도 같다. 사업이 잘되는 넉넉한 회사가 세금도 많이내고 직원들과 협력업체 대우도 잘해 줄 여력이 생기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흥석 교수 역시 “지금까지 한국 발전사를 보면 정부에서 (성장 가능성이 큰 분야에) 선택과 집중을 해 지원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게 1980년대 전자, 2000년대 IT 산업 등”이라며 “이런 분야들은 처음에 다 다른 나라를 따라했는데 지금은 다 우리나라른 전세계가 벤치마킹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의료분야도 한국전쟁 후 우리나라 의사들이 미국 가서 의술 배워오던 것이 이제는 세계 최고 수준이 됐다”며 “그런데 자꾸 의료는 영리화되면 안된다는 생각이 커져서 도와주진 못하고 오히려 잘 나가는 분야를 자르고 있다”고 밝혔다.

박 교수는 “이제 우리나라도 (의료기관 ESG 도입 등을 시작으로) 의료를 통해 전세계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지 찾아야 한다”며 “결국 우리만 가지고 있는것, 우리가 잘 하는 것을 찾아 발전시켜야 한다. ESG 도입이 통과점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우리나라 의료기관의 ESG 도입, 늦었을까

마지막으로 전문가들이 의료기관의 ESG 도입에 대해 해외사례를 벤치마킹할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의료기관이 선구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우리나라에서는 뭔가 새로운 것을 하려고 하면 항상 ‘해외사례는 어떤가’, ‘벤치마킹할 대상이 있는가’ 등을 먼저 찾는데 이제는 좀 바뀌어야 한다”며 “해외사례를 보고 우리 것을 바꾸는 시대는 이제 지나갔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의료기관 ESG 도입과 관련해서는 우리가 표준을 만들 수 있다”며 “이와 관련 울산이라는 도시는 현재 전세계적으로 산업단지를 생태산업단지로 탈바꿈시키는 좋은 예가 돼 해외 유명 학자들과 함께 국제표준화연구를 하고 있다. 이제는 우리가 국제표준이 돼야 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최 대표는 “지금 우리나라 의료기관과 의료기술은 세계 최고라고 봐도 된다. 이런 상황에서 지금 우리나라가 해외 의료기관 상황을 벤치마킹할 때가 아니다”라며 “세계적으로 봐도 우리나라의 ESG 도입 움직임은 꽤 빠른 시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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