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병리학회 이연수 이사장, “병리 진단에 대한 인식 부족 아쉬워”

최근 보건복지부는 한국인 3대 사망원인 질환에 특화된 ‘K-의료 빅데이터’를 구축해 전(全)주기 의료지원을 실현하겠다고 발표하고, 그 일환으로 전체 암 환자의 70%(300만명 규모)를 차지하는 한국인 주요 암 10종에 대해 ‘K-Cancer 통합 빅데이터’를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텍스트 기반의 데이터 수집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영상, 유전체 데이터까지 결합해 데이터 활용 가치 극대화를 꾀하겠다는 것. 하지만 이 ‘통합’ 빅데이터에 포함되지 않은 데이터가 있다. 바로 ‘디지털 병리(Digital Pathology)’ 데이터다.

병리 슬라이드는 암 확진에 필요한 조직·세포병리검사에 사용되는, 사실상 암 치료의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복지부가 지난 2월 공개한 K-Cancer 빅데이터 구축방안에는 CT, MRI 등의 데이터는 구체적으로 명시된 반면, 암 확진 검사에 대한 데이터는 병리 진단 결과만 포함되고 병리 영상은 제외됐다.

지난해 10월 ‘디지털 병리 가이드라인’을 발표한 대한병리학회를 필두로 병리학계에선 디지털 병리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인프라 확대를 위해 애를 쓰고 있는 상황이라는 점에서 정부의 이러한 행보는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한병리학회 이연수 이사장(서울성모병원 병리과)을 만나 디지털 병리의 필요성 등에 대해 들었다. 서울성모병원은 디지털 병리 시스템을 진료 현장에 도입해 1차 병리진단에 사용하고 있다.

대한병리학회 이연수 이사장(서울성모병원 병리과 교수).

- 임상에서 ‘디지털 병리’가 필요한 이유는.

디지털 병리는 말 그대로 병리 자료를 디지털화해 이미지로 저장한 후, 저장된 데이터를 통해 진단하는 것을 의미한다. 디지털 병리에는 두 가지 패턴이 있다. 첫 번째는 유리 슬라이드를 스캔해서 디지털 이미지를 만들고 이를 모니터로 확인하면서 1차적으로 진단을 내리는 것을 의미한다. 두 번째는 일단 유리 슬라이드로 진단한 후에 그 데이터를 백업용으로 스캔해서 저장해 두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디지털 병리는 1차 진단이 목적이다.

디지털 병리는 인적 요소에 의한 검체 바뀜, 오염 등을 예방할 수 있어 환자 안전성에 중요한 기능을 하며, 전문의 간 디지털 영상 자문을 더욱 쉽고 빠르게 할 수 있어 진단의 차이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과다 치료 및 치료 기회 상실 등의 문제를 상당 부분 감소시킬 수 있다.

병리 진단 시 진단명은 한 줄에 불과하지만, 그 진단명을 내리기 위해 병리 전문의의 머릿속에서는 수많은 알고리즘이 가동된다. 그 알고리즘 끝에 무슨 암인지 결론을 내리는 건데, 그 한마디가 환자의 최종 병리 의료 자료가 된다. 디지털 병리는 그 진단의 기본 자료인 병리 이미지를 마치 x-ray 영상 자료처럼 논의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이다.

- 영상 데이터와 달리 병리 데이터의 디지털화 속도가 늦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가장 큰 이유는 병리 진단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단적으로 K-Cancer 통합 빅데이터 사업에서 디지털 병리 슬라이드가 누락된 이유도 이해도 부족 때문이이라고 짐작된다. ‘선암종’ 한 마디면 되지, 여기에 무슨 이미지 자료가 더 필요하냐고 생각할 수 있다. 이러한 인식의 부족으로 인해 한국은 병리 진단에 대한 의사의 행위료 또한 굉장히 낮게 책정돼 있다.

이로 인해 병리 전공의에 대한 지원도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디지털 병리와 AI를 같은 개념으로 보고 AI가 병리 의사를 대체할 것이라는 잘못된 인식까지 더해져 병리 전공의 지원자가 점점 줄고 있다. 병리 전문의 수가 줄어들고 있으니 앞으로 인력은 더 부족할 것이다. 일본이 디지털화를 추진한 이유도 인구에 비해 병리 전문의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 AI의 활용이 병리 진단에도 도움을 줄 수 있지 않나.

물론 병리 전문의도 AI가 필요하다. 예컨대, 의사가 환자에 대해 진단하고 그 소견들을 다 기술해서 환자에게 그 정보를 돌려주는 시간이 1시간이라면, AI를 활용하면 45분 정도로 줄일 수 있다. 서울성모병원은 2019년부터 디지털 병리 솔루션을 도입해 1차 진단을 하고 있다. 이를 통해 업무 효율이 30% 정도 높아진 것 같다. AI는 병리 전문의가 환자 진단 시 난이도가 높은 부분들을 도와주고 이를 표준화한다는 개념이지, 병리 의사의 진단 업무를 대체하는 개념은 아니다. 만약 AI가 의사의 역할을 대체할 수 있다면 이미 기술이 완전히 개발된 영상 검사는 왜 AI로 대체되지 않았겠는가.

- 해외에서도 디지털 병리를 추진하고 있다고 들었다.
유럽은 올해 6억 9,600만 유로를, 영국은 5,000만 파운드를 디지털 병리에 투자한다고 하며, 일본은 국가 차원에서 전국적으로 스캐너를 보급했다고 한다. (이러한 지원이 중요한 이유는) 디지털 병리를 위한 기본 인프라 구축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다행히 서울성모병원은 디지털화에 적극적이고 지속적으로 지원을 하고 있지만, 병원을 운영하는 입장에서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이다. 스캐너 자체도 비싸지만, 진짜 문제는 서버다. 디지털 병리 이미지는 x-ray에 비해 용량이 굉장히 크다. 환자의 검체 크기에 따라 용량도 달라지는데, 수술 검체의 경우에는 크기가 커서 시간도 용량도 많이 든다. 일반적으로 400배 정도 확대해서 스캔하는데, 속도와 용량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스캐너의 퀄리티와 서버에 투자를 많이 해야 한다. 계속해서 서버를 구입해야 하기 때문에 부담이 크다.

- 임상 현장에서 체감한 디지털 병리의 장점은.

진료에 (병리 진단 자료가) 투입되는 시간이 30% 정도 빨라졌다. 처음에는 현미경으로 보는 것과 화면으로 보는 것이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실제로 해보니 그렇지 않았다. 업무의 효율성도 높아지고, 과거 진단과의 매칭도 쉬우며, 다른 병리 전문의와의 커뮤니케이션도 수월했다. 다학제진료 시에도 효율적이었다. 다른 병원으로 환자 정보를 공유할 수는 없지만, 원내에서는 연구실, 외래 진료실, 다른 병동에서도 환자 자료를 다 볼 수 있다. 아울러 임상의들이 환자들에게 디지털 병리 슬라이드를 보여주면서 설명해주기도 한다. 요즘은 환자들이 본인의 상태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의지가 높기 때문에, 설명할 때 디지털 병리 슬라이드를 활용하기도 한다.

- 올해 열린 병리학회 학술대회에서 디지털 병리 도입을 가속화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각 대학병원 병리과 과장들이 모여 논의하는 자리가 있었다고 들었다. 어떤 방안들이 논의됐나.

'디지털 병리 시스템으로의 전환은 불가피하다. 다만, 인프라 구축에 시간과 돈이 많이 들기 때문에, 전면적인 전환보다는 순차적으로 전환해서 적용하는 방식이 필요하다’는 것이 결론이었다. 우선은 디지털 병리를 백업(back-up) 시스템으로 활용하다가, 그 다음에 완전한 1차 진단으로 전환하자는 것이다. 서울성모병원에서도 작년에 병리조직진단에 해당하는 것만 약 5만 건이었는데 이 중 디지털화 한 건 절반 정도다. 모든 것을 다 디지털화하면 서버를 3~4개월만에 바꿔야 할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필수적인 병리 검체만 디지털화 하고 있다.

사실 필수적인 검체라는 기준도 모호하다. 환자 입장에서는 모든 검체가 필수적이고 중요하다. 혈액이나 소변 검사는 다시(repeat) 할 수 있지만, 병리 진단은 그렇지 않다. 다시 생검한다 해도, 그건 또 다른 검체가 발생하는 것이지 똑같은 검체는 아니다. 현재 서울성모병원은 전체의 50% 가량을 차지하는 내시경 검체는 제외하고 수술 검체를 우선적으로 하고 있다. 내시경 검체가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라, 너무 양이 많아서 우선 제외한 것이다. 어떤 기관은 수술 검체가 용량이 크기 때문에 내시경 검체를 먼저 디지털화 하기도 한다. 어디에 우선 순위를 두느냐에 따라 기관마다 다르다.

- 수가를 인정 받기 위해서 동일한 검체를 대상으로 디지털화하는 게 필요하진 않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어떤 검체이든, 디지털화 한 진단과 디지털화 하지 않은 진단은 동일하다. 수가 체계는 의사 업무량과 직접 비용, 위험도를 고려해 책정하는데, 디지털화는 직접 비용에 들어간다. 개인적으로 제안하는 방법은 직접 비용의 가산이다. 디지털화 한 검체는 직접 비용에 가산을 주고, 디지털 화하지 않은 경우는 가산을 주지 않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궁극적으로 모든 검체에 대해 디지털화를 진행하게 될 것이다. 디지털화를 하면 서버에 있는 데이터를 단순히 가져오는 것이므로, 오류를 최소화할 수 있다. 혹여라도 검체가 바뀌면 환자의 치료와 진단에 매우 치명적이다. 그 위험도를 (디지털 병리로) 낮출 수 있다.

- K-Cancer 통합 빅데이터 사업에서 디지털 병리 슬라이드가 누락됐다고 들었다.
(정부와 디지털 병리 데이터 관련해) 논의된 바가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암 치료에서 병리 진단이 맡은 역할이 굉장히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사업에서 디지털 병리 슬라이드가 누락된 것은 유감이다. 왜 포함되지 않았을지 생각해봤는데, 병리 진단에 대한 인식 부족이 가장 큰 이유인 것 같다. 병리 진단은 혈액 검사나 소변 검사 등의 전체 검사 중 5% 정도이고, 영상 검사와 비교하면 더 작다. (정부 등에선) 이렇듯 규모가 작은데 그렇게 큰 서버를 투자해야 하는지 의문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하지만 세포를 본다 하더라도 그것만으로 진단을 내릴 수는 없다. 여러 요인들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병리 의사들이 4년간 트레이닝을 받는 것이다.

- 국내에서 디지털 병리 인프라 구축을 위해 필요한 지원은.
재차 강조하지만, 가장 필요한 것은 가산 수가이다. 연간 디지털화가 필요한 병리 데이터가 1,500만 건 정도인데, 그 중 조직 검사 500만 건이라도 직접 비용의 30%만 가산을 해주길 바라고 있다. 그 다음으로는 의료 데이터의 공유가 가능해지길 바란다. 현재는 연구조차도 데이터 공유가 되지 않는다. 데이터 공유를 위해 환자의 정보를 익명화 하는 방안으로 진행해보려고 하는데, 개인정보 보호와 연구 윤리가 엄격해서 쉽지 않다.

- 마지막으로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병리 ‘검사’라는 표현 때문에 자동화(automation)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데, 병리는 ‘진단’이다. 병리 의사는 다양한 트레이닝과 수많은 알고리즘을 거쳐 하나의 진단을 내린다. 100명의 선암종 환자가 있다면, 100명이 모두 다른 양상을 보인다. 이를 병리 전문의가 그룹화해서 선암종으로 진단 내리는 것이다. 이 개념 자체도 익숙하지 않고, 주치의들도 환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조직검사’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하지만, 병리는 ‘진단’이다. 디지털 병리 인프라를 구축하고 병리 전문의가 위축되는 걸 개선해야 궁극적으로 환자의 진단의 질을 유지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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