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돌아오면 끝?…“60시간에도 수련 질 유지할 방법 찾자”
[내외산소, 수련을 말하다③] 수련교육 질 관리 체계 교육하는 지도전문의 양성…정부 지원 연속성 강조 의학회 ‘수련교육원’ 추진에 “컨트롤 타워 필요” 공감
전공의 집단 사직으로 수련이 멈춘 지 1년 4개월. 전문의 배출 공백과 수련 체계 붕괴 우려는 여전하다. 새 정부가 의정 갈등을 풀어도, 수련 현장은 이미 달라졌다. 전공의 자리는 PA가 메웠고, 근무시간 단축도 추진 중이다. 전공의가 돌아와도 예전으로 돌아가긴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청년의사는 필수과 4개 학회 수련교육이사들과 수련 정상화 방안을 모색했다. ‘내외산소’ 수련이사들이 말하는 수련 현장의 변화와 과제를 3회에 걸쳐 전한다.
① 전공의 사라진 수련병원 ② PA 제도화와 수련교육 ③ 수련교육 질 관리 체계
사회: 청년의사 박재영 편집주간 토론: 대한내과학회 김대중 수련이사, 대한외과학회 최동호 수련교육이사, 대한산부인과학회 수련제도발전TFT 홍순철 위원장,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 윤신원 수련교육이사
전공의들이 수련병원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끊겼던 의정 대화가 다시 시작되면서 ‘9월 복귀’ 가능성도 커졌다. 이대로 전공의들만 돌아오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까. 현장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진료지원인력(PA)은 제도권에 진입했고 전공의가 맡았던 업무는 분산됐다. 1년 넘게 이어진 의정 갈등으로 수련 현장은 예전과 달라졌고, 이들을 어떻게 교육할 것인지가 더 큰 과제로 떠올랐다.
대한내과학회, 대한외과학회, 대한산부인과학회,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 수련교육이사들은 청년의사 창간 33주년 특집 좌담회에서 전공의들을 교육하는 교수들이 더 주도적이고 진취적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발상을 전환”하지 않으면 필수과인 내·외·산·소는 살아남기 어렵다고 했다. 수련병원 진료 체계를 ‘진료중심트랙’과 ‘교육중심트랙’으로 나누고 주 80시간이 아닌 60시간에 맞춰 수련교육체계를 개편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김대중 “그동안 수련교육 프로그램은 병원 운영에 필요한 인력을 기준으로 설계해왔다. 전공의를 어디에 배치할지만 고민했고, 교육 목적은 뒤로 밀렸다. 앞으로는 어떤 역량을 갖춘 전문의를 길러야 하는지를 먼저 정의하고, 전공의가 어떤 환자와 술기를 경험해야 하는지를 중심으로 프로그램을 다시 짜야 한다. 근무 시간이 줄어드는 상황에서도 필요한 역량을 제대로 달성했는지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 그래야 수련이 부족하니 더 해야 한다고 얘기할 수 있다.”
홍순철 “옛날 시스템으로 돌아간다고 해서 전공의들이 만족하고 또다시 참고 견딜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제 그런 시대는 끝났다. 그런 방식으로 가면 필수 진료과는 결국 무너질 것이다. 살아남으려면 전공의 삶의 질이 어느 정도 보장되는 교육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이번 기회에 그런 시스템을 제도화하면 수련교육을 바꿀 중요한 전환점이 될 수 있다.”
누가,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수련교육이 바뀌려면 전공의를 가르치는 지도전문의의 역할이 중요하다. 지금도 지도전문의는 있지만 진료보다 교육을 우선순위에 두기 어려운 환경이다. 대학병원 진료체계를 ‘투 트랙’으로 나누자는 제안도 이 때문이다. “수련교육에 관심이 많은 교수”를 선발해서 진료보다는 교육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자는 것이다.
지도전문의의 중요성은 정부도 알고 있다. 수련환경 혁신 지원 사업을 추진하면서 지도전문의 지원을 핵심으로 꼽았다. 책임지도전문의는 1인당 연간 8,000만원, 교육전담지도전문의는 4,800만원, 수련지도전문의는 2,400만원을 국고에서 지원한다는 내용이다. 보건복지부는 2025년도 예산안을 편성하면서 지도전문의 수당으로 총 2,530억8,800만원을 배정했다. 그러나 국회 예산 심의 과정에서 일부 삭감됐다.
2025년도 제2회 추가경정예산안 편성·심의 과정에서도 비슷한 일이 반복됐다. 이번에는 정부가 추경을 편성하면서 수련환경 혁신 지원 사업 예산을 2,991억3,000만원에서 1,755억6,900만원으로 1,235억6,100만원(41.3%) 삭감했다. 전공의들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국회가 예산 심의 과정에서 “사직 전공의 하반기 복귀 가능성을 고려”해 일부 복원(180억8,000만원 증액)했다. 하지만 사업 연속성에 대한 불안감은 오히려 더 커졌다.
지원 대상이 ‘필수의료 분야 지도전문의’로 8개 전문과로 제한한 부분도 문제로 지적한다.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응급의학과, 심장혈관흉부외과, 신경과, 신경외과만 지원 대상이다.
최동호 “진료체계를 투 트랙으로 나누고 수련교육을 제대로 하려면 지금보다 교수가 많아야 한다. 여기에 필요한 비용을 누가 지불할 것인지가 문제다. 대한의학회 차원에서 대략적으로 추계했을 때 2조원 정도가 필요하다고 한다. 그런데 정부가 수련교육에 지원하겠다는 예산은 3,000억원도 안된다. 괴리가 너무 크다. 이마저도 깎였다. 지금은 수련환경 혁신 지원 사업 자체가 유지될지 의문이다. 전공의들이 돌아오면 달라지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홍순철 “수련교육을 체계적으로 바꾸려면 정부 지원이 필수다. 주 60시간 수련체계를 제대로 운영하려면 관련 비용의 절반 이상은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 그래야 바뀐다. 현재 정부가 하는 사업은 미국처럼 교수들이 일정 시간을 교육에 전념할 수 있도록 일부 비용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미국식 모델에 비하면 지원 규모가 제한적이다. 이 정도로는 교수가 진료 시간을 줄이고 교육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어렵다.”
윤신원 “정부의 수련환경 혁신 지원 사업이 지속된다면 전공의 교육을 전담하겠다는 교수는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 비용을 정부가 꾸준히 지원할지는 의문이다. 필수의료 분야라고 해서 8개 과만 지원 대상인 부분도 문제다. 다른 과들의 반발도 크다. 8개 과만 지원해서는 수련환경이 바뀌지 않는다.”
정부가 수련체계 혁신 방안으로 제시한 ‘네트워크 수련체계(다기관 협력 수련)’도 지도전문의 역할 정립이 우선돼야 실현 가능한 시스템이라고 지적했다. 지도전문의 자격과 역할, 책임, 교육 역량에 대한 기준과 체계를 먼저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외과학회 최동호 수련교육이사는 “대학병원이 대부분 암과 중증질환 위주로 운영되기 때문에 전공의들이 의원이나 중소병원에서 배워야 할 부분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전공의들이 협력을 맺은 병·의원에서 제대로 교육을 받는지 확인할 방법도, 프로그램도 마련돼 있지 않으며 교육비용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최 이사는 “취지는 좋지만 개원한 외과 전문의의 70% 이상은 다른 분야를 진료한다. 이런 상황에서 보내기만 한다고 교육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했다. 소아청소년과학회 윤신원 수련교육이사는 “전공의를 파견 보내는 병·의원에도 교육에 관심 있는 지도전문의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수련 질 관리
교육의 주체인 지도전문의는 역할이 모호하고, 수련 프로그램을 총괄할 중앙 체계도 부재하다. 내·외·산·소 수련이사들은 대한의학회가 추진하는 (가칭)‘전공의 수련교육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수련교육원은 교육과정 개발부터 평가·연수·인증까지 총괄한다. 의학회는 수련교육원이 실시하는 평가를 통과하지 못한 수련병원에는 전공의를 배정하지 않는 방안을 추진한다. 정부도 미국 ACGME(Accreditation Council for Graduate Medical Education) 모델을 참고해 한국형 수련관리기구인 ‘K-ACGME’를 설립하는 방안을 의료개혁특별위원회에서 논의한 바 있다.
최동호 “한국에는 미국 ACGME처럼 수련교육을 총괄하는 컨트롤타워가 없다. 수련환경평가위원회가 존재하지만, 수련 프로그램을 평가·인증하거나 지도전문의를 교육할 수 있는 조직이 아니다. 지금까지는 각 전문과목 학회가 지도전문의를 교육하고 수련 프로그램을 개발해 왔다. 하지만 지도전문의 교육체계가 미흡하다. 전공의와 PA 간 업무 범위 설정도 애매모호하다. 이제는 이 모든 과정을 총괄하고 수련교육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기구가 필요하다.”
윤신원 “특히 사각지대에 있는 인턴 수련교육을 위해서라도 수련교육원 같은 전담 기구가 필요하다. 레지던트는 그나마 각 전문과목 학회가 수련교육을 책임지고 있지만 인턴 교육은 체계적으로 관리되지 않는 실정이다. 의학회가 인턴 수련교육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 현재 수평위는 복지부 영향을 많이 받고 하드웨어 중심 평가에 치우친 경향이 있다. 수련교육의 소프트웨어는 의학회가 맡아야 하지 않겠나.”
홍순철 “지금은 3년이든 4년이든 정해진 수련 기간만 채우면 전문의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전공의 근무시간 단축 흐름 속에서 해당 기간 내 충분한 역량에 도달하지 못하는 경우 수련 기간을 연장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의학회 산하 수련교육원 같은 공식적인 기구가 필요하다.”
주60시간 인정, 변화 가늠하는 시금석
내과학회 김대중 수련이사도 수련교육원 설립 필요성에 공감했다. 하지만 그 전에 의학회가 “새 판 짜기를 할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며 전향적인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했다. 대표적인 게 전공의 근무시간 단축 문제다. 의학회는 주 80시간을 60시간으로 단축하는데 반대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김대중 “의학회가 수련교육원 설립 필요성을 선도적으로 제기한 건 굉장히 잘한 일이다. 하지만 갈 길이 멀다. ‘이제는 새 판을 짜야 한다’고 하지만 정작 의학회는 준비돼 있지 않아 보인다. 근무시간 단축 논의에 경직된 태도를 보이는 것이 단적인 예이다. 전공의 근무시간을 주 80시간에서 60시간으로, 36시간 연속 근무에서 24시간으로 줄이자는 제안에 의학회는 소극적이다. 이 문제는 ‘우리가 변화할 준비가 돼 있느냐’를 가늠하는 시금석이다. 의학회는 오히려 ‘근무시간이 줄어도 양질의 수련을 보장하겠다’고 선언해야 한다. 준비가 안 됐다고 기존 체계를 고수하면, 전국 교수들에게 ‘준비하지 않아도 된다’는 잘못된 신호를 주게 된다. 그러면 아무도 바뀌지 않는다. 내과학회 내에서도 ‘우리가 먼저 바뀌고 준비하면, 전공의들도 그걸 인정하고 내과를 선택할 것’이라고 말한다. 준비하지 않으면 결국 무너진다. 더 이상 회피해서는 안 된다.”
전공의 복귀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교육의 질을 담보할 시스템과 사람, 그리고 예산 없이는 필수과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이 모든 과제를 감당할 ‘제도적 틀’과 이를 실현할 ‘의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