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의료부터 헬스케어까지 분당서울대병원의 '한발 앞선' 행보

[인터뷰] 분당서울대병원 송정한 원장 '빅5' 평가보다 내부 역량 다지기 집중 "끝없는 혁신으로 미래 의료 선도하겠다"

2023-11-07     고정민 기자

의료계에서 분당서울대병원 위치는 다채롭다. 국가중앙병원이면서 지역 주민이 찾는 지역 병원이기도 하다. 의료 디지털 전환을 이끄는 동시에 소외 계층을 염려하고 사각지대를 들여다본다. 교육병원으로서 고민과 경험을 지역사회와 나누기도 한다.

초고령사회를 맞아 재택의료지원센터를 설립했고 성차의학연구소처럼 이름조차 생소한 의료 분야에 먼저 발을 들였다. 국내 최초로 '아웃컴북'을 발간하고 GHA(Global Healthcare Accreditation) 국제 진료 인증을 획득하기도 했다. 모두 환자가 무엇을 바라고 이를 어떻게 충족할지 한발 앞서 고민했기에 가능한 결과다.

분당서울대병원 역할은 의료 전 영역으로 뻗어나가고 있다. 지난 2016년 문 연 헬스케어혁신파크는 의료와 산업이 마주하고 서로 연결되는 플랫폼으로 자리 잡았다. 하버드대와 MIT가 위치한 '보스턴 클러스터'처럼 혁신 기업이 모이고 새롭게 탄생하는 산실을 지향한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의료의 공공성 강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가운데 180여개 음압병상을 갖춘 국내 최대 규모 감염병전문병원 건립도 추진하고 있다. 4,500억원 규모 사업으로 정부 예산은 500억원이다.

분당서울대병원 이런 대규모 투자와 과감한 혁신으로 지역사회 중심 의료기관이자 국가중앙병원으로서 한국 의료가 나아갈 길을 제시하고자 한다.

청년의사는 송정한 원장에게 그간 분당서울대병원이 이룬 성과와 앞으로 병원 혁신 방향을 물었다. 이번 인터뷰는 청년의사 자매지 'Korea Biomedical Review(KBR)'과 공동으로 진행했다.

송 원장은 지난 1988년 서울의대를 졸업했다. 분당서울대병원 경영혁신실장과 교육수련실장, 인재개발실장을 거쳐 지난 2019년부터 진료부원장 겸 공공의료본부장을 지냈다. 진단검사의학 분야 권위자다. 지난 3월 13대 원장으로 취임했다.

분당서울대병원 송정한 원장은 국가중앙병원이자 지역사회 의료 구심점으로서 미래 의료 방향성을 제시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번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했다(사진 제공: 분당서울대병원).

- 취임사에서 공공병원으로서 역할을 강조했다. 의료 분야에서 공공 역할은 늘 강조되지만 우리 의료 현실에서 의료기관이 수익을 내려두고 공적 목표에 전력투구하기 어렵다. 한편으로 공공 분야가 영리화 되어간다는 의견도 있다. 분당서울대병원 경영자로서 이를 어떻게 생각하나.

최근 의료의 공공성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국가적 차원에서 이를 뒷받침하고자 제도적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의료는 사회를 이루는 근간이자 필수적인 요소다. 그러나 다양한 분야에 종사하는 수많은 의료기관이 합심해 온전히 공공성에 집중하기에는 분명 한계가 존재한다.

그렇기에 분당서울대병원 같은 국립대병원이 선도적인 모델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무엇보다 필수의료 부족 사태를 이겨 낼 모델 수립이 시급하다. 생명과 직결된 중증 질환이나 환자 수는 적고 치료는 어려운 희귀·난치 질환 분야는 높은 진료 역량과 공공성이 요구된다. 국민이 필수의료 사각지대에 놓이지 않도록 더 노력하겠다.

- 최근 공공의료 부문에서 떠오르는 키워드가 재택의료다. 분당서울대병원도 재택의료 분야에서 여러 시도를 하고 있다. 앞으로 재택의료 참여 범위를 확장할 계획이 있나. 대학병원이 재택의료까지 하느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분당서울대병원은 올해 재택의료지원센터 조직을 신설하고 일부 재택의료를 시행하고 있다. 3차 병원으로서 직접 재택의료에 참여해 역할을 확장하기보다는 지역사회 의료기관을 교육하는 데 힘쓰고자 한다(관련 기사: 내일 첫 방문진료 앞둔 의사 위해…'어벤저스' 뭉친다).

병원과 가정은 장비나 시스템, 인력 등 의료진이 마주하는 진료 환경이 다르다. 지역사회 병의원이 재택의료에 관심을 가져도 막상 참여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 분당서울대병원은 이를 해결하고자 사례를 수집하고 경험을 공유하며 병의원 재택의료 역량을 증진하는 지역사회 의료기관 구심적 역할을 하겠다. 재택의료가 필요한 환자는 어떤 문제를 겪고 있고 우리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도움이 필요한 환자는 어떤 공적 의료·복지 사업과 연계할 수 있는지 고민과 해결책을 함께 찾고자 한다.

- 코로나19 팬데믹 국면은 지났으나 새로운 감염병 위기는 여전하다. 분당서울대병원은 수도권 감염병전문병원 설립을 준비하고 있다. 감염병 위기가 상존하는 시대에 분당서울대병원 감염병전문병원 등장이 가진 의미는.

지난 코로나19 팬데믹에서 한국은 비교적 선방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수많은 의료기관이 감염병 대응에 적극적으로 나섰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료기관이 한정된 자원과 인력을 코로나19 극복에 투자하면서 다른 분야에서 공백이 발생했다. 분당서울대병원도 코로나19 병동을 운영하기 위해 기존 병동을 개조했다. 이 때문에 팬데믹이 장기화 되면 의료가 무너질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커졌다. 경험해 보지 못한 사태에서 확실한 컨트롤 타워가 없는 점도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규모와 시기는 예측할 수 없지만 감염병 사태는 언제든 다시 올 수 있다. 위기가 반복되지 않으려면 감염병을 아주 전문적으로 다루는 병원과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는 시설이 반드시 필요하다. 감염병전문병원 설립 의의가 바로 여기 있다.

- 분당서울대병원은 전국구 병원이지만 동시에 지역 환자 이용이 활발한 병원이다. 국가중앙병원으로서 의료 방향성을 제시하면서 지역사회 의료 수요도 책임진다. 전국, 수도권, 경기 남부, 분당이라는 다양한 층위에 걸쳐 있다. 분당서울대병원에 '지역'이란 어떤 의미인가.

분당서울대병원이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원동력에 지역사회 역할이 컸다. 그간 수도권 남부는 전국 최상위 수준 의료기관이 부족했다. 분당서울대병원은 단비 같은 역할을 했다.

이제 경기도 남부는 IT와 반도체, 바이오 등 차세대 산업 중심지로 성장했다. 융복합이 중요한 의료 산업의 미래 모델을 만들어 나가는 데 지역 역할이 크다. 지역은 우리 병원이 성장할 수 있는 근간이자 미래를 설계하는 기반이며 동시에 우리가 지켜야 할 국민이 있는 곳이다. 분당서울대병원에 지역이란 이런 의미다.

- 분당서울대병원은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를 선도하는 병원이다. 지난 2016년 문 연 헬스케어혁신파크도 연구와 산업을 잇는 플랫폼으로 그 역할과 가치가 커지고 있다. 앞으로 목표는.

헬스케어 연구부터 임상 적용이 가능한 단계까지 어우르는 생태계를 조성하고자 한다. 우수한 연구진과 함께 혁신 기술을 발전시키고 전임상부터 임상, 사업화까지 전 주기를 지원하는 기반 시스템 구축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그 결과 40여개 기업이 헬스케어혁신파크에 입주했고 외부와 협업하는 기업도 많다. 앞으로 시스템을 고도화하고 키워나가면 하나의 커다란 산업 생태계를 만들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 디지털 전환 과정에서 의료계의 가장 큰 과제는 무엇이라고 보나. 병원 디지털화에 의료진 견해 차이도 있었을 것 같다. 이를 극복하고 디지털 기술에 대한 수용성을 높인 비결이 있다면.

수많은 논점 중 단 하나를 가장 큰 과제로 특정하기 어렵다. 다만 기술과 장비에 익숙하지 않은 고령 세대 문제에 마음 쓰고 있다. 고령층에게는 스마트워치로 본인 건강 상태를 스스로 모니터링하는 일도 쉽지 않다. 지금도 어려운데 앞으로 기술이 발전하면 그만큼 어려움도 더 커질 거다. 우리나라는 초고령사회에 접어들었다. 의료 디지털 전환 과정에 소외되는 사람이 없도록 하는 것도 중요한 부분이다.

분당서울대병원은 지난 2003년 개원 당시부터 종이와 차트, 필름, 처방전이 없는 첨단 디지털병원으로 시작했다. 이후에도 IT 부문에서 빠르게 발전을 거듭해 왔다. 비결이라면 역시 혁신에 대한 구성원과 리더들의 열린 자세라고 생각한다.

- 분당서울대병원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GHA 국제 진료 인증을 획득했다. 그만큼 외국인 환자에 대한 이해가 높고 의료 서비스와 진료 환경 수준도 높다는 평가다. 팬데믹 와중에 외국인 환자를 위한 의료 서비스와 진료 환경에 어떤 변화가 있었나.

우리 병원도 코로나19 팬데믹을 기점으로 외국인 환자 유치에 어려움을 겪었다. 특히 이전부터 분당서울대병원을 찾던 외국인 환자들이 제때 치료받지 못하는 상황에 놓이기도 했다. 중증 환자는 패스트 트랙(Fast track) 제도를 시행해 병원에 입원한 상태에서 검사와 수술 등 치료가 이어지도록 여러 부서가 노력했다.

한시적으로 비대면 진료 규제가 완화된 점도 다행이었다. 직접 오지 못하는 외국인 환자 치료를 이어갈 기반이 마련됐다. 원격진료 솔루션인 이지온더콜(Ez on the call)을 자체개발해 외국에 있는 환자도 사전·사후 관리가 가능했다. 병원이 뛰어난 IT 역량을 갖췄기에 할 수 있었다. 특히 전자의무기록(EMR) 영상 자료 등을 현지 환자와 화면으로 공유해 만족도를 높였다.

이런 노력 덕분에 팬데믹 국면이 지나면서 오히려 코로나19 이전을 뛰어넘는 외국인 환자 유치 실적을 기록하고 있다. 현재는 중동과 러시아, CIS(Commonwealth of Independent States) 등 아랍권과 러시아권 그리고 평택으로 이전한 주한미군이 주 대상이다. 외국인 환자는 체류 기간에 제약이 있는 만큼 진료 시스템 고도화에 힘쓰고 있다. 외국인 진료 분야를 더 키워 K-의료를 세계에 더 적극적으로 알리겠다.

- 분당서울대병원은 전국 5위권 병원으로 꼽힌다. 이런 성장 원동력은 어디에서 나왔나. 또 실질적으로 '빅5'에 올라섰다는 시각이 지배적인데 내부 평가는 어떤가.

분당서울대병원은 외부적인 명성보다는 내부에서의 혁신과 변화, 환자에게 관심이 많은 조직이다. 모든 구성원이 스스로 혁신하고 변화하는 게 일상이며 병원 역시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도전하는 데 익숙하다. 이러한 혁신 문화야말로 병원 성장 동력이다.

감염병 사태와 필수의료 위기로 최근 국가중앙병원에 대한 국민의 관심과 기대가 커지고 있다. 외부 평가보다 병원 사명을 올바르게 실천하고 수행하기 위한 방향성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 의료계는 이제 미래병원을 논하고 있다. 분당서울대병원이 그리는 미래병원은 어떤 모습인가.

패러다임을 선도하는 병원이다. 진료뿐만 아니라 의학 연구와 교육, 공공의료 등 여러 방면으로 병원 역할이 확대되고 있다. 의학 패러다임도 진료실 밖 환자의 일상으로, 치료 중심에서 예방 중심으로 점점 옮겨가고 있다. 초고령사회를 맞아 노인 의료에 대한 사회적 준비도 필요하다.

분당서울대병원은 국가중앙병원으로서 미래를 준비하고 만들어 나가야 한다. 이제 세계 병원들 가운데 이름을 올리고 있는 만큼 의학이 혁신적이면서 지속 가능한 방향을 찾도록 선도해 나가야 한다. 감염병전문병원을 비롯해 외래 공간을 보다 고도화하고 연구 기반을 확충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계획하고 있다. 이를 위해 국내는 물론 전 세계 많은 의료기관과 교류하고 연구하며 답을 찾아가고 있다. 우리 도전을 지켜봐 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