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 리스크로 산과 붕괴”…신생아 뇌성마비 형사기소 ‘나비효과’ 우려
산부인과개원의사회 “누가 분만 맡으려 하겠나” 개탄 10년간 분만병원 243곳 사라져…“해외 출산할 수도”
사법 리스크로 산부인과 전문의들이 분만을 포기하고 있다. 최근 신생아 뇌성마비로 분만 담당 산부인과 교수가 형사 기소된 사건은 또 다른 충격이었다. 소아청소년과 지원 기피를 불러온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 사건처럼 산과 붕괴를 가속화하는 “나비효과”가 될 것이라고 했다.
14일 서대문구 스위스그랜드호텔에서 진행된 직선제 대한산부인과개원의사회 기자간담회에서는 사법 리스크에 대한 현장의 우려가 쏟아졌다. 이대로면 조만간 분만하는 병원도, 의사도 찾기 힘들 것이라는 우려다. 이미 늦었다는 한탄도 나왔다.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2013년 706개소였던 분만 병원은 2023년 463개소로 34.4%(243개소) 줄었다. 산부인과가 ‘기피과’가 되면서 신규 전문의 수도 2008년 177명에서 2023년 103명으로 감소했다. 산과는 상황이 더 심각해 이들 중 10% 내외만 분만을 하는 산과를 전공한다는 게 산부인과개원의사회의 설명이다. 2025년도 하반기 전공의 모집에서도 산부인과는 620명 모집에 299명(48.2%)만 채워졌다.
산부인과개원의사회는 분만 인프라 붕괴를 막으려면 “사법 리스크 제거가 시급하다”고 했다. “분만은 본질적으로 불가항력적 위험을 내포한 의료행위”인데도 그 결과에 따라 의료진이 민·형사상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 계속되면 “그 누구도 분만을 맡으려 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박혜성 수석부회장은 “나비효과라는 게 있다.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사건이 발생했을 때 유방암 투병 중이었던 담당 소아청소년과 교수가 감옥에 갔다. 이후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지원율이 급감했다”며 “이대목동병원 사건처럼 이번 신생아 뇌성마비 산부인과 의사 형사 기소 사건도 4~5년 뒤 산부인과에 비슷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했다.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사건으로 기소됐던 의사 4명과 간호사 3명은 모두 최종 무죄 선고를 받았다. 사건 발생 5년 만이다.
박 부회장은 “앞으로 분만할 의사가 없어서 집에서 분만하거나 해외에서 출산해야 하는 상황까지 올 수 있다”며 “4~5년 뒤 분만할 의사가 사라지는 상황이 되면 늦는다. 심각하다”고 말했다.
오상윤 부회장은 “수도권도 분만 인프라 붕괴에 들어갔지만 지방은 더 심각하다. 지방 소재 분만병원 대부분은 60대 이상이 분만을 하고 있다. 이대로면 3년 안에 분만하는 병원이 없는 지역이 더 늘어날 것”이라며 “경기 시흥 지역도 제가 개원할 때는 분만병원이 6곳이었지만 지금은 우리 병원 한 곳밖에 없다. 우리도 분만하는 의사를 구하지 못해서 내년에는 폐업해야 하나 고민 중”이라고 했다.
이에 무과실 분만사고 보상금을 현행 3억원에서 10억원으로 상향하고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제정, 분만 관련 민·형사상 의료과실 가이드라인 완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김재유 회장은 “산과 붕괴를 막으려면 결국 소송이 줄어야 한다. 소송이 줄기 위해서는 무과실 분만사고 보상금을 상향 조정하고 사법 리스크를 제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동석 명예회장은 “불가항력적 분만사고여도 소송을 제기하고 의사에게 잘못이 있다고 몰아서 손해배상하라고 하면 환자에게 보상을 해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며 “산부인과가 사라져 가는 첫 번째 이유가 사법 리스크다. 무과실 분만사고에 대해서는 국가가 충분해 배상해서 선의로 의료행위를 한 의사에게 책임을 묻지 않아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이뤄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렇지 않으면 “산부인과는 곧 사라진다”고 했다.
그는 2024년 기준 67.4%나 되는 제왕절개 분만율도 사법 리스크 부담으로 인한 ‘방어 진료’ 때문이라고 지적하며 정부가 특단의 대책을 내놓지 않으면 “산부인과는 곧 사라진다”고 했다.
사법 리스크에 “저수가 정책과 과도한 규제”까지 겹치면서 분만 뿐만 아니라 산부인과 진료 자체를 포기하는 의사들이 늘고 있다고 했다.
오 부회장은 “산부인과 개원의 상당수는 필수 진료를 포기하고 미용·성형 진료로 전환하거나 폐업을 선택하고 있다”며 “이는 단순한 ‘저출산 문제’에 그치지 않고 국민의 안전한 출산권과 필수의료 접근성 붕괴와 직결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산부인과의원이 생존하려면 ▲수가 현실화와 규제 완화 ▲기본진찰료 인상과 질강처치료 등 처치 행위 개선 ▲검체 채취료 및 상담료 신설이 필요하다고 했다. 특히 산부인과에 한해 다인실 의무 규정을 폐지해 1인실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하고 ‘Risk fee’와 분만 대기료 신설, 산과 초음파 7회 급여 제한 폐지 등이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