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은 '제도'로, 한국은 '희생'으로… 중증환자 재활치료 현실
[청년의사-대한중환자재활학회 신년기획④] 충분한 인력이 다양한 재활 제공하는 선진국 수가·정책으로 지원하자 조기 재활 보편화 의료현장 수용성 올리고 소아중환자로 확대
선진국 의료체계는 위독한 환자를 치료하면서 생존 이후 삶까지 고민한다. 반면 한국은 그렇지 못하다. 아직은 환자를 살리는 데 급급하다. 중환자실 퇴원 이후 삶을 고려한 수가 등 제도적 지원은 없다. 이런 현실에 한국 의료진은 ‘중환자 난민’을 걱정한다. 이에 청년의사는 대한중환자재활학회와 함께 하는 신년기획에서 한국 의료체계가 놓치고 있는 ‘중증환자 재활치료’를 다룬다.
①집중치료 후 증후군, 재활치료 효과는? ②재활치료가 불러온 변화 ③살리는 데 급급한 한국 의료 현실 ④중증환자 재활치료 장려하는 선진국 의료제도 ⑤‘중환자 난민 시대’ 끝내려면
한국 의료 현실은 선진국과 비교하면 더 명확해진다. 중증환자 재활치료 분야도 마찬가지다. 한국에서 중증환자 재활치료는 수가도, 제도적 지원도 없이 의료진의 노력으로 유지된다. 반면, 선진국에서는 정부가 수가와 제도로 지원하고, 의료진은 그 안에서 더 나은 재활치료를 고민한다. 선진국에서 중증환자 재활치료는 ‘당연하게’ 여겨진다.
미국이나 캐나다, 유럽 등 선진국은 중환자실에서 이뤄지는 재활치료가 자연스럽다. 중환자 대상 조기 재활은 표준 치료로 자리 잡았다. 이는 다양한 연구 결과에서도 드러난다.
국제학술지 ‘Critcal Care’에 따르면 지난 2019년 미국 병원 591곳을 대상으로 진행된 조사 결과, 중환자실 입원 환자 중 66.5%가 물리치료를 받았다. 작업치료를 받은 중환자는 41.0%였으며 32.2%는 언어치료를 받았다. 미국 중환자실 대부분은 조기 재활을 표준 치료로 채택하고 있다.
유럽 여러 국가도 중환자실 재활 경험이 풍부하다. 지침도 마련돼 있다. 독일과 스위스는 조기 재활을 위한 중환자실 협진 체계가 구축돼 있다. 중환자 전문의와 물리치료사, 간호사가 협력해 중증환자 재활치료를 시행한다. 호주와 뉴질랜드도 마찬가지다. 호주와 뉴질랜드는 중환자실 대부분 선임 물리치료사가 1명 이상 상주한다.
일본은 중환자실을 운영하는 병원의 50% 이상이 조기 재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 성과는 뚜렷하다. 인공호흡기를 착용한 중환자의 56%가 중환자실 입원 5일 이내 침대 가장자리에 앉을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됐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지난 2023년 국제학술지 ‘Scientific Reports’에 게재된 중환자실 조기 재활과 조기 운동(early mobilization)에 관한 연구 결과다. 일본 연구진은 지난 2019년 4월부터 2020년 3월까지 중환자실 6곳에 입원한 환자들을 대상으로 다기관 후향적 코호트 연구를 진행했다. 대상은 48시간 이상 기계환기를 받은 18세 이상 환자들로, 조기 운동 달성률이 56%였다. 조기 운동은 중환자실 입원 후 5일 이내 침대 가장자리에 앉을 수 있는 능력으로 정의했다.
삼성서울병원 중환자의학과 정치량 교수는 “중환자실 내 조기 재활치료는 세계적으로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특히 미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에서 중증환자 재활은 이미 표준 치료”라며 “중환자 치료 과정에서 조기 재활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연구결과도 많이 발표한다”고 말했다.
서울대병원 재활의학과 현성은 교수는 “선진국은 중환자실 내 재활치료가 보편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중증환자 재활치료를 제공하지 않는 것을 오히려 환자에게 위해를 끼치는 행위라고 인식한다”고 강조했다.
충분한 전문 인력이 다양한 재활치료 제공하는 선진국
시행하는 재활치료 분야도 다양하며 전문 인력도 확충돼 있다. 정치량 교수는 “중증환자 재활치료가 보편화된 나라들은 전담 중환자재활팀(dedicated mobility team)을 운영하고 중환자 전문의, 재활의학과 전문의, 간호사, 중환자재활 코디네이터, 물리치료사, 작업치료사, 언어치료사 등 다학제로 협력한다”며 “인력과 교육, 장비 등도 확충돼 있어 한국과 다르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미국이나 호주, 유럽 국가들은 중환자실에 재활치료만 담당하는 인력이 배정돼 공휴일에도 오전과 오후 시간에 재활치료가 이뤄진다”며 “한 유닛(8~10병상)마다 전담 물리치료사 2~3명이 치료에 참여한다. 전담 작업치료사, 언어치료사, 중환자 재활보조원 등도 배정돼 포괄적인 재활치료가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이대서울병원 중환자외과 김태윤 교수는 “일본과 미국 모두 제공되는 재활치료 종류가 한국보다 다양하다”며 “한국도 일부 중환자실에서는 물리치료뿐 아니라 작업치료와 언어치료도 시행하지만 일본과 미국은 물리·작업·언어치료 등 다학제적 재활치료가 체계적으로 제공된다”고 했다. 단, 미국은 민간보험 기반이기에 “병원별 시스템이나 환자가 가입한 보험 기준에 따라 재활치료 구성과 범위가 달라진다”고 전했다.
또한 선진국은 중증환자 재활치료 대상을 성인에서 소아로 확대하는 추세다. 미국소아중환자의학회(Society of Critical Care Medicine, SCCM)는 지난 2022년 ‘PANDEM Guidelines for Infants and Children’을 발표하고 소아 환자도 성인과 마찬가지로 통증, 불안, 섬망을 적극 관리하고 가급적 깨워 최대한 움직이도록 돕는 ‘조기 운동’을 추천했다. PANDEM은 ‘Pain, Agitation, Neuromuscular Blockade, Delirium, Early Mobilization’의 약자다.
현성은 교수는 “SCCM은 중환자실에서 환자의 상태가 시시각각 변하는 점을 고려해 매일 개별 환자에게 적절한 이동 훈련 목표를 설정하고, 발달 연령을 반영해 최대한 기능적인 움직임을 유도할 것을 권고한다”며 “유럽 국가들도 소아중환자실에서부터 조기 재활을 적극적으로 시행하며 NHS(National Health Service) 가이드라인에 따라 중증환자 재활을 적극 권장하고 있다”고 했다.
수가와 정책으로 지원하자 보편화된 중증환자 조기 재활
이처럼 선진국에서 중증환자 재활치료가 보편화된 배경에는 합리적인 의료제도가 있다. 선진국은 정부가 의료진의 노력을 수가와 정책으로 적극적으로 뒷받침한다.
한국과 의료체계가 비슷한 일본도 중증환자 재활치료를 수가와 제도로 권장한다. 대한중환자재활학회에 따르면 일본은 중환자실 입원 후 14일 동안은 하루 34.6달러(약 5만원)를 보험사에 직접 청구할 수 있다. 15일째부터는 질환별로 20분당 1,750엔(약1만6,700원)에서 2,450엔(약2만3,400원)까지 하루 최대 6회 청구할 수 있다. 한국은 중증환자 재활치료 수가가 없어 시행하더라도 하루 6,290원인 단순운동치료 수가를 적용할 수밖에 없다.
김태윤 교수는 “일본 중환자실에서 초기 14일간 재활비용을 청구하려면 필수인력을 갖춰야 한다. 필수인력에는 중환자실 진료 경험 5년 이상인 의사와 간호사, 급성기질환 재활치료 경험 5년 이상인 물리치료사와 작업치료사, 언어치료사가 포함된다”고 설명했다.
미국은 일본보다 중증환자 재활치료 수가가 높게 책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김 교수는 “미국은 민간보험 중심이기 때문에 재활 비용과 청구 방식이 의료기관과 보험사에 따라 다양하다”며 “일반적으로 보험사 정책과 질병군분류체계(Diagnosis-Related Group, DRG) 기준으로 중증환자 재활치료 비용이 청구되며 전반적으로 일본보다 높은 편”이라고 했다.
연구 결과를 토대로 미국 중증환자 재활비용이 1인당 하루 13만원 이상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지난 2013년 ‘Critical Care Medicine’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중환자실에 입원하는 환자가 연간 600명이면 재활치료를 위한 인건비만 총 20만2,377달러(약 2억9,400만원)가 든다. 여기에 교육비 연간 2,000달러(약 290만원), 장비비 2만달러(약 2,900만원)를 포함하면, 추정 비용은 연간 22만4,378달러(약 3억2,600만원)다.
강남세브란스병원 재활의학과 박진영 교수는 “미국 비영리 병원의 평균 수익률이 3~6% 수준임을 감안하면 최소 3%의 수익을 고려해도 총 3억3,500만원이 청구돼야 한다”며 “이를 환자 1인당 비용으로 환산하면 약 55만8,000원”이라과 설명했다. 박 교수는 “중환자실 평균 입실 기간(존스홉킨스병원 기준)인 5.4일을 고려하면 하루 평균 재활치료비용은 2013년 기준 10만3,300원”이라며 “이번 연구가 진행된 2013년 대비 2024 미국 소비자물가지수는 약 1.35배 증가한 상태로, 현재 하루 평균 미국 중증환자 재활치료 비용은 약 13만4,290원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중환자실에서 특정 질환군 치료 과정에 재활을 포함해 제공하는 나라들도 있다. 김태윤 교수는 “중환자실에 입원하는 특정 질환군에 대해 재활치료를 묶음 방식으로 제공하는 포괄형 시스템을 시행하는 국가도 있다”며 “스웨덴, 노르웨이 등 여러 국가에서 중추신경계 질환으로 중환자실에 입원한 환자에게 재활치료를 묶음으로 제공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일본 사례를 참고해 한국도 중증환자 재활치료를 급여권으로 진입시켜야 한다고 했다. 김 교수는 “미국은 투입되는 자본 규모에 비례해 민간보험에서 보장해 주지만 한국은 이런 방식이 적용되기 어렵다. 실손보험으로 해결하는 것도 불가능하다”며 “현실적으로 일본 사례를 참고해 필수 인력 구성을 검토하고 세션별 금액을 산정한 뒤 이를 기반으로 물리치료, 작업치료, 언어치료 등을 묶음이나 다학제 접근 방식으로 제공하는 게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의료현장 수용성 올리고 소아중환자로 확대…한국은?
선진국은 한 발 더 나가 중증환자 재활치료에 대한 의료현장의 수용성을 올리는 방안을 고민하고 실천한다. 독일, 캐나다, 호주 등 여러 나라에서 중환자 재활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의료인들을 교육하고 있다. 일본중환자의학회(2023년)와 유럽중환자의학회(2024년)도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의료인 인식 개선에도 공을 들인다. 미국 존스홉킨스병원이 소아중환자실(Pediatric Intensive Care Unit, PICU)에서 실시하는 ‘PICU UP! 프로그램’이 대표적이다. ‘모든 아이에게 매일 재활치료(Every kid, Every day)를 제공하는 게 프로그램의 목표다. 10년 전 소아청소년과·중환자의학과·재활의학과·마취통증의학과 의사와 물리치료사, 호흡재활치료사, 작업치료사, 언어치료사, 간호사, 아동발달전문가가 함께 마련해 시작했다.
현성은 교수는 “PICU UP! 프로그램이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은 중환자실 의료진의 인식을 개선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존스홉킨스병원 소아중환자실의 모든 의료진은 ‘어떤 경우에도 조기 운동을 하지 못할 정도로 아픈 아이는 없다’는 인식을 공유하는 데 집중했다”며 “이후 환자, 보호자와 꾸준히 소통해 인공호흡기 치료 중에도 움직여야 하는 이유, 아이를 세워야 하는 필요성을 설득하고 의료진과 보호자 모두의 공감을 얻어낸 것이 프로그램 성공의 핵심 요인이었다”고 설명했다.
현 교수는 “PICU UP! 프로그램을 이끈 팀 리더인 사프나 쿠드차드카르(Sapna R. Kudchadkar) 박사는 그 효과를 전 세계에 홍보하며 소아 중환자 재활의 가치를 알리고, 자신의 경험과 시행착오를 공유하고 있다”며 그 결과, 전 세계에서 어린이병원 200곳 이상에서 소아중환자재활 프로그램이 활성화됐다고 했다. 현 교수는 “국제적으로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소아중환자재활 프로그램이 국내에도 하루빨리 도입될 수 있기를 바란다”며 “이를 위해 중환자 재활 전담 인력이 체계적으로 구성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병원 경영진 입장에서는 인력과 장비 등 많은 자원이 투입돼야 하는 치료에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정치량 교수는 “미국에서 중증환자 재활치료가 중환자실 재원 기간을 단축해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효과적이라는 연구결과를 발표한 적 있다”고 강조했다. 정 교수는 또 “의사와 간호사, 치료사 대상으로 재활치료가 필요한 중증환자 스크리닝 기준 및 프로토콜 등을 교육하고 ‘집중치료 후 증후군(Post-Intensive Care Syndrome, PICS)’의 예방 효과를 알려 이해도를 높이면, 치료 시작에 대한 저항감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며 “새로운 치료 도입으로 인해 과도한 업무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업무 재배정을 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성은 교수는 “수가가 없는 치료는 병원 내에서 전담 인력을 배정받기 어렵다. 이런 현실에서 단순히 ‘중환자 재활이 필요하다’는 개인 의지만으로 다학제적 접근, 팀 회의, 3~4명이 협력하는 조기 운동 훈련을 매일, 모든 환자에게 제공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안타까워했다.
반면 선진국 중환자실에서는 소아 환자가 숙면할 수 있도록 조명을 조절하고 기계 소음을 줄인다. 소아 환자에게 중환자실이 친숙해질 수 있도록 음악이나 미디어를 활용하기도 한다. 현 교수는 “해외 병원에서는 성장 단계와 신체 크기에 맞춰 유모차, 자전거, 킥보드 등을 활용한 이동 훈련이 적극적으로 이뤄지지만 국내 중환자실에서는 작은 호흡재활 치료 기기 하나 비치하는 것도 공간 부족으로 어렵다”며 전담 인력과 충분한 공간 확보가 필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처럼 선진국도 더 많은 중환자가 조기 재활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꾸준히 고민한다. 하지만 한국 의료인들은 중환자에게 재활치료를 제공할 수 있는 의료 환경, 그 자체를 부러워하는 실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