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무사가 봉합 수술한 병원 의사들 항소심서 '감형' 받았지만
부산고법 울산재판부, 수술 일부 무죄 변경…대표 원장은 '실형' 의사들 재판 중 '간호법' 언급하며 참작 호소…法 "이율배반적"
간호조무사에게 제왕절개 봉합 수술 등 무면허 의료행위를 지시해 징역형에 처한 산부인과 의사들이 항소심에서 대거 감형받았다. 간호조무사도 감형됐다. 그러나 법원은 무면허 의료행위로 의사로서 신뢰를 훼손한 죄는 무겁다고 했다. 간호법을 들어 형을 참작해 달라고 한 의사들을 "이율배반적"이라고 질책하기도 했다.
부산고등법원 울산재판부는 최근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사기)과 보건범죄 단속에 관한 특별조치법 위반(부정의료업자), 의료법 위반 교사 등 혐의로 기소된 A병원 산부인과 전문의 6명과 간호조무사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A병원 대표 원장 B씨는 사기와 보특법 위반에 의료법 위반 교사죄를 적용해 징역 2년 6개월에 벌금 500만원에 처했다. 징역 3년에 벌금 500만원을 선고한 1심 판결보다 6개월 감형됐다.
또다른 원장 C씨와 D씨는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 이들은 사기와 보특법 위반 죄만 적용했다. 원장 C씨는 1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에 벌금 300만원에 처했지만 항소심에서는 징역을 3년 유예하도록 했다.
A병원에서 봉직의로 근무한 산부인과 의사 F씨와 G씨, H씨는 보특법 위반으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1년 벌금 200만원에 처했다. 앞서 1심은 이들에게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 벌금 200만원을 선고했다.
이들의 지시로 무면허 의료행위를 한 간무사 E씨는 보특법 위반으로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 E씨는 1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에 벌금 300만원에 처했으나 항소심은 징역형 집행을 3년 유예하도록 했다.
원장 B씨 등은 지난 2014년 12월부터 2018년 5월까지 간호조무사 E씨에게 총 615차례에 걸쳐 제왕절개·복강경 수술 시 마무리 봉합을 맡긴 혐의로 기소됐다. 의사가 자궁과 복벽, 근막까지 봉합하면 E씨가 피하지방과 피부층 봉합 등 마무리를 맡았다.
지난 2023년 1월 3일 이 사건 1심을 맡은 울산지방법원 재판부는 A병원이 이같은 방법으로 564회에 걸쳐 요양급여비용 8억8,000만원을 부정 수급해 "의사 지시 아래 무면허 의료행위가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이뤄졌다"면서 "죄질이 좋지 않다"며 무더기로 징역형을 선고했다.
이에 피고인들은 항소했다. 검사가 증거로 제시한 "수술 장면 동영상 캡처 사진은 위법한 증거"라고 했다. 또한 1심 재판부가 마취기록지 기록을 보고 "일률적으로 대리수술 여부를 판단"한 것도 잘못이라고 했다. 간호조무사 E씨는 "수술실 보조 인력"이고 "영리를 목적으로 무면허 의료행위를 하지 않았다"고 항변했다. 봉직의인 F씨와 G씨, H씨 역시 "고용 의사"라 보특법 적용은 부당하다고 했다.
재판 과정에서 이들은 간호법과 PA 문제를 거론하기도 했다. 이들은 "음성적으로 이뤄지던 간호사의 진료지원 업무를 양성화하는 간호법이 입법화"됐고 "A병원에서 한 무면허 의료행위도 간호사의 진료지원 업무에 포섭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항소심서 일부 무죄 감형했지만…"병원 차원의 조직적·체계적 범행"
항소심에서는 이들 주장을 일부 받아들여 형을 감행했다.
부산고법 재판부는 마취기록지를 바탕으로 계산한 수술 시간 안에 "의사의 (다른) 외래진료나 수술 기록"이 있거나 "CCTV로 의사의 수술실 입실조차 확인 안 된" 경우는 무면허 의료행위를 했다고 판단하도록 했다. 수술 시간 안에 "의사 퇴실이 확인"됐거나 "의사가 입실했다 수 분 내에 퇴실했다고 확인"된 경우도 여기 포함했다.
그러나 그 외에는 무면허 의료행위가 벌어졌다고 인정하기 어렵다면서 1심이 유죄로 선고한 수술 일부를 무죄로 변경했다.
다만 원장 외 봉직의와 간호조무사까지 영리 목적으로 범죄에 가담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간호조무사 E씨가 다른 간호조무사들보다 약 50% 급여를 더 많이 받았고 독립된 근무 공간에서 일한 점을 들어 "무면허 의료행위 등의 직접적인 대가"라고 봤다.
봉직의들도 "A병원은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무면허 의료행위가 이뤄졌는데 이들 역시 무면허 의료행위를 지시했지 특별히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또한 수술 동영상이 비록 "환자의 사생활 비밀을 침해하는 측면"은 있지만 "범행의 중대성"이나 "무면허 의료행위는 실제 수술 장면을 촬영하지 않는 한 적발이 어려운 점" 등을 고려하면 공익적 측면에서 증거로 인정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의사 신뢰 훼손 죄책 무거워…간호법 참작 바라는 건 이율배반"
재판부는 "의사인 피고인을 믿고 수술 등을 의뢰한 환자들의 정신적 충격이 상당하고 언론이 이 사건을 다루면서 의사와 의료기관에 대한 사회 일반의 신뢰가 상당히 훼손됐다"며 "의사인 피고인들은 간호조무사에게 의사를 대리해 무면허 의료행위를 하도록 해 상당한 수익을 얻었다. 그 죄책이 무겁다"고 했다.
유일하게 실형이 선고된 대표 원장 B씨의 경우 B씨가 간호조무사 E씨를 영입한 이후 "병원에서 본격적으로 무면허 의료행위가 시작"됐다면서 "원장 B씨가 친분을 적극적으로 이용해 무면허 의료행위를 담당하게 할 목적으로 E씨를 고용"했고 "무면허 의료행위를 주도"하며 "가장 적극적으로 무면허 의료행위를 지시"해 "그 책임이 가장 무겁다"고 했다.
한편 간호법은 참작 사유가 아니라고 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에서 A병원 의사들이 보인 행태"가 간호법을 반대하는 의료계 상황과 "실로 이율배반적"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