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증원’에만 꽂힌 尹정부 벤치마킹…일본, 논의 과정부터 달랐다
10년 전 의사 중심 ‘의사수급분과회’ 구성 의사 공급 과잉 시기 감안해 지역 정원 늘려
의대 정원을 현재보다 65%나 늘렸지만 결정 과정이나 대학별 배정 과정 모두 ‘깜깜이’라는 지적을 받는다. 국회가 진행한 두 번의 청문회에서도 의대 정원을 2,053명에서 5,058명으로 2,000명이나 증원해 대학 32곳에 배정한 과정이 불투명하고 주먹구구식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가 의대 증원 정책을 추진하면서 벤치마킹했다는 일본은 달랐다. 일본은 10년 전 의사 공급과 수요 조절을 논의하는 조직을 구성해 ‘전문가 중심’으로 의대 정원 조정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지난 2015년 12월 첫 회의를 가진 일본 ‘의사수급분과회’는 위원 다수가 의사다. 2022년 1월 기준 위원 총 22명 중 의사 출신 전문가는 16명이며 그 외 간호사 2명, 법학자 1명, 경제학자 2명, 기자 1명, 교육학 전공자 1명으로 구성돼 있다. 자료 유출을 우려해 회의 기록을 파기했다는 한국 정부와 달리 일본 의사수급분과회 회의록은 녹취록 수준으로 기록돼 후생노동성 홈페이지에 공개된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이 16일 발표한 ‘일본 의사 수급 정책 논의 현황 및 시사점’ 이슈브리핑에 따르면 일본 의사수급분과회는 첫 회의에서 의사 수급 기본 방향과 의대 정원 조정 방안을 논의했다. 구체적인 의대 정원 결정 방식은 지난 2020년 11월부터 논의하기 시작했다.
이슈브리핑 자료를 토대로 일본 의사수급분과회의에서 의대 정원 조정 방안 논의 과정을 정리했다.
2020년 11월 18일 제36회 의사수급분과회: 지역 정원 설정 논의
이날 논의된 의대 정원 결정 방식은 ▲의사 부족 등 각 지역 사정에 따라 ‘지역 정원’을 설정해 증원 ▲일반 정원은 소수 인원을 점진 증원 ▲의사 수급 균형화 이후 의사 수 과잉을 방지하기 위해 지역 정원을 포함한 전체 정원 감원 ▲의사 수 급변을 완화하기 위한 의대 정원 단계적 변경이다.
지역 정원은 임시 정원으로 산간 등 의사 부족 지역에서 9년간 의무 근무하는 조건으로 의대에 배정된다. 일본은 지난 2007년부터 2019년까지 지역 정원 수를 늘려 왔다. 지역 정원으로 의대에 입학해 면허를 취득한 의사 중 80% 이상이 그 지역에 정착했다.
의사 수급 추계 분석 결과도 공유됐다. 후생노동성은 주당 55시간 근무를 기준으로 하면 오는 2032년 의사 수가 36만6,000명으로 수급 균형이 이뤄진다고 분석했다. 의사 주당 근무시간을 60시간으로 하면 수급 균형(36만명) 시기는 오는 2029년이다. 의사 수급 추계 방법도 의사수급분과회에서 논의해 결정하며 후생노동성을 이를 토대로 의사 수급을 추계해 홈페이지에 공개한다.
2021년 3월 4일 제37회 의사수습분과회: 지역·진료과 편재 대책 논의
장기적으로 의사 공급이 과잉될 전망이지만 특정 지역과 진료과에 쏠려 이를 해결할 방안이 논의됐다.
지역 정원 입학자는 도도부현 동의 없이 지역을 이탈해 임상 연수 등을 받으면 전문의 자격을 인정하지 않으며 의대 임상 연구 보조금도 감액한다. 의사 부족 지역에서 일정 기간 근무한 의사에 대한 ‘인정의 제도’ 도입과 인센티브 부여도 검토하기로 했다. 지역별 의사 편재 대책을 마련한다는 전체 하에 추진 상황을 점검하면서 지역 정원 수를 논의해 나갈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후생노동성은 의료법과 의사법 개정으로 ▲의사 부족 지역 근무 의사 평가 제도 신설 ▲도도부현 의사 확보 대책 실시 체제 강화 ▲의사 양성 과정 통한 확보 대책 강화 등을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2021년 6월 4일 제38회 의사수급분과회: 지역 정원 설정 방식 논의
지역 의사 확보를 위해 그 지역 실정에 따른 지역 정원 설정과 증원 방안이 필요하다는 제안이 나왔다. 의사 과잉 공급을 방지하는 차원에서 의대 정원을 감원하자는 의견도 제시됐다.
교육부에 해당하는 문부과학성은 전국 의대 30곳을 대상으로 공청회를 진행한 결과, 3차 의료권 내 의사 연령 편재 현상이 나타나 임시 정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고 했다. 지역 정원 입학 조건으로 ‘9년 근무’를 강제하기보다 교육·연수 프로그램 등 유인책을 마련할 필요성도 제기됐다.
2021년 8월 27일 제39회 의사수급분과회: 지역 정원 입학 문제점 논의
지역 정원으로 의대에 입학하면서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응급의학과를 지원한 학생이 졸업 시 진료과를 변경하는 경우가 많다는 문제가 지적됐다. 고치현 사례로 이 경우 인센티브로 지급한 금액을 반환해야 한다. 지역 정원 입학 시 지정 과목으로 산부인과와 소청과를 운영하고 있지만 지원자가 없다는 이와테현 사례도 공유됐다. 이에 따라 지역 정원제의 진료과 지정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전체 의대 정원 내 지역 정원을 포함하면 각 의대에서 지역 정원 입학자 수를 제한하는 부작용이 발생한다는 우려도 있었다. 지역 정원은 일반 전형이 아닌 별도 입시 전형으로 뽑는다.
2022년 1월 12일 제40회 의사수급분과회: 의사 공급 과잉 대책 논의
인구 추이 등을 고려할 때 향후 의사 과잉 공급이 예상되므로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일본 인구 1억2,000만명을 진료하기 위해 필요한 진료소(의원급)는 6만 곳으로 추산됐지만 현재 10만 곳이 존재해 향후 의사 4만명이 남는다는 추계도 공유됐다. 이 개원의들이 의사가 부족한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으로 이동하면 의료 인력 부족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왔지만 구체적인 대응 방안은 없다는 지적이다.
또한 의대 정원 변경 사안은 의사 근무 방식 개혁과 향후 감염병 유행 대응과 함께 논의를 진행하고 검토하기로 했다.
의료정책연구원은 “정부가 전문가 중심으로 논의의 장을 만들고 논의 내용을 국민에게 투명하게 공개하며 이를 바탕으로 정책 방향을 설정해 나가는 방식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며 “정부는 의대 정원 증원에 대한 논의 시 일방적인 정책 추진이 아닌 의료 전문가가 중심이 되는 사회적 협의체를 구성해 심도 있는 논의와 협의를 추진하고, 협의 과정의 투명성 확보를 위한 기전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