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운 대로 진찰할 수 없는 의료 현실…“낮은 진찰료에 검사 우선”

사직전공의 “의대선 진찰이 기본이라고 배웠는데…” 신영석 교수 “진찰료 23년간 제자리, 빨리 현실화해야”

2024-08-14     송수연 기자
서울대병원 신경외과를 사직한 우병준 전공의(왼쪽)는 13일 서울의대 비대위 주최 토론회에서 진찰료 현실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고려대 보건대학원 신영석 교수도 이 의견에 "100% 공감한다"고 했다(ⓒ청년의사).

의대에서는 문진과 촉진, 시진 등을 이용한 진찰이 의학의 기본이라고 배웠다. 하지만 의사면허를 취득한 후 접한 진료 현장은 달랐다. 진찰보다는 X-ray, CT 등 각종 검사가 우선이었다.

서울대병원 신경외과를 사직한 우병준 전공의가 의대 졸업 후 경험한 의료 현실이다. 우 전공의는 저평가된 진찰료를 원인으로 꼽았다. 현 수가체제가 환자를 상담하며 증상을 살필 시간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지난달 24일 환산지수 차등 적용으로 의원급 진찰료만 4% 인상했다.

우 전공의는 지난 13일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 비상대책위원회가 ‘의료수가와 보상체계’를 주제로 개최한 토론회에서 “진찰료 현실화가 필요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우 전공의는 “의대를 다닐 때는 검사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문진과 신체 검사가 의학의 기본이라고 중요하게 배웠다. 의사국가시험에도 그 부분이 상당히 많이 반영돼 있다”며 “하지만 병원으로 들어서는 순간 그런 것들은 와르르 무너지게 된다”고 했다.

우 전공의는 “진료할 때 환자 얼굴만 보고 검사를 받으라고 보내고 영상을 찍는다. 그리고 설명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짧게 결과를 전달한다”며 “진료가 오랫동안 이런 방식으로 진행돼 오면서 의사와 환자 관계에서 인간이 빠지게 됐다”고 안타까워했다.

의대에서 배운 대로 환자를 진료할 수 없는 원인 중 하나가 진찰료에 있다고 했다. 질환에 따라 상담 시간 등이 다른데도 이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우 전공의는 “일본은 진찰료에 다양한 가산체계를 운영하고 상담 시간이나 질환군에 따라 가산 기준을 구체적으로 세워놨다고 한다”며 “미국도 전체 의료비의 50%를 진찰료로 쓴다는 정책 목표를 갖고 비용을 배분한다”고 했다.

우 전공의는 “3차 상대가치점수 개편 시 여기저기서 조금씩 떼어내 기본 진료료에 얹어주기로 했는데 그 정도 수준으로는 해결하기 어렵다”며 “법적으로도 설명 의무는 강화되는데 보상체계에서 이 부분이 소외되고 있다”고도 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명예연구위원인 고려대 보건대학원 신영석 교수도 우 전공의의 지적에 “100% 공감한다”고 했다. 신 교수는 “진찰료가 중요하지만 상대가치점수제도를 도입한 2001년 이후 23년간 한 번도 손대지 않았다”며 2차 상대가치점수 개편 시 진찰료도 인상하려고 했지만 너무 많은 건강보험 재정이 필요해 3차 개편으로 미뤘다고 했다. 하지만 “3차 상대가치점수 개편에서도 재정 소요가 만만치 않아 간호등급제(간호관리료)를 통해 입원료만 일부 조정하고 진찰료는 손대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신 교수는 “병원 단위에서는 진찰료만으로는 유지되지 않으니 의대에서 배울 때와 다르게 환자 얼굴만 봐도 검사를 하는 현상이 생긴다”며 “진찰료를 빨리 현실화하는 게 너무 중요한 과제”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