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거수기’로 전락시킨 수평위…“독립 기구로 재정립해야”

수련환경 개선 아닌 요식 절차에만 활용 비판 장관 지정 위원 확대에 “영향력 더 키우려 하나” 빅6 교수들 “전공의법 개정해 전공의 몫 늘려라”

2024-07-25     송수연 기자
보건복지부가 수련환경평가위원회 위원 중 장관 지정 위원을 늘리려 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청년의사).

보건복지부가 수련환경평가위원회를 ‘거수기’로 전락시켰다는 비판이 거세다.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을 목적으로 설치된 위원회를 정부 입맛에 맞는 정책을 추진하기 위한 ‘도구’로 이용한다는 비판이다.

복지부는 지난 1월 대한전공의협의회가 단체행동 가능성을 언급하자 수평위를 통해 전국 수련병원에 전공의 대표 개인 정보 수집을 요구해 논란이 됐다. 지난해 11월에는 수평위를 거쳐 26개 전문과목학회에 전공의 수요 현황을 파악해 자료로 제출하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당시 복지부는 전문과목별 6년 치 전공의 1년 차 정원과 추가 필요한 전문의 수를 하루 만에 파악해서 제출하라고 요구해 학회들의 반발을 샀다(관련 기사: 하루 줄 테니 6년치 전공의 수요 제출하라? 학회들 ‘보이콧’).

이런 상황에서 복지부가 수평위 구성 변화까지 추진하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복지부 장관이 지정하는 위원을 3명에서 5명으로 늘리는 ‘전공의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한 것이다. 복지부는 “현재 2명인 전공의 위원을 확대하기 위해 장관 지정 전문가 위원을 늘리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전공의의 수평위 참여 확대가 목적이면 시행령 제7조 1항 3호 '의사회 추천 전공의 대표' 수를 늘리면 된다. 현재도 전공의들은 이 조항을 통해 수평위에 참여하고 있다. 전공의법상 장관 지정 위원은 ‘수련환경평가에 관한 전문가’로 명시돼 있다.

때문에 시행령 개정으로 “수평위에 대한 복지부 영향력을 더욱 키우려 한다”는 비판이다. 대전협 박단 비상대책위원장도 장관 지정 위원을 늘려 전공의 참여를 확대한다는 주장은 “정부의 기망 행위라고 비판했다.

‘빅6병원’ 교수들은 수평위를 “독립 기구로 재정립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가톨릭의대, 고려의대, 서울의대, 성균관의대, 연세의대, 울산의대 교수 비상대책위원회는 25일 입장문을 내고 “수평위가 본래 설립 취지인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과 전공의 권익 향상에 기여하는지 세간의 의문이 커지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들 6개 의대 교수들은 “복지부의 일방적 회의 일정과 안건 통보 등 현재 수평위는 요식적인 의견수렴을 위한 ‘식물 기구’, ‘거수기’ 위원회라는 지적”이라며 “수평위 존재 의미가 무엇이냐”고 반문했다.

수평위가 복지부 산하 기구로 남아 있는 게 “온당한가”라고도 했다. 이들은 “선진국에서 수평위는 복지부 공무원의 당연직 참여는 찾아볼 수 없다. 복지부 담당자의 수평위 당연직 참여는 배제돼야 한다”며 “수평위 의견과 무관하게 결정되는 현재의 상명하달식 의사결정구조는 합리적 거버넌스의 시대적 흐름에 역행하는 매우 잘못된 방식”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수평위 실무를 담당하는 수련환경평가본부는 실질적으로 ‘고용자’에 해당하는 대한병원협회의 인사와 조직을 함께 하는 사무국”이라며 이 때문에 “수평위가 ‘피고용자’인 전공의 권익을 위해 중립적으로 활동하기 어렵다”고도 했다.

이에 “전공의법을 개정해 수평위 내 전공의 추천 위원 비율을 확대해 기울어진 운동장과 같은 현재의 수평위 구성을 개선해야 한다”며 “복지부는 더 이상 수평위를 요식 절차에 활용할 게 아니라 전공의 교육수련 과정과 수련환경평가를 지속적으로 수행하는 독립 기구로 재정립하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복지부는 차후 독립적인 수평위의 합리적 거버넌스를 통한 결정을 존중하고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 권익 증진을 위해 진심으로 노력하기 바란다”고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