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빼고' 가는 지역사회 통합돌봄 이대로 잘 될까

[창간특집] 병원 밖 방문의료 현장을 가다② 초고령사회 앞뒀지만 통합돌봄은 지지부진 제도·수가 개선해 민간병원 참여 독려해야 "병원이 지역사회 의료·돌봄 통합 거점될 것"

2023-07-17     고정민 기자

수가도 지원도 없이 방문의료 현장이란 '맨땅'에서 환자를 찾는 병원들이 있다. 청년의사는 창간 31주년을 맞아 이들 병원의 방문진료 현장을 찾았다. 방문의료센터를 세운 경기도 시흥시 신천연합병원은 제도적 한계 속에서도 의료와 돌봄을 통합한 새로운 의료 서비스 모델을 모색하고 있다.

경기도 시흥시 신천연합병원과 목감종합사회복지관 매화복지센터 방문진료팀은 한 달에 한 번 방문의료 서비스가 필요한 환자를 직접 찾아간다(ⓒ청년의사).

박상철(가명) 씨는 지팡이 없이 못 걷는다. 현관을 나서는 것조차 고통이다. 좁고 가파른 계단도 박 씨를 고립시킨다. 자살까지 시도했다. 이후 지역 정신건강복지센터가 주 3회 찾아오지만 "주사를 맞아도 소용없는" 무릎과 어지러운 집안까지 돌봐주진 못한다.

황진숙(가명) 씨는 혈당이 높지만 '원인불명'이다. 식사는 어떻게 하느냐는 단골 병원 의사의 물음에 "씹기 힘들어서 밥 안 먹고 빵 먹는다"고만 했다. '사과잼' 발라먹는다는 얘기는 안 했다.

오성희(가명) 씨는 바구니 가득 찬 약 봉지가 부담스럽다. 서울에 있는 "큰 병원에서 먹으라니까 먹는다". 아무리 먹어도 어지럼증이 안 가라앉는다. 어지러워서 걸을 수가 없다. 아들 오는 날 아니면 밖은 아예 안 나간다.

한국은 이제 "집집마다 의사를 기다리는 환자가 사는" 초고령사회를 앞뒀다. 소개한 사례는 극히 일부다. 더 나쁜 경우도 더 특수한 경우도 있다. 그리고 그 수는 "앞으로 점점 늘어난다." 지난해 9월 통계청이 발표한 한국 인구 현황과 전망에 따르면 전체 인구 가운데 65세 이상 고령 인구는 2022년 17.5%에서 오는 2040년 34.4%가 된다.

65세 이상 가구는 2020년 33.7%에서 2025년 38.1%, 2030년이면 43.4%까지 확대된다. 39세 이하 가구(31.4%)나 40~59세 가구(25.2%)보다 많다. 오는 2040년이면 전체 가구 절반이 넘는 52.4%가 고령층 가구다.

65세 이상 고령층 혼자 사는 1인 가구 비중도 2020년 7.8%에서 2025년 10.1%, 2030년에는 12.3%까지 늘어난다. 65세 이상 가구 중 가장 비중이 크다.

정부는 초고령사회를 대비해 지역사회 통합돌봄 체계를 구축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의료와 돌봄은 통합되지 못하고 지역과 기관에 분산돼 있다. 정신건강복지센터가 자살 고위험자를 돌보지만 같은 지역 의료기관은 환자 존재도 모른다. 봉사자들이 각 가정을 돌며 반찬을 나누고 혈압계를 나눠주지만 거기서 그친다. 왕진 가방을 꾸린 의사가 길을 나서도 환자를 못 찾아간다.

"예산도 인력도 인프라도 모든 게 부족"…환자 발굴도 문제

방문의료 서비스 자체도 여전히 일부 의료기관과 복지기관의 의지에 달려 있다. 지난달 27일 청년의사가 찾아간 경기도 시흥시 매화동의 방문의료도 마찬가지다.

매화동 방문의료는 환자들이 "상가 건물 2층에 있는 병원 계단 오르기도 힘들어한다"는 사회복지사들 이야기에 목감종합사회복지관이 방문의료센터가 있는 신천연합병원에 협력을 요청해 만들어졌다. 의사와 간호사, 사회복지사가 한 달에 한 번 환자를 찾아간다. 더 자주 가고 싶지만 예산도 인력도 인프라도 역부족이다.

목감종합사회복지관 한상희 관장은 "어느 하나 시급하지 않은 일이 없다"고 했다. 방문의료 비용은 1만~2만원씩 들어오는 후원금을 모아 충당한다. 복지사가 모든 가정을 방문하지 못하니 자원봉사에 가까운 건강매니저 활동에 기대야 한다. "계속 할 수 있을까" 걱정하며 2년 차 사업을 이어가고 있다.

방문진료가 필요한 환자 찾아내는 건 더 큰 문제다. 정부나 지자체 차원에서도 마땅한 환자 발굴 시스템이 없다. 대부분 환자는 "경로당 회장과 동네 통·반장이 알음알음 아는 집안 사정을 건너 들어" 찾아낸다. 한 관장이 "지금 상황에서 밖으로 더 밖으로 나가서 돌아다닐 수밖에 없다"고 하는 이유다.

한 관장은 "제도가 정비돼 꾸준하고 체계적인 지원이 생겨야 기관도 더 다양한 서비스를 고안하고 활동 영역을 확장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민간 병원 참여 길 열고 성과 기준 보상 체계 세워야"

지역사회 통합돌봄은 지역 내 의료기관과 복지기관이 모두 참여해야 가능하다. 신천연합병원 홍승권 이사장(가정의학과)은 "특히 지역사회와 가까운 병원급 의료기관 참여가 필수적"이라고 했다. 병원급 의료기관은 외래 부담 없이 방문진료를 담당하는 의료진 확보가 용이하다. 다학제 진료가 필요하거나 중증·응급의료 환자도 빠르게 대응할 수 있다. 방문진료 의원급 의료기관 백업 역할도 한다.

그러나 정부 지역사회 통합돌봄 체계에서 신천연합병원 같은 민간 병원은 배제됐다. 정부가 시행하는 장기요양 재택의료센터 시범사업에서 제시하는 요건을 충족해도 관련 수가를 받을 수 없다. 공공의료기관이 아니기 때문이다.

홍 이사장은 필수·공공의료를 기능 중심으로 개편해야 한다고 했다. 국가와 지자체가 소유한 의료기관이 하는 의료로 공공의료를 국한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홍 이사장은 "일정한 기준을 충족하면 민간 의료기관도 공공보건의료 사업을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누가 의료기관을 소유했느냐가 아니라 의료기관이 어떤 기능을 수행하느냐가 공공의료기관의 기준이 돼야 한다"고 했다.

장벽만 낮춰선 안 된다. 더 많은 의료기관이 진료실이 아닌 환자의 집으로 나가도록 더 높은 디딤돌이 필요하다. 홍 이사장은 현재 30% 수준인 본인부담금을 낮추고 대신 의료기관의 방문진료 환자 등록·관리료를 높여야 한다고 했다.

다기관·다직종 협력이 필수적인 방문의료 특성에 맞춰 의료 행위가 아닌 성과를 기준으로 보상하는 포괄수가 개념도 더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다.

홍 이사장은 "필요한데 받지 못하는 과소 치료와 불필요한데도 받는 과잉치료의 위치를 역전해야 한다. 행위별수가제를 개선해 방문의료를 이용하는 환자 의료비 부담을 낮추고 등록관리료의 효과성과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가치기반 지불제도로 개편해야 제대로 된 방문의료 인프라를 구축할 수 있다"고 했다.

병원이 지역사회 의료와 돌봄 거점되는 '종합돌봄의료센터' 돼야

상황이 어렵지만 신천연합병원은 방문의료 서비스의 새로운 모델을 그리고 있다. 병원이 거점이 돼 분산된 지역사회 의료와 돌봄을 하나로 묶어 종합돌봄의료센터가 되겠다는 구상이다. 연내 출범해 전국에 보급 가능한 선도 모형을 만드는 게 목표다.

홍 이사장은 "거점 병원을 중심으로 분절된 장기요양 서비스를 모으고 의료와 복지를 통합해 제공하고자 한다"며 "지역 어르신과 장애인 등 취약 계층의 건강과 돌봄을 함께 담당하는 선진국형 종합돌봄의료센터로 거듭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통합돌봄 필요성은 이제 부정할 수 없다. 이런 공적 영역에 대한 참여 정도를 민간 의료기관 보상에 반영해야 한다. 제도를 보완하고 수가를 책정해 지역사회 중소병원이 방문의료를 비롯해 공공의료에 나서도록 이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