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심 판결문으로 본 '한방병원 산삼약침 사건'
A한방병원 원장, 위험성 알리지 않고 실적 압박
재판부 "산삼약침 한의학 원리도 벗어난 무면허행위"
"위험성 은폐하고 극단적 상업 행위 나서 환자 기망"

말기암 환자에게 '산삼약침'을 투여한 한의사가 사기죄와 의료법위반 등으로 유죄 판결을 받고 구속 수감됐다.
말기암 환자에게 '산삼약침'을 투여한 한의사가 사기죄와 의료법위반 등으로 유죄 판결을 받고 구속 수감됐다.

말기암 환자에게 검증되지 않은 '산삼약침'을 투여한 한의사가 법정 구속됐다. 이 한의사는 비의료인과 함께 사무장병원으로 한방병원을 운영하면서 과장 광고로 환자를 끌어모으고 부작용이나 피해 사례를 은폐한 채 수천 만원이 넘는 돈을 '치료비'와 '시술비' 명목으로 받아왔다. 절박한 심정에 한방병원을 찾았던 환자들은 한의사가 말한 '효과'를 보지 못한 채 사망했다.

지난 2020년 서울중앙지방법원은 A한방병원 원장인 한의사 B씨에게 사기죄 징역 1년, 의료법 위반과 의료법위반교사죄로 징역 6개월을 선고했다. B씨는 실형을 선고받았지만 구속은 면했다. 함께 기소된 동료 한의사 C씨도 집행유예 2년으로 실형을 피했다. 검사와 피고인 모두 항소했다.

그리고 약 2년 만에 열린 항소심 선고에서 B씨는 법정 구속됐다. 재판부는 B씨에게 걸린 혐의를 모두 인정했다. B씨와 공모해 사무장병원을 운영한 비의료인 C씨 역시 무죄 판결한 1심 선고를 깨고 징역 1년 6개월로 구속 수감됐다(관련 기사: 암 환자에 '산삼약침' 투여한 한의사 법정 구속).

한의사 대부분 산삼약침 시술?…"한의학 원리와도 먼 무면허행위"

2심 판결문에 따르면 한의사 B씨는 지난 2012년경부터 운영하던 S한의원(한방병원) 홈페이지 등을 통해 말기암 환자를 대상으로 'S약침'을 홍보했다. S약침이 암세포 자연사멸을 유도하고 간 재생 효과가 있어 간암 치료 기간을 단축하는 효과가 있다고 했다. 실제 치료 사례라면서 치료 전후 CT사진을 게시하고 환자 치료 사례를 보여주며 환자를 모았다.

S한의원이 홍보한 S약침은 산(양)삼을 끓여 증류 후 만든 응결용액을 환자 정맥에 주입하는 치료법이다. '산삼약침'으로 알려져 있다. 대한약침회와 대한암한의학회원을 중심으로 한의계는 여기 포함된 '방향성 성분'이 암 치료에 긍정적으로 작용한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구체적인 명칭은 물론 암 치료 효능에 대한 기전도 충분히 알려지지 않았다.

산삼약침은 '혈맥약침술'이라는 이름으로 국내 일부 한의대에서 교육하고 있다. B한의사가 S약침을 홍보한 2010년대를 기점으로 한의사 대부분이 시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정확한 기전이 밝혀지지 않았으며 안전성과 효과성을 검증할 수 있는 신의료기술평가도 받은 적 없다.

이 혈맥약침술은 한방의료행위에 포함되는 '약침술'과도 구별된다. 약침술은 약물을 소량 주입하지만 혈맥약침술은 약물을 주사기로 일정량씩 장기간 반복적으로 주입한다.

재판부는 이를 근거로 혈맥약침술이 한의학적 원리와 거기가 먼 무면허의료행위라고 봤다. 한의사가 해도 무면허의료행위인 약침술을 간호사에게 맡긴 것은 당연히 유죄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재판부는 혈맥약침술이 "한의학적 침구요법을 전제로 약물요법을 가미한 약침술과 달리 링거로 다량의 약침액을 정맥에 주입한다. 오로지 약물에 의한 효과만 극대화돼 있을 뿐 한의학적 침술에 의한 효과는 없거나 미미하다"면서 "전통적 한의학 기구가 아닌 주사기로 다량의 약물을 투입하는 행위는 전통적 한의학에서 인정하는 한의사 의료행위라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의료인이면서 환자 기망…"의료인은 최대 이익 구하는 상인 아니다"

그러나 한의사 B씨와 S한의원(A한방병원)은 이런 위험성을 환자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산(양)삼에 포함된 진세노사이드 성분이 암을 치료한다고만 주장했다. 진세노사이드는 분자량이 커 경구 투약법이 아닌 정맥 등 인체 혈관에 직접 투여하면 위험하다. 오히려 들어선 안 될 성분이 효과적이라고 내세워 온 것이다.

병원은 비의료인을 상담실장과 총괄실장으로 임용해 환자 상담을 맡기고 산삼약침의 긍정적인 면만 부각시켰다. 상담 실적을 팀별로 통계 내 상벌을 주기도 했다. 실적이 낮은 직원을 모욕하거나 감봉 처리했고 권고사직했다. 재판부를 이를 "극히 상업적인 운영 형태"로 봤다.

이런 운영 방식 때문에 직원들은 찾아온 환자들에게 "다른 의료기관에서 판정한 날보다 더 오래 살 수 있다"거나 "증상이 더 심한 환자도 종양이 줄었다. 완치 사례가 여럿 있다"고 설명하며 적극적으로 치료를 권했다.

원장인 B씨는 실제 치료받은 환자가 다른 의료기관 CT 촬영에서 "암이 더 진행했다"는 소견을 받아오자 "암 진행이 멈추고 있다. 계속 치료받으라"고 거짓말하기도 했다. 이 환자는 몇 달 뒤 사망했다.

또 환자들에게 진료 시작 전 시술료와 처치료를 모두 납부하도록 했다. 환자의 절박한 심정을 이용해 치료를 중도에 그만두지 못하게 한 것이다.

재판부는 한의사 B씨가 "의료법상 요구되는 의료인의 사명과 의무"에 반해 "피해자를 기망하고 편취했다"고 했다. 의료인은 최대한의 영리를 추구하는 상인과 그 방법도, 자세도 달라야 한다고도 했다. 판결 과정에서 양형 사유를 밝히며 "의료인은 상인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재판부는 "의사는 의료와 보건지도를 임무로 한다. 의사 등 의료인은 그 임무를 수행해 국민 보건 향상을 이루고 의료질을 높이며 건강한 의료기술을 발전시켜 환자에게 최선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했다.

재판부는 "한의사 활동은 최대한의 효율적인 영리 추구를 허용하는 상인의 영업활동과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다. 한의사나 그들이 설립·운영하는 의료기관은 상인으로 볼 수 없고 의료행위와 관련해 상법을 적용할 수도 없다"고 했다.

재판부는 "의료인이 환자와 치료 계획을 상담하고 의료적 처치 내용을 설명해 진료 계약을 체결하거나 의료적 처리를 하고 대가를 받는 과정 역시 최소 비용으로 최대 이윤과 영리를 추구하는 상인적 자세와 방법으로 임해선 안 된다"고 했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한의사 B씨의 항소 사유를 받아들이지 않고 원심 판결에 사실오인·법리오해가 없다면서 유죄를 인정해 법정 구속을 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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