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선영 교수, Multi-Arm 임상시험에 새 아이디어 적용
진행성 위암 치료에서 맞춤치료법 개발 토대 마련

국내 위암 전문가들의 연구 역량을 다시 한번 보여주는 대규모 연구자 주도 임상시험 결과가 공개돼 전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지난 3~7일 시카고에서 진행된 미국임상종양학회 연례학술대회에는 국내 진행성 위암 환자를 대상으로 한 우산형 임상시험인 'K-Umbrella' 연구 결과가 최초로 공개됐다.

대한항암요법연구회 위암분과 위원장인 라선영 교수(연세암병원 종양내과)가 발표한 이 연구는 진행성 위암 환자 치료에 신뢰할 만한 맞춤치료법 개발 토대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큰 관심을 받았다.

헤당 연구는 진행성 위암 2차 치료에 바이오마커에 기반한 약물치료와 기존 표준요법의 치료 성적 및 안전성을 비교했는데, 특히 이 과정에서 이전에 없던 새로운 방식의 우산 임상시험 디자인을 시도했다.

ASCO2022 현장에서 만나 라선영 교수에게 'K-Umbrella' 위암 연구의 개발 과정 및 결과의 임상적 의의와 향후 진행될 위암 연구의 방향성에 대해 들었다.

연세암병원 종양내과 라선영 교수
연세암병원 종양내과 라선영 교수

Multi-Arm 임상시험에 색다른 시도, 변수는 아쉬워

그림1. 연구 디자인
그림1. 연구 디자인

연구진은 기존 표준요법(SOC)을 사용한 대조군과 함께 여러 코호트로 구성된 통합 바이오마커 그룹으로 나눠 시험을 진행했다.

대상은 백금 및 플루오로피리미딘 화학요법으로 1차 치료를 받고 질병이 진행한 HER2 음성 환자였으며, 환자들은 1차 치료를 받는 동안 바이오마커 스크리닝을 받고 1 대 4 비율로 대조군과 바이오마커 그룹에 무작위 배정됐다.

바이오마커 그룹은 4개의 코호트로 나뉘어 ▲EGFR 2+/3+인 환자들(EGFR 코호트)은 광범위 ERBB 억제제인 '아파티닙(afatinib)' ▲PTEN 소실/결손 환자들(PTEN 코호트)은 PIK3Cβ 억제제인 'GSK2636771' ▲PD-L1+, dMMR/MSI-H 혹은 EBV 관련 환자들(NIVO 코호트)은 항 PD-1 억제제인 '니볼루맙'을 파클리탁셀과 병용해 치료 받았으며 ▲나머지 사전 정의된 바이오마커가 없는 환자들(NONE 코호트)은 표준요법(SOC)으로 치료 받았다.

라선영 교수는 "Multi-Arm 연구는 각 Arm마다 대조군이 있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환자수가 2배로 늘어난다는 점에서 어려운 점이 많다"라며 "이에 이번 연구에서는 공통의 대조군을 메인으로 놓고 바이오마커에 따른 여러 코호트를 통합해 디자인한 새로운 방식을 시도했다"고 설명했다.

이렇듯 국내 연구진은 바이오마커 기반의 Multi-Arm 연구로는 색다른 디자인을 선보였지만, 당초 예상했던 환자수나 연구 결과는 얻지 못했다. 연구 중간에 표준요법이 바뀌는 변수가 생겼기 때문이다.

때문에 당초 722명의 환자가 스크리닝을 받았지만, 이 중 318명의 환자만이 이번 연구 결과에 포함됐다. 연구 결과 1차 평가변수로 설정된 무진행생존기간은 바이오마커 그룹과 대조군 간에 유의미한 차이를 나타내지 않았다(mPFS 3.73개월 대 4.13개월)(그림2).

그림2. 바이오마커 그룹과 대조군의 생존 데이터
그림2. 바이오마커 그룹과 대조군의 생존 데이터

라 교수는 "해당 임상시험을 디자인한 2014년 당시에는 2차 치료의 표준요법이 파클리탁셀 단독요법이었다. 하지만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도중 2018년에 국내에서 라무시루맙이 파클리탁셀과의 병용요법으로 허가를 받으며 2차 치료 표준요법이 바뀌었다"며 "때문에 대조군을 바뀐 표준요법에 맞게 변경해야 했고, 이것이 샘플 사이즈가 줄어든 이유"라고 말했다.

또 "이 연구를 디자인할 당시에는 파클리탁셀 단독이 표준이었고, 당연히 이후에 나온 파클리탁셀+라무시루맙 병용이 성적이 더 좋을 수밖에 없다"며 "그렇게 생각하면 바이오마커 그룹의 치료 성적이 현재의 표준요법인 파클리탁셀+라무시루맙 병용만큼 나왔으니, 어떻게 보면 성공한 연구라고 할 수 있다"고도 덧붙였다.

이어 "연구를 하다 보면, 그 사이 다른 연구로부터 기존의 표준요법을 바꿔버리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며 "중요한 것은 '이것을 어떻게 지금 진행 중인 연구에 반영하느냐'인데, 그러려면 디자인도 복잡해지고, 통계학자도 있어야 하며, 샘플 크기와 약도 증가해야 해서 어려운 점이 많다. 바로 어뎁티브 디자인(adaptive design)이 힘든 이유"라고 했다.

PTEN 소실/결손 환자의 예후 및 니볼루맙 병용요법 가능성 엿봐

비록 통합된 바이오마커 그룹이 대조군 대비 무진행생존 개선의 이점을 입증하진 못했지만, 이번 연구에선 각 바이오마커 코호트 결과를 살펴보면 임상에서의 시사점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림4. 바이오마커 코호트별 생존 데이터
그림4. 바이오마커 코호트별 생존 데이터

PTEN 코호트의 mPFS가 2.83개월로 대조군의 4.13개월 대비 유의미하게 낮게 나타나, PTEN 소실/결손 환자의 좋은 않은 예후를 시사한 것이다(그림4).

또한 NIVO 코호트의 경우에는 전체생존기간 중앙값(mOS)이 10.67개월로 나타나 대조군의 8.72개월과 비교해 유의미하게 연장된 것을 볼 수 있었다(그림4).

라 교수는 "PTEN 코호트는 결과가 대조군보다 오히려 더 안 좋게 나왔는데, 이는 표적치료에 사용한 'GSK2636771'이 PTEN 소실/결손인 위암 환자에서 효과를 내지 못했다고도 볼 수 있다"며 "반면 NIVO 코호트는 전체생존에 있어 결과가 더 좋게 나왔는데, 이는 일부 라무시루맙을 사용하지 못하는 환자에서 니볼루맙+파클리탁셀 병용이 더 좋은 치료 전략이라는 것을 보여준 것"이라고 강조했다.

열린 결말, 향후 위암 연구의 향방은?

현재 국내 연구진은 이번 'K-Umbrella' 위암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후속 연구를 진행 중이다.

앞서 면역조직화학염색(IHC) 및 동소교잡반응(ISH)을 통해 바이오마커 스크리닝을 진행한 것과 달리, 더욱 확실하고 정교한 검색을 위해 NGS를 기반으로 한 바이오마커(FGFR, HRR, HER1/2, TGF-β 등)를 중심으로 표적치료 연구가 진행 중이다.

라 교수는 "이번 연구가 진행될 당시에는 NGS의 가격이 500만원을 호가해 환자 스크리닝에 적용할 수 있는 상황이 못됐다"며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라 해도 실제 임상에 적용되기까지 수십년이 걸리는 연구가 무슨 의미가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이어 "하지만 위암의 경우 HER2를 제외하면 다른 암종에서 주요한 역할을 하는 바이오마커의 우성도(dominancy)가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며 "좀 더 정확히 바이오마커의 기능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환자에서 과발현 및 증폭 상태를 자세히 볼 필요가 있고, 그 사이 국내 암환자에서 NGS 시행이 보편화됐기 때문에 후속 연구에는 NGS 기반 스크리닝이 적용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라 교수는 "이번 연구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연구자 주도 임상시험이라는 점"이라며 "기업들의 관심이 떨어지는 분야에 연구자가 시그널을 찾아줄 수 있다는 점에서 연구자 주도 임상시험은 굉장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위암이 아시아인에서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암종인 만큼, 글로벌 시장 및 서양인 중심의 제약 기업들의 관심 밖에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라 교수는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를 내도 약이 있어야 연구를 진행할 수 있는데, 문제는 위암에 관심 있는 회사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라며 "그럴수록 연구자의 평판과 역량이 중요하며, 개인의 과학적 호기심이 아닌 실제 나온 연구 결과가 환자에게 곧바로 적용할 만한 임상 디자인을 만들고 제대로 수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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