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정책연구소 'OECD 회원국 간호법 현황조사' 공개
38개 회원국 중 간호법 11개국…"면허관리만 규정해"

전 세계 90개국에 간호법이 있다는 간호계 주장에 대한의사협회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전수조사 결과 11개국뿐이었다고 받아쳤다. 이마저도 간호사 면허관리 규정에 가깝다는 지적이다. 의협은 나머지 국가도 추가조사하겠다면서 대한간호협회에 '90개국' 명단 제출을 요청했다.

19일 의협 의료정책연구소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OECD 38개 국가 가운데 단 11개 국가만 ‘간호법’이 존재했다. 한국을 비롯해 나머지 27개 국가는 간호법이 없었다. 간호법 기준은 ‘Law, Act, Code’ 형식을 갖췄는지 여부다. 그렇지 않고 ‘Regulation, Order’처럼 법의 일부나 하위법 형태를 취하면 간호법으로 분류하지 않았다.

의협 의료정책연구소 'OECD 회원국 간호법 현황조사' 자료 재구성.    
의협 의료정책연구소 'OECD 회원국 간호법 현황조사' 자료 재구성.

이 기준을 따르면 OECD 회원국 가운데 간호법이 존재하는 곳은 오스트리아, 캐나다, 콜롬비아, 독일, 그리스, 아일랜드, 일본, 리투아니아, 폴란드, 포르투갈, 터키 등 11개 국가다.

간호법이 없는 27개 국가는 보건의료인력 관련 규정을 의료법 안에 포함시키거나 ‘보건전문직업법’ 또는 '직업법'으로 다루고 있었다.

한국을 포함해 13개 국가는 의료법에서 보건의료인력 관련 사항을 함께 규정하고 있다. 벨기에, 칠레, 코스타리카, 에스토니아, 프랑스, 헝가리, 이스라엘, 이탈리아, 라트비아, 룩셈부르크, 멕시코, 영국이 여기 해당한다.

나머지 14개 국가는 의료법과 별도로 보건전문직업법(또는 직업법)을 제정했다. 호주, 체코, 덴마크, 핀란드, 아이슬란드, 네덜란드, 뉴질랜드, 노르웨이,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스페인, 스웨덴, 스위스, 미국이 여기 속한다. 이들 국가는 보건전문직업법(직업법)으로 보건의료인력에 관한 사항을 규정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간호법을 폐지한 나라도 있다. 호주와 덴마크는 보건전문직업법을 제정하면서 간호법이 폐지됐다.

우봉식 의료정책연구소장은 “국가 면허를 기반으로 하는 보건의료인력의 자격, 면허, 규제에 관한 사항을 하나의 법에 통합적으로 규정함으로써 법 적용 일관성을 유지하고 보건의료인력간 체계적인 협업을 권장하기 위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의협은 OECD 회원국 조사를 시작으로 간협이 '90개국' 명단을 제공하면 추가 조사에 들어간다는 계획이다.

우 소장은 "전 세계에 200여 국가가 존재하지만 법안이 빠르게 추진되는 국면이라 OECD 조사 결과를 발표하게 됐다. 90개국 명단이 나오면 추가로 더 조사하겠다"며 "그러나 이미 OECD 조사에서 통계적으로 간호법 존재 비율이 30% 수준에 그치는 만큼 (90개국 주장은)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고 했다.

해외 '간호법'은 국내 '간호법'과 제정 목적부터 달라

또한 간호법이 있어도 대부분 면허관리 내용이라는 것이 의료정책연구소 견해다.

이들 법은 Council, College, Board 등 면허관리기구 설치와 구성, 교육・자격・면허・등록, 간호사에 대한 환자 민원 접수와 조사, 징계 등 면허 관리 사항을 규정하고 있다.

반면, 국내의 경우 보건의료인력 면허를 모두 보건복지부가 관리하고 의료법에서 의사・치과의사・한의사・조산사・간호사에 관한 사항을 통합적으로 규율하고 있다.

의료정책연구소는 현재 의료인 면허관리기구가 따로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직역별 단독법 제정은 통합적인 면허관리 체계 유지에 바람직하지 않고 실익도 찾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우 소장은 "해외 간호사 단독법 제정 목적은 엄격한 면허관리를 통해 국민 건강을 두텁게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면서 “이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과 의료환경에 대한 비교 없이 단순히 '해외 여러 국가에 간호사 단독법이 존재하므로 우리나라도 간호사 단독법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매우 부적절하다”고 비판했다.

역대 간호사 관련 법안, '간호사 업무범위 확대' 방점

간호법 추진 역사는 지난 2005년 4월 김선미 의원이 발의한 ‘간호사법'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간호사 업무범위 확대를 본격적으로 추진한 첫 사례로 꼽힌다.

우 소장은 "당시 의사 직역과 다른 차원에서 독립적인 간호사들만의 법이 필요하다고 추진됐다. 이후 시대를 거듭하면서 점점 더 직역 이기주의로 흘러가는 경향을 보였다"고 했다.

같은 해 8월 박찬숙 의원은 '간호법'안을 내놓고 간호사 업무를 의사의 업무 연계선상이 아닌 독자적 영역으로 두고 지위를 강화하겠다고 했다. 간호행위를 의사의 의료행위와 분리하고 '간호진단'을 명시해 간호사 업무 영역을 광범위하게 확대하려고 시도했다는 평가다. '간호기관' 등 간호사의 단독개설 관련 조항도 포함됐다.

복지부가 2007년 내놓은 '의료법전부개정안'에도 이 '간호진단' 용어가 들어가면서 간호사의 유사의료행위를 허용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 개정안은 의료계 등 관련단체가 총파업 투쟁에 나서면서 무산됐다.

이후 지난 2019년 4월 김상희 의원은 '간호조산법'안을 발의하고 간호사가 의사의 처방을 받아서 독자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업무영역을 확장하겠다고 했다. 이를 위해 간호사 업무를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처방 하'에 시행하는 ‘환자 진료에 필요한 업무’로 규정하고 여기에 간호조무사의 지도 내용을 담았다.

같은 시기 김세연 의원이 발의한 '간호법'안은 간호사가 의사의 '지도 하'에 수행할 수 있는 업무영역 확대가 목적이었다.

지난해 3월 서정숙·김민석·최연숙 의원이 각각 발의해 현재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계류 중인 '간호법' 관련 법안도 비슷한 맥락에서 추진됐다.

서 의원이 발의한 '간호법'안도 마찬가지로 간호사 업무영역을 확대하겠다며 간호사의 업무를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지도 하'에 시행하는 환자 진료에 필요한 업무라고 규정했다. 김 의원 발의안은 여기에 ‘간호사 단독개설 확장 대비’ 목적이 추가됐다. 간호조무사와 요양보호사 업무지도도 포함했다.

최 의원이 발의한 '간호·조산법'안은 의료기관뿐 아니라 장기요양기관, 노인복지관, 보건소, 가정 등 지역사회로 확장된 간호사 업무체계 정립을 목표로 잡았다. 이를 위해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의 ‘지도 또는 처방 하'에 시행하는 '환자 진료에 필요한 업무’는 물론 조산사 업무와 요양보호사 업무지도까지 함께 규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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