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을 위한 한국의 의료시스템은?① 원장원 근감소증학회장
“삶의 질 중요…노인의료 바라보는 시각 달라져야”

2020년 전국 시군구 10곳 중 4곳은 이미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현 추세대로라면 2025년 한국 전체가 초고령사회에 들어선다. 2018년 고령사회에 접어든 후 불과 7년만에 초고령사회로 넘어가는 것이다. 일본의 경우 고령사회(1994년)에서 초고령사회(2005년)로 넘어가기 까지 11년이 걸렸음을 고려하면 그야말로 압도적인 속도다. 그럼, 초고령화 사회를 맞닥뜨리는 한국의 의료시스템은 어떤 준비가 필요할까. 관련 학술단체 수장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2020년 건강보험 진료비가 87조원에 육박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65세 이상 노인 진료비는 전년보다 4.6% 증가한 37조4,737억원으로 전체 진료비의 43%를 차지했다. 이는 2019년 35조8,247억원보다 4.6% 증가한 것으로 매년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건강보험 재정에서 노인 진료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커질 수밖에 없다. 지난해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853만7,000명으로 전체의 16.5%를 차지했다. 그러나 이는 2025년에는 그 비율이 20.3%로 늘어나 초고령사회로 전환되고 2036년에는 30.5%에 이를 전망이다.

노인들이 겪는 신체 장애의 주요원인은 노화로 인한 '근감소증'이다. 근감소증은 나이가 들면서 근육량이 감소하는 증상이다. 골다공증과 더불어 낙상에 의한 골절의 주요한 위험요인일 뿐 아니라, 치매, 당뇨병, 심혈관질환을 유발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기자와 만난 대한근감소증학회 원장원 회장(경희대병원 가정의학과)은 초고령화 사회를 앞둔 한국의 의료시스템에서 아쉬운 점으로 각 과 전문의들이 함께 진료하는 형태인 ‘통합진료’와 ‘노인의학 전문의제도’가 정착되지 못한 것을 꼽았다. 원 회장은 최근까지 대한노인병학회 이사장을 역임했다.

원 회장은 “노인의료를 바라보는 국가의 시각도 달라져야 한다”고 했다. 지금까지 만성질환 치료에만 집중해왔는데 이제는 ‘노인증후군’과 노인기능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거다. 또 노인의학 전문의제도를 “시대의 소명”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지난 1일부터 임기를 시작한 대한근감소증학회 원장원 회장은 작년까지 대한노인병학회 이사장을 지내고 경희대병원 어르신진료센터 소장을 맡고 있는 노인의학 전문가다.
지난 1일부터 임기를 시작한 대한근감소증학회 원장원 회장은 작년까지 대한노인병학회 이사장을 지내고 경희대병원 어르신진료센터 소장을 맡고 있는 노인의학 전문가다.

- 앞으로 2년간 근감소증학회를 이끌어가게 됐다. 근감소증이란 용어가 생소하다.

근감소증은 나이가 들면서 근육량이 감소하는 증상이다. 근력이나 보행능력이 같이 떨어졌을 때 근감소증으로 진단하게 된다. WHO에서는 근감소증을 질병으로 규정하고 있고, 국내에서도 질병코드로 등재돼 있다.

노인들이 호소하는 증상의 대부분을 노인증후군이라고 한다. 특정질환이 아닌 노인들이 흔히 호소하는 증상들, 가령 입맛이 없다, 갑자기 잘 못 걷겠다, 정신이 왔다 갔다 한다, 보행장애, 낙상, 섬망, 식욕부진 등이 노인증후군이다.

하지만 노인증후군은 특정질환으로 규정해서 치료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섬망의 경우 정신과에서 약만 처방받고 치료가 잘 안돼 요양시설로 가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노인의 기능상 문제를 찾아서 해결해주는 게 노인의학 전문의가 해야 할 일이다.

- 치료와 돌봄이 필요한 노인환자는 계속 늘어날텐데, 우리나라는 관련 시설이나 인력, 서비스 등이 충분하다고 보나.

수적으로나 인프라 측면에서 봤을 때 시설은 괜찮은 것 같다. 요양시설도 2만개 이상 되고 재가요양시설도 있다. 우리나라처럼 장기요양보험이 있는 나라도 거의 없다. 문제는 시설·서비스가 제공자 중심이라는 데 있다. 노인환자는 요양시설에 들어가서 활동하고 싶어 하지만 시설 운영자 입장에서 입소자 관리가 어려우니까 가급적 누워 있게 한다. 요양병원이 있는 나라도 많지 않은데 우리나라는 이 또한 상당히 잘 돼있다. 물론 시설에 갈 사람들이 요양병원에 와서 의료비를 낭비한다는 지적도 있지만, 요양시설은 의사가 상주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입소자 상황이 나빠졌을 때 대처하기 어려운 반면 요양병원은 나름의 순기능이 있다.

- 노인환자를 통합적으로 관리하고 치료하기 위해선 어떻게 개선돼야 한다고 보나.

모든 노인환자를 통합진료 할 필요는 없다. 만성질환을 세 가지 이상 갖고 있는 사람, 약물을 10개 이상 복용하고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그러나 통합진료는 말이 쉽지 상당히 어려운 문제다. 통합진료의 가장 큰 문제는 수가다. 대학병원에서 세 과가 볼 진료를 한 과가 보는데 진료비를 2만원 받는다면 제대로 통합진료가 되겠나. 협진에 맞게 비용이 지불돼야 한다. 대만에선 초진 시 (한 과에서 진료받을 경우) 1만원이지만, 노인의학 전문의가 포함된 통합진료 시 5만원을 지불하고 있다.

여러 과에서 종합적으로 치료에 관여한다고 했을 때, 각 과 전문의들의 협의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런 협력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또 협의에 참여한 의료진에게 어느 정도 수가가 책정돼야 한다. 그래야 환자를 뺏겼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각 의료진에게 비용이 책정되는 걸 손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통합진료를 함으로써 약물 개수를 줄이고 증상이 개선되고 환자의 만족도가 높아진다는 걸 고려하면, 결코 손해가 아니다. 불편할 수 있지만, 노인환자를 볼 때 내과-가정의학과, 신경과-정신건강의학과 등처럼 협력하는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여기서부터 진정한 통합진료가 실현될 것이다.

- 노인의학 전문의제도 도입을 놓고 대한노인의학회 등과 의견 차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2004년 초부터 노인의학 전문의가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재작년 초에 대한노인병학회에서 노인의학 전문의 관련 세미나도 했지만, 의견 차이보다는 의학회도 충분한 자료와 근거가 있으면 제도 도입을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약 4년 전에 도입하려 했을 때 안 된 것도 결국 준비가 부족했던 탓이다. 각 학회에서 노인의학 세부전문의든 분과전문의든 간에 노인의학 전문의 역할에 대해 똑같은 그림을 갖고 이야기해야 하는데, 이에 대한 합의가 잘 이뤄지지 못했다. 하지만 단순하게 생각하면, 비뇨의학과 전문의가 노인의학적인 것을 더 공부하면 이분들은 노인의학 분과전문의가 되는 거다. (학회 간) 서로 불편해 할 이유가 전혀 없다.

더 큰 문제는 정부가 제도 도입에 드라이브를 걸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노인병학회에서 자체적으로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 15개 시·도에서 만 69세 이상 남녀 400명을 대상으로 미충족 의료수요에 대해 면접조사를 실시한 적이 있다. 이 중 25%만 ‘정기적으로 진료하는 의사가 노인 문제를 많이 이해하고 있다고 여긴다’고 답했다. 환자들도 노인의학 전문의를 원하고 있는데 말이다.

- 차기 정권에 바라는 노인의학 정책이 있다면.

노인의학 전문의가 없는 나라는 거의 없다. 필리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홍콩 등 동남아시아 국가들에도 있다. (노인의학 전문의가 당장 많아질 수는 없지만) 적어도 노인의학 전문의를 교육·수련시킬 수 있는 전문가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노인의학 전문의제도 정착이 필요하다. 이는 시대의 소명이다. 지금까지의 시스템으로는 한계가 있다.

노인증후군 환자가 상당히 많은데 이를 해결해주지 않으면 노인환자들은 대부분 요양병원·시설에 간다. 이를 막는 역할의 중심이 바로 노인의학 전문의다. 최소한 의사들이 노인의학에 대한 제대로 된 경험과 지식을 쌓을 수 있도록 학생 때부터 아니면 전공의 수련과정 동안에 노인의학을 배우게 해야 한다. 또 학회 세미나에서 노인의학 강좌를 필수로 이수해야 한다든지 등의 방식으로 노인의학 교육을 활성화시켜야 한다.

노인의료를 바라보는 국가의 시각도 달라져야 한다. 지금까지 고혈압·신장병·치매 치료에만 집중했는데, 이제는 노인증후군과 노인기능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래도 최근 들어 국가에서도 이에 대해 관심 갖고 있는 것 같다. 제5차 국민건강증진종합계획에 '허약·노쇠 등 보편적 건강관리서비스 체계로 개편해야 하고, 근골격계 질환과 노쇠 관리 서비스 제공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나와 있다.

옛날에는 질병이 없고 오래 사는 게 건강한 것이었는데 지금은 아니다. 질병이 있어도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사는 걸 건강하고 행복한 삶이라고 말한다. 삶의 질이 중요한 가치가 됐다. 세계보건기구(WHO)도 여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 구체적인 학회 운영 계획이 궁금하다.

근감소증학회는 의사, 연구자, 운동전문가, 영양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다학제학회다. 학회로 모습을 갖춘 지는 6년째인데, 여러 분야에서 관심들이 많다. 근감소증 관련 제약회사, 단백질음료 식품회사도 관심 보이고 있고 관련 연구도 많이 하고 있다.

근감소증 예방에는 운동처방사, 운동교육사 역할이 중요하다. 운동도 환자 개인별로 달라야한다. 운동처방사, 운동교육사 교육 프로그램을 봤는데 근감소증에 대한 교육은 없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근감소증학회에서 관련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려고 하고, 그분들이 위원으로 들어와 학술대회도 같이 진행해보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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