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 인력 그대로인데 건수는 10배 늘어
“인력을 기계부속품처럼 갈아넣는 K-방역”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4차 유행으로 검사량도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3월 하루 최대 2만건 정도이던 코로나19 RT-PCR 검사 건수는 현재 20만건으로 늘었다. 15일 0시 기준 누적 검사량은 1,106만456건이다.

1년 6개월 동안 검사량은 10배 이상 증가했지만 인력은 늘지 않았다. “K-방역은 인력 갈아 넣기로 유지된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코로나19 발생 이후 전문의 인력을 충원했다는 곳은 43개소 중 2곳에 불과하다는 조사 결과도 나온 바 있다(관련 기사: K-방역의 씁쓸한 이면…열악한 코로나 검사 인력과 시설들).

그러나 방역 당국은 검사량을 더 확대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은 지난 8일 정례브리핑에서 “5명씩 하고 있는 취합검사와 개별검사 건수를 같이 고려했을 때 50만건 정도까지도 검사가 가능한 상황”이라며 “현재는 하루에 20만건 전후의 검사가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장에서는 현재와 같은 시스템에서 검사량을 더 늘리는 것은 무리라는 하소연이 나온다. 1년 6개월 이상 인력을 총동원해 검사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검사량을 늘리려면 자동화 시스템 도입으로 효율성을 높이고 업무량을 줄여줘야 한다는 지적이다.

대한임상미생물학회 이사장인 김미나 서울아산병원 진단검사의학과 교수는 청년의사와 인터뷰에서 “검사 인력은 늘리지 않고 건수를 늘리는 방법으로 취합검사를 활용하면서 1인당 하루 수천건씩 담당하는 비정상적인 상황이 됐다”며 이같이 말했다.

김 교수는 미국이나 유럽 선진국 대부분 대용량 검사를 위해 자동화 시스템을 도입했다며 우리나라도 하루빨리 자동화장비를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한임상미생물학회 김미나 이사장은 청년의사와 인터뷰에서 코로나19 검사 역량을 확대하려면 자동화 검사 장비 도입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대한임상미생물학회 김미나 이사장은 청년의사와 인터뷰에서 코로나19 검사 역량을 확대하려면 자동화 검사 장비 도입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 선별진료소 검체를 맡는 수탁검사기관들이 특히 업무 부담이 커 보인다.

현재 선별진료소에서 나온 검체들은 대부분 취합검사로 결과를 확인하고 있다. 취합검사는 검체 5개를 섞어서 검사한 후 양성이 나오면 해당 검체에 대한 단독검사를 진행해야 한다. 모든 과정을 사람이 하기 때문에 양성이 나오면 최종 확진까지 시간이 2배로 걸린다. 반면 5명을 검사하는데 드는 비용은 개별 PCR 검사의 4분의 1 정도로 적게 든다. 정부 입장에서는 검사 건수는 늘리고 비용은 줄일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인 셈이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업무 부담이 너무 크다.

취합검사를 할 때 검체 명단이 밀리기라도 하면 문제가 커지기 때문에 여러 차례 확인하고 신경 써야 한다. 그런데 1인당 몇천 건씩을 담당하는 상황에서 문제가 생기지 않을 수 있겠는가.

4차 유행과 함께 선별진료소를 늘리고 검사 건수도 폭증하면서 진단검사의학과 전문의들은 살인적인 판독 업무로 더 이상 버티기 힘든 상황이다. 상대적으로 의사가 많은 서울아산병원도 교수들이 이틀에 한번씩 당직을 서고 있다. 수탁검사기관에 있는 한 전문의를 만났는데 판독과 보고로 밤새 잠을 못자는 일이 다반사라고 하더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비슷한 상황이다.

- 그렇다고 현 상황에서 검사량을 줄이기는 힘들어 보인다. 어떻게 해야 하나.

검사 인력은 늘리지 않고 건수를 늘리는 방법으로 취합검사를 활용하면서 1인당 하루 수천건씩 담당하는 비정상적인 상황이 됐다. 이는 K-방역에서 진단검사 건수를 늘리는 주역인 취합검사를 인력은 늘리지 않고 사용했기 때문이다. 검사 인력을 기계 부속품처럼 갈아 넣고 있다. 세계 경제 규모 10위, IT·BT 강국이라는 대한민국에서 자동화 장비가 할 일을 사람 손으로 메우고 있다.

방역 당국에서는 하루 50만건까지 할 수 있다고 하는데 현 상황에서 어떻게 50만건을 하느냐. 인력이 부족해서 검체 채취에도 한계가 있다. 정부도 하루 50만건 검사는 검체 채취부터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 현재로서 가장 시급한 게 자동화 검사 장비 도입인가.

자동화 검사 장비는 핵산 추출과 유전자 증폭, 검사, 결과 분석 등 모든 과정을 한 번에 전자동으로 처리한다. 보통 검체 300개를 한꺼번에 처리하는데 8시간 정도 걸린다. 그 시간 동안 의료 인력은 다른 일을 할 수 있고 그만큼 여유가 생기는 셈이다. 자동화 검사 장비를 24시간 운영하면 의료 인력은 8시간마다 한 번씩 확인하면 된다. 지금도 검사를 24시간 하고 있지만 그 시간 모두 사람으로 메우고 있다. 특히 수탁검사기관의 경우 검체가 오후 늦게야 오기 때문에 밤새 검사해서 아침에 결과를 보고해야 한다. 자동화 검사 장비를 도입하면 밤에 잠은 잘 수 있지 않겠는가.

- 자동화 검사 장비는 왜 도입하지 못하는 것인가.

서울아산병원은 지난해 말 로슈진단의 코로나19 자동화 검사 장비를 들여왔다. 그런데 이 장비에 사용할 수 있는 시약은 올해 4월에야 승인됐다. 긴급사용승인제도를 도입해 진단키트를 신속하게 사용할 수 있었지만 정식 허가 제품이 나오면 긴급사용승인이 종료된다. 후발 주자들은 정식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보통 1년 이상 걸린다.

비용 문제도 있다. 저비용으로 건수를 늘릴 수 있는 취합검사가 있는데 정부 입장에서는 더 비싼 자동화 검사를 도입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수가도 걸림돌이다. 수가가 너무 낮게 책정돼 병원 입장에서는 검사를 할수록 손해를 보게 되는 경우가 흔하다. 신속 PCR 검사가 대표적이다. Cepheid사의 ‘Xpert® Xpress SARS-CoV-2’는 그나마 손해는 보지 않지만 비오메리으(bioMérieux)의 ‘BioFire® Respiratory Panel 2.1’(BioFire RP 2.1)는 하면 할수록 적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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