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대병원 김신우 교수, MSM 대상 급여기준 확대 필요성 강조

"트루바다 예방요법은 HIV 신규 감염을 줄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현재 정부는 HIV 감염인의 성관계 파트너에게만 트루바다를 급여 지원하고 있는데 이는 실효성이 없다."

경북대학교병원 알레르기감염내과 김신우 교수는 정부가 HIV 신규 감염 관리를 위해 지원하고 있는 현행 트루바다(성분명 테노포비르 디소프록실/엠트리시타빈)의 노출 전 예방요법(Pre-Exposure Prophylaxis, PrEP) 보험기준에 대해 이같이 평가했다.

김신우 교수는 "HIV 감염인으로 확인됐다는 것은 치료 대상자라는 것이고, 치료를 받게 되면 감염력이 없기 때문이다. '미검출=감염불가(Undetectable = Untransmissible)'는 글로벌 HIV 관리의 정석이다. U=U를 주장하면서 PrEP의 대상을 HIV 감염인의 성관계 파트너로 한정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다. 이는 의학의 관점에서 볼 때 과학적인 정책 결정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2019년 6월 정부가 글로벌 표준에 따라 트루바다 PrEP 요법에 급여 지원을 시작했지만, 이처럼 임상 현장에선 '감염인의 성관계 파트너'에 제한한 급여 기준은 본래 취지와는 달리 실효성을 떨어뜨리는 가장 큰 요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에 대구경북 지역의 HIV 감염인 600여명 이상을 치료 관리하고 있는 감염병 전문의 김신우 교수를 만나 국내 HIV 감염 관리상의 문제점과 개선 방향 등에 대해 들었다.

경북대학교병원 알레르기감염내과 김신우 교수
경북대학교병원 알레르기감염내과 김신우 교수

-우리나라의 신규 HIV 감염 현황이 궁금하다.

1년에 1,000명 이상의 신규 HIV 감염인이 발생하고 있다. 질병관리청이 2020년 7월이 발표한 보도자료에 따르면, 2019년에 한 해 동안 1,222명의 신규 감염인이 발생했는데 남성이 1,111명(90.9%), 여성이 111명(9.1%) 이었다. 비율로는 9대 1 정도로, 남성 감염인이 많이 발생하고 있다.

최근에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보건소 이용이 많이 제한되면서, 2020년 HIV 신규 감염인 수는 줄어들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실질적으로 감염이 감소했다기보다는 진단 감소에 따른 영향일 가능성이 크다. 때문에 숨은 감염이 더 늘어날 위험이 있다. 숨은 감염이 늘어나면 전체 감염 인구는 증가할 수 있다. 다시 말해 2020년, 2021년에 일시적으로 통계상 신규 감염인 수가 적게 확인된다 하더라도, 전체적인 감염이 실제 감소했다고 봐서는 안된다.

장기적으로 한국은 신규 감염인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OECD 국가 가운데서는 한국과 칠레 정도만이 증가세를 보인다. 나머지 국가들은 감소세다. 다른 국가들이 감소세로 돌아선 것에는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노출 전 예방요법(PrEP)의 활용도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신규 HIV 감염인을 줄이기 위해서는 어떤 조치가 필요한가.

그와 관련해 한국은 HIV 감염 관리에 세 가지 과제를 안고 있다. 첫 번째는 '노출 전 예방요법(PrEP)'이다. PrEP은 신규 감염을 줄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우리나라는 PrEP을 활용하는 데 소극적인 편이다. PrEP에 대한 건강보험 급여 기준도 제한적이다. 두 번째는 진단 검사의 문제다. 질환에 대한 소위 '낙인효과(Stigma Effect)', 즉 사회적 차별로 인해 HIV가 의심돼도 진단 검사를 잘 받지 않는 경향이 있다. 세 번째가 적극적인 치료를 통한 감염 확산 방지다. '치료를 통한 예방(Treatment As Prevention)'이라고도 하는데, 더 이상의 감염이 확산되지 않도록 HIV 감염인을 조속히 치료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세 번째 '치료' 부문은 잘 돼 가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그럼 나머지 부분에서의 문제로 감염인이 증가하는 추세라고 이해하면 되나.

그렇다. 먼저 질환에 대한 사회적 차별(Stigma)부터 얘기해 보자면, 질환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진단에 대한 두려움을 만들어 낸다. 이 두려움이 다음 감염인들을 만든다. 적극적으로 진단을 받기 보다 '설마 내가', '아니겠지'하는 마음으로 감염된 상태에서 계속 지내다가 HIV를 전파하게 돼 버리는 것이다. HIV에 대한 사회적 낙인을 없애서 감염 위험군이 진단을 빨리 받도록 하고, 진단받은 감염인은 빨리 치료해서 전파력을 없애 버려야 한다. 코로나19 상황과 마찬가지다. 환자를 신속하게 찾아내고 적극적으로 치료해야 추가 감염을 막을 수 있다. 본인이 감염된 사실을 알지 못한 채로 지내게 되면 스스로도 피해자가 되지만 또 동시에 가해자가 되어버리는 것이 감염병의 특징이다. HIV도 본인이 모르는 상태에서 가해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해서 감염이 될 위험이 있는 사람들이 서로 성관계를 맺지 못하도록 할 수는 없다. 학교 폭력을 없애기 위해 학교 자체를 없애 버리는 것이 불가능한 것과 마찬가지다.

어떻게 하면, 감염이 될 위험이 있는 사람들의 안전을 도모하여 피해자를 줄이느냐가 과제다. 이는 PrEP의 활성화와 관련한 문제다. 피임약을 '임신'이 될 위험, 그로 인한 피해가 예상될 때 복용하듯이 감염이 예상되면 PrEP 요법을 통해 감염의 위험을 줄이거나 최소화할 수 있다. PrEP 요법은 복용을 철저히 하면 확실한 예방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이런 임상적 효과가 있는 데 필요한 사람들이 PrEP 요법의 존재를 잘 모르고, PrEP 요법에 대해 건강보험이 지원되지 않는 등 현실적으로 뒷받침이 되지 않는다고 하면 곤란하지 않겠나.

미국이나 프랑스 등 PrEP 요법이 활성화된 국가들은 이를 통해 HIV 감염 확산을 저지하는 데 효과를 봤다. PrEP 요법에 대한 건강보험 지원은 국민을 위해서 재원을 쓰는 것이다. 국가예방접종사업(NIP) 등을 통해 국가가 나서 예방을 위해 비용을 쓰는 정책도 이미 존재한다. HIV의 경우에도 정책적으로 HIV 감염을 줄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지금 상황을 그대로 두고 '알아서 줄어들겠지'하고 마냥 뒷짐을 지고 있는 현실은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현행 PrEP 요법의 급여 기준에는 어떤 문제가 있고, 어떻게 개선돼야 하나.

국제적인 가이드라인에서 PrEP 요법으로 제일 신뢰가 쌓여 있는 약은 '트루바다'이고, 우리 임상현장에서도 트루바다를 표준으로 쓰고 있다. 현재 트루바다 PrEP 요법의 한 달 기준 비보험 투약 비용은 40만원 정도이다. 이같은 치료 비용은 PrEP 요법 활성화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HIV 관련 정책보고서 등에서는 모두 PrEP 요법의 필요성을 이미 인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국내에서 PrEP 요법이 아직 활성화되지 않은 것은 재정적인 한계 때문이라고 보여진다.

현재 트루바다는 'HIV 감염인의 성관계 파트너'에게만 건강보험급여가 지원되는데, 실효성이 없다. HIV 감염인으로 확인되면 치료 대상자들이고, 치료를 받게 되면 감염력이 없다. '미검출=감염불가(Undetectable = Untransmissible)'라고 해서 치료 현장에서는 일명 'U=U'라고 부르고 있는데, 이것이 현재 글로벌 HIV 관리의 정석이다. U=U를 주장하면서 트루바다 PrEP 요법의 대상을 HIV 감염인의 성관계 파트너로 한정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는다.

치료를 받아서 바이러스가 검출되지 않는 사람의 주변인보다, 현재 진단을 받지 않은 '숨은' 감염인으로부터 감염될 위험이 있는 사람이 PrEP의 대상자라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그러한 사람들에게 PrEP 요법을 제공해야 예방 효과를 볼 수 있다. 현재는 건강보험을 통해 PrEP 요법을 쓸 수 있는 대상자가 매우 소수다. 이는 의학의 관점에서 바라볼 때 과학적인 정책 결정이 아닌 것이다.

현재 한국은 9대 1의 비율로 남성 신규 감염인이 많다. 남성 동성애자 커뮤니티에서 감염인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해외 국가들에서는, 특히 아시아 국가들 가운데는 대만이 동성애자 커뮤니티를 대상으로 PrEP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기도 하다. 글로벌 가이드라인에서는 이성애자라고 하더라도 성관계가 활발한 사람들, 약물 주사를 쓰는 사람들까지도 PrEP을 권고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그 모두에게 PrEP을 지원하기보다도 현재의 급여 기준을 MSM(Men who have sex with men) 그룹을 대상으로 넓히는 것이 필요할 것으로 본다. 다만 MSM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문제다. 실제로 지금 급여 기준대로 HIV 감염인의 파트너라는 사실도 명확하게 입증을 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다. 하지만 급여 기준을 MSM 그룹으로 제시한다면, PrEP이 좀 더 활성화될 수 있도록 공식적으로 물꼬를 트는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한다.

-보험 당국의 입장에서는 PrEP 요법 활성화를 지원하기 위해선 PrEP 요법이 필요한 대상자들이 어느 정도 규모인지 예측이 돼야 소요 재정을 산출하고 재정 지원을 결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MSM 인구 수 등은 임상현장에서도 궁금한 정보이지만, (성적 지향은) 통계 조사에 솔직하게 답변하기가 어려운 민감정보인 것이 사실이다. 국내에서도 '전체 인구의 1%가 동성애자일 것이다' 정도로 추정하는 연구도 있는 것으로 안다. 다만, 몇 퍼센트인지 정확하게 제시하는 데이터는 보지 못했다. 의학은 개인의 결정에 대해 판단을 내리지 않는다. 분명한 것은 감염에 취약한 그룹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임상에서 해야 할 일은 대상자에게 '감염인이 될 수도 있다'는 위험성을 알리고, 그 위험을 줄이는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다. 위험을 줄이는 방법이 있음에도 제공하지 못하는 것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 밖에도 HIV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바꾸는 일도 중요해 보인다.

우리 사회의 문화, 대중의 인식이 변하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오랜 시간이 걸리리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에 비해서는 HIV에 대한 인식이 개선됐다고 본다. HIV 진단을 받고 극단적인 선택을 한 환자의 사례를 기억한다. 부부 중 일방이 감염돼 이혼한 사례들도 봐왔다. 요즘은 그렇지 않다. HIV 감염인의 자살률도 많이 줄어들었고, HIV 감염인을 포용하는 가족들도 많아졌다. 10~20년을 되돌아보면 그러한 변화들이 있었지만 아직까지 잘못된 인식들이 많다. '네가 잘못해서', '문란해서' 감염이 되었다든지 하는 생각들이다. 환자에 대한 도덕적 판단은 치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의사는 환자를 도덕적으로 판단하는 위치가 아니다. 임상에서는 환자의 예후를 개선하는 일에, 감염의 확산을 막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최근에는 환자 보호자들에게 '담배가 오히려 더 위험합니다'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담배는 폐기종, 폐암 같은 많은 합병증들을 만들어내지만 HIV는 약만 잘 복용하면 아무 문제없이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대중들이 HIV 감염인을 위험하다고 보는 데는 자기 보호본능이 반영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에게 감염시킬 위험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같이 있어도 되나?', '같이 음식을 먹어도 되나' 하는 질문들을 자주 하는 것 같다. 임상 현장에서 'U=U'를 강조하는 이유도 감염인들이 대중에게 위험한 존재가 아니라고 알리기 위해서다. 감염인들은 피해자들이기도 하고, 또 동시에 치료받아야 되는 대상들이다. 이 점을 대중들에게 더 각인시켜야 한다. 대중들이 감염인에 대해 '이 사람들은 감염력이 없다', '치료가 잘되고 있다면 이 사람들은 문제가 없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게 중요할 것 같다.

-마지막으로 HIV의 관리∙예방∙치료가 더 나아질 수 있도록 정부에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첫 번째는 PrEP 요법의 활성화다. 실질적으로 감염인의 성관계 파트너보다도, 감염의 위험이 많은 MSM 그룹을 대상으로 공식적으로 건강보험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급여 기준의 개선이 필요하다. 지금 당장 현실화하기는 어렵다 하더라도, 장기적으로 그러한 방향으로 가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보험 재정 투입의 득과 실을 비교해 보면, 치료에 재정을 투입하는 것 보다 예방에 비용을 쓰는 것이 훨씬 장점이 많을 것이다.

두 번째는 감염 위험 대상자들의 진단 접근성을 높이는 것이다. 현재 공급되고 있는 진단 키트에 대한 가격을 낮춰서 더 많은 대상자들이 진단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현재 보건소에서 익명 HIV 검사를 제공하기도 하는데, 본인이 원하면 진단 키트를 통해 스스로 검사를 할 수 있는 방법도 있다. 진단 시약은 정확도도 매우 높다. 98~99% 가량으로 알고 있다. 다만 가격이 비싸다. 약국이나 온라인스토어에서 구입할 수 있는 HIV 진단 시약은 4만원 가량이다. 임신진단 키트가 몇 천원밖에 하지 않는 것과 비교하면 상당한 고가다. 또, 온라인이나 약국에서 구입하는 과정에서 다른 사람과 접촉하는 것도 대상자에게는 부담일 수 있다. 약국에서 약사를 만나야 하거나, 온라인으로 배송 받는 과정에서 본인의 이름이 드러날 수 있다고 하면 진단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보다 편한 방법으로 진단을 받고 진단을 받고 나면 보건소나 의료기관을 방문할 수 있게끔 진단의 접근성을 향상해야 한다. 가령 자판기에서 진단 시약을 구입할 수 있게 한다든지, 이러한 형태로 접근성을 높이는 것도 방법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세 번째는, 빠른 치료다. 최근에 많이 강조하고 있다. 'Same-day treatment'라고 해서 진단 받은 즉시 치료를 시작하는 것을 말한다. 과거 HIV/AIDS 치료약의 부작용이 많던 시절에는 CD4 수치 등을 보아 환자의 면역력이 약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치료를 개시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치료제가 많이 개선됐다. 감염인이 어차피 평생 복용해야 할 치료제인데 복용할 준비가 되고 나면 치료를 시작하겠다는 생각을 할 지 모르겠으나, 약을 먹을 때까지 기다리는 그 2주 동안에도 새로운 감염인이 생겨날 위험이 있다. 그러니 감염인으로 진단되면 쾌속으로 치료에 돌입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치료가 곧 예방이다. 진단되면 감염인을 바로 치료로 연계하고, 당일에 약을 처방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의료인력뿐만 아니라 사회복지사들의 역할도 중요하다. 상담과 의료서비스를 연계해서 빠른 치료가 이루어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코로나19도 환자가 발생하면 그 즉시 격리하지 않나. 격리할 때까지 3일이나 1주일 정도 기다리라고는 얘기하지 않는다. 그래야 주변 사람들을 보호할 수 있으니까. HIV도 마찬가지다. 감염인을 내버려두고 준비가 됐을 때 치료하는 식으로 접근해선 안되고, 진단되는 즉시 치료해야 한다. 그래야 합병증도 줄어들고, 감염 전파도 막을 수 있고, 예후도 줄일 수 있다.

이렇게 PrEP을 활성화하고 진단의 장벽을 낮추고, 치료를 빠르게 시작할 수 있게 만드는 것, 이를 중심으로 치료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 그래야 1000명대 가까이 발생하는 신규 감염인 숫자를 줄일 수 있다. 지금 상태를 방치하면 증가세가 유지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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