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희찬 신경과장 "코호트격리 지정이 상황 악화시켜"
“지원 발표 이후 의료진 표정 살아나…지원 자체가 위안”
"요양병원, 내부확산 막을 능력 없어…인력·재정 투입해 환자 이송해야"

“청원을 올린 그날까지도 사태가 나아질 기미가 없어서 모두가 희망을 잃은 상황이었습니다.”

코호트 격리 기간 동안 끊임없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사투를 벌여야했던 미소들요양병원 신경과 최희찬 과장은 당시 현장의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최 과장은 지난 27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코호트격리된 미소들요양병원의 실상을 전달하고 방역당국의 개입을 호소하는 국민청원을 올렸다. 이후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방역당국은 30일 코로나19 브리핑을 통해 인력 지원 및 양성 환자 전원 이송을 약속했다.

미소들요양병원 의료인이 청와대 게시판에 올린 국민청원 내용.
미소들요양병원 의료인이 청와대 게시판에 올린 국민청원 내용.

첫 환자 발생 이후 16일째인 30일 기준 미소들요양병원에서 발생한 코로나19 확진자는 총 180명으로, 이 중 7명이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해 코호트격리 과정에서 숨졌다.

또 코호트격리 지정 이후 상태가 위급한 중증환자를 받아 주는 곳이 없어 8명의 음성 환자가 사망했다. 코로나19에 감염되는 간호 인력 또한 속속 발생해 수간호사 등 총 9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방역당국 발표 이후 미소들요양병원 환자 수용을 꺼리던 전담병원들이 병상을 내어주면서 미소들요양병원 내 코로나19 환자는 30일 저녁 7시 기준 15명만이 남게 됐다. 이날 오전 총 37명의 환자가 병원에 남아있었지만 일산병원, 순천향대천안병원, 평택 박애병원 등 감염병전담병원으로 이송됐다. 남은 15명 환자들 또한 모두 전원될 예정이다.

미소들요양병원은 이날 환자와 직원들을 대상으로 8차 전수 검사를 진행했다. 코로나19 환자의 전원을 통해 공간이 확보되면서 현재는 1인 1실에 가깝게 배치된 것으로 알려졌다. 병원 측은 추가 확진 인원이 10명을 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추가 사망자 또한 더 이상 없을 것으로 전망했다.

최 과장은 “대부분의 의료진이 병원에서 숙식을 해결해야 했고 의사들은 진료 외에도 보호자들의 문의나 민원을 감당해야 했다. 간호사들은 상황이 심할 경우 최대 48시간까지 근무를 해야 해 피로도가 극에 달했다”며 “아마 방역당국의 지원 발표가 2~3일만 늦었어도 의료진과 간호 인력 모두 번아웃돼 의료시스템이 붕괴됐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다행히 정부의 지원 후 현장 분위기는 고무적이다. 국민 청원과 공론화 이후 많은 보도가 이뤄지고 이후 방역당국이 나서면서 의료진의 표정이 조금씩 살아나고 있다. 간호사들은 2교대를 하고 있고 의사들의 피로도도 감소할 것으로 기대한다”며 “무엇보다도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위안이 되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의료계 안팎에선 방역당국의 확진자 발생 초기 동일집단격리(코호트격리) 결정이 미소들요양병원에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을 낳고 말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코호트 지정 이후 양성 판정을 받은 환자와 그렇지 않은 환자가 같은 시설 내 상주하게 되면서 요양병원 내 코로나19 확산이 걷잡을 수 없이 진행됐기 때문이다.

현재는 비확진자 92명이 병원에 남아 치료를 받고 있다. 모두 고령에 기저질환이 있어 집으로 돌려보내는 것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또 확진자 발생 이후 병원을 나섰던 기존 환자들이 다시 병원으로 돌아오려 하지만 이를 선뜻 수용할 수도 없다. 간호 인력이 부족해 이를 감당할 여력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요양병원과 함께 위치한 요양원의 경우, 상황은 더욱 열악하다.

최 과장은 양성 환자를 바로 전담병원으로 이송해주지 않는 한 요양병원이 자체적으로 확산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코호트 격리는 잘못된 방향이었던 것 같다. 병상 확보를 통해 발생 초기에 양성 판정 환자들을 빠르게 이송했더라면 20명 수준에 그칠 수 있었다"며 “요양병원은 음성 환자를 위한 방역과 코로나19 환자 치료를 모두 감당할 여력이 되지 않는다. 음압 병실과 같은 시설적인 측면을 제외하면 클린존 및 오염존 구분, 병상 배치 등 모든 방역 가이드라인을 준수했지만 확산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고 회고했다.

이어 “요양병원에 코호트 격리는 사실상 다 죽으라는 거나 다름없다”며 “양성 판정 환자가 이송되지 않으면, 음성 환자와 양성 환자가 몇 시간이고 같이 공간에 지내게 될 수밖에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요양 병원 특성상 공동 생활공간이 많아 아무리 주의를 시켜도 환자 간 교류를 막을 수 없다는 지적이다.

그는 “밥을 먹이고 씻기고 닦이고 하는 사이 환자 간 전염이 이뤄진다”고 말했다.

미소들요양병원 전경.

방역당국이 미소들요양병원에 약속한 지원 인력은 총 34명이다. 대부분 간호조무사로, 투입 첫날인 29일 두 명, 30일 네 명 등 순차적으로 인력이 투입되고 있다. 주로 음성 환자가 있는 병상(클린존)에 배치되고 있다.

현장에서는 간호사나 간병인 등 기존 인력들이 돌아오기 전까지 해당 인원들이 공백을 최소화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요양병원의 특성상 진료 외에도 간병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 만큼 간병사들이 들어와야 본격적인 정상화가 가능하다.

현재 방역당국은 간병사 또한 자원을 받아서 현장에 지원해주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병원은 아직 구체적은인 계획을 전달 받진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소들요양병원 측은 양성 환자가 모두 이송되면 기존의 간호사들과 간병사들이 돌아올 수 있도록 설득한다는 방침이다. 발생 초기 환자들과 접촉한 간병사들의 경우 자가격리 기간이 끝났으며, 야간 당직 의사 두 명이 31일부터 근무를 시작했다.

그는 확산 초기에 정부의 빠른 지원과 효율적인 의사결정이 있었다면 사태가 심각해지는 것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또 방역당국의 소통 부재도 문제로 지적했다.

그는 "사태가 공론화되기 전까지 방역당국은 의료진 측에 가이드라인을 전달하는 데 그쳤을 뿐 그외 사안에 대해서는 보건소 직원, 중대본 직원 등과 메신저를 통해 연락을 주고받아야 했다"고 밝혔다. 확산이 발생한 집단 시설에 방역당국이 연락책을 파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일종의 재난 상황이기 때문에 초반에 코호트 격리를 할 게 아니라 연락관이 파견돼 현장에 상주하면서 방역당국과 현장을 연결해줄 필요가 있다는 것.

그는 향후 발생할 수 있는 또다른 요양병원 내 코로나19 집단 확산도 우려했다.

그는 “미소들요양병원이 요양병원 중에서 규모나 시스템 면에서나 작은 곳이 아닐 뿐더러, 독립된 건물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170명이라는 환자가 발생했다. 전국에 요양병원만 1,400곳 가까이 있는데 이번 집단 발생과 같은 상황은 어디에서나 발생할 수 있다. 앞으로 더 많은 '일본 유람선'이 생길 수 있다”며 “정부가 더 강한 결단을 내려야 한다. 재정 및 인력을 투입해 병상을 확보하고 환자를 이송해 '일본 유람선'의 정상화를 도와야 할 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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