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강현석 美 UCSF 혈액종양내과 교수
의료인력 분포의 불균형, 무엇이 진짜 문제인가

최근 우리 정부의 의료정책에 대해, 한국을 떠나 미국으로 간 지 오래된 어느 의사가 ‘너무 답답하다’며 청년의사에 칼럼을 보내왔다. 글을 쓴 강현석 교수는 연세의대 출신으로, 컬럼비아대학교 부속병원에서 내과 수련을 마치고, 존스홉킨스대 종양내과 교수를 거쳐 현재는 캘리포니아대 샌프란시스코 의과대학(UCSF) 혈액종양내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최근 출간된 <한국의사 미국가기(2020, 청년의사)>의 공저자 중 한 명이다.

의대를 갓 졸업한 후, 의사로서 내 첫 직장은 경상북도 울릉군 보건의료원이었다. 울릉군 보건의료원은 당시 1 만명 정도 인구를 가진 울릉군 유일의 의료기관이었는데, 의사 인력은 전적으로 공중보건의사에 의존하고 있었다. 나름 종합병원 구색은 갖추고 있어서, 내과, 일반외과, 소아청소년과, 산부인과, 정형외과, 영상의학과, 마취과, 안과, 치과, 응급실 등의 진료과들이 있었고, 20병상 정도의 입원실도 운영하고 있었다.

그곳에서의 일상은 매우 평온했다. 내과 외래는 꽤 바쁜 편이었지만, 다른 진료과들은 매우 한산한 편이었고, 입원실도 다섯 병상을 넘게 채우는 날이 드물었다. 전담 간호인력은 병실을 세 명이 2교대로 근무했고, 수술실 전담 간호사 한 분이 계셨다. 다른 과들은 시니어 간호사들과 간호조무사들이 담당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강현석 미국 USCF 혈액종양내과 교수
강현석 미국 USCF 혈액종양내과 교수

나는 세 명의 응급실 당직의 중 하나였다. 3일에 한 번 24시간씩 일을 했고, 낮에는 응급실 업무 이외에 건강검진 관련 문진 업무를 겸했는데도 불구하고 업무 강도는 매우 낮은 편이었다. 심지어 응급실에는 전담 간호사도 없어서, 일이 있을 때마다 병실 간호사가 내려와서 도와주는 형식이었다.

응급실 당직의 셋을 제외한 다른 공중보건의사들은 모두 전공의 수련을 마치고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신 분들이었고, 매우 헌신적이고 훌륭한 분들이었다. 우리의 관사는 병원 바로 옆에 있었고, 덕분에 필요한 상황에는 언제든 전문의 선생님들을 병원으로 불러낼 수 있었다. 형식적으로만 보면 각 과 전문의들이 병원 근처에 상주하고 있는, 모범적인 지역 의료의 표본이었지만, 정작 문제는 병원의 다른 부분이었다.

임상병리사와 방사선사는 정원이 2 명이었으나 1명씩밖에 없었고, 따라서 야간에 피검사나 영상검사를 하기 위해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노력이 필요했다. 이들을 부르는 게 너무나 큰 스트레스여서, 나중에는 내가 병리 기계를 돌리는 법과 흉부 방사선 사진 찍는 방법을 배워서 직접 하기도 했다. 약사는 한 명 뿐인 정원도 채우지 못했고, 간호사 정원도 다 채우지 못해 간호사들도 불만이 많았다. 수술실도 열악하기는 마찬가지여서, 한 대밖에 없는 마취기계가 고장 나면 수술 자체를 할 수가 없었고, 혈액 은행이 없어서 수혈이 필요한 외상 환자가 오면 인근 군부대에 전화해서 혈액형이 같은 군인들을 호출해서 바로 전혈을 뽑아서 수혈하는 일이 일상이었다.

우리는 그러한 환경에서도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했지만, 주민들은 울릉군 보건의료원 자체를 불신했고, 많은 경우 우리의 능력에 의문을 표했다. 간 및 비장 파열, 혈흉 등의 복합 외상 환자를 살려내는 보람도 있었지만, 사소한 일에 시비 걸리고, 멱살 잡히고, 주취자들의 폭언과 폭행에 시달리는 게 일상이었다. 1980년대에 생산된 구닥다리 CT의 열악한 영상을 들여다 보며 뭐가 문제인지 찾아내려고 노력했지만, 그러다 뭔가 놓치면 돌팔이가 되기 십상이었다.

물론 울릉도가 오지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나름 생활의 기반은 갖추어져 있고 특유의 매력도 있어서, 여기서 살아볼까 생각하는 의사가 나올 법도 한 곳이었다. 실제로 울릉군 내에 유일한 치과의원 원장님은 10여 년 전 공중보건의사로 복무한 이후 정착한 분이었다. 그곳에 개원을 하려고 했던 분이 없던 것도 아니어서, 내가 근무를 시작하기 직전까지 그곳에 의원 한 곳이 있었다고 들었다. 하지만 이전에 개업하셨던 분들은 몇 년을 버티지 못하고 육지로 나가셨다. 상주 인구가 1만명밖에 안 되는 작은 시장에, 공공 보건의료원까지 있으니, 한 명의 개원의가 버티기도 쉽지는 않은 상황이었을 것이다.

오지에 건물 하나 지어 놓고 의사 하나 밀어 넣는다고 무의촌이 해소되지는 않는다. 물론 공중보건의사제도가 처음 생겼던 1980년대에는 그게 의미가 있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전국 어디에서도 서울까지 반나절이면 닿는 2020년의 세상에서 강제로 의사를 지역에 할당하는 방식이 얼마나 의미가 있을까? 그리고 2020년의 의료는 1960년대의 의료와 달라서 의사 혼자의 원맨쇼도 아니다. 대형병원은, 그 수요를 뒷받침할 수 있는 시장이 있고, 거기서 일할 수 있는 인력풀이 풍부한 곳에서 생긴다. 1990년대 초에도 지역 의료를 살리겠다며 대거 미니 의대 설립을 허락했던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당시 지방에 대학 부속병원을 짓겠다고 약속했던 곳들 중에, 제대로 약속을 지킨 곳은 몇 곳 없는 것으로 기억한다.

2020년 한국 의료체계의 문제는, 의료 인력의 양성이 아니라 양성한 의료 인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게 아닐까 싶다. 애써 수련 과정을 거친 전문의들이, 자신의 전문 분야를 살리지 못하고 개원가에서 비보험 진료를 하게끔 만든 게 무엇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하다못해 그 분들이 개방병원이라도 이용해서 자기 전공을 살릴 수 있게 해 주었다면, 지금 이렇게까지 (특정 과의) 의료 인력이 부족하다고 아우성을 치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정말 지역 사회의 의료를 살리고 싶다면, 지금의 공공병원들에게라도 독립채산제라는 허울 아래 수익성을 강요하지 말고 파격적인 지원을 해주는 게 공공의대 세우는 것보다 100배는 효과적일 거라고 생각한다.

강현석 (미국 USCF 혈액종양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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