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대병원 감염병전문병원 구축에 28억2200만원 집행…실제 집행 이뤄지지 않아
중앙감염병전문병원 NMC, 원지동 이전 문제로 몸살…현대화 사업예산 80% 넘게 깎여

지난 2015년 메르스(MERS)로 홍역을 치른 정부가 신종 감염병 대응과 확산방지를 위해 추진했던 감염병전문병원 건립이 5년째 제자리걸음만 걷고 있다.

백신과 치료제가 없는 신종 감염병의 경우 환자를 격리해 전파를 차단하는 게 유일한 대응방안으로 꼽히면서 감염병 확산에 대비한 감염병전문병원의 필요성이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으나 5년이 지난 지금까지 첫 삽도 뜨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메르스를 겪으면서 제기됐던 전문인력 부재·전문시설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16년 ‘국가방역체계 개편방안’을 발표하고, 중앙 감염병전문병원과 권역별 3~5곳을 감염병전문병원으로 지정해 운영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이어 2017년 대선공약과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 감염병전문병원 설치를 포함시켰던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본 궤도에 오르는 듯 보였다.

하지만 사업추진 과정에서 난항을 겪고 있다. 대규모 감염병전문병원을 건립한 경험 부족과 부지 선정문제, 예산삭감 등 때문이다.

권역별 감염병전문병원, 어떻게 디자인 됐나

정부가 감염병전문병원 건립을 위해 지난 2015년 9월부터 2016년 4월까지 실시한 감염병전문병원 설립방안에 대한 연구용역(충남의대 이석구 교수)을 살펴보면 국립대병원 등 공공의료기관을 중심으로 ‘권역별 전문치료병원’을 5개소 내외로 지정토록 했다.

연구진은 ▲고도위험·중증환자 치료(집단 발병환자) ▲외래진료 및 권역 내 감염병 대응 교육 등을 담당하는 50병상(중환자실 8병상·일반병실 40병상·외래 2병상) 규모의 감염병전문병원 설립에 개소 당 450억원을 투입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2017년 정부가 마련한 ‘권역 감염병 전문병원 사업안내서’에는 3개 권역(중부·영남·호남) 소재 종합병원 또는 상급종합병원을 대상으로, 36병상(중환자실 6병상·음압병실 30병상) 기준으로 축소됐다.

권역 감염병전문병원 설립 시 정부가 설계비 13억원, 공사 및 감리비 284억원 등 총 298억4,400만원을 지원키로 했으며, 기본적으로 모병원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독립된 별동을 구축하도록 했다.

구체적으로 ▲일반 음압격리병상 30병상(국가지정입원치료병상 포함) ▲중환자 음압격리병상 6병상 ▲폐기물처리실 등 필수지원시설 ▲음압 수술실 2개실 ▲임상검사실(검체보관실 및 미생물검사실(BL3급) 등을 운영하도록 했다.

이외에 물품 공급 및 오염물 하역장을 포함한 감염병동 운영을 위한 행정처리 부서, 감염병교육훈련센터, 위기 시 활용 가능한 의료진 숙소 등은 의료기관 자체 부담으로 확보하도록 했다.

이 과정에서 2017년 2월 국립중앙의료원이 중앙 감염병전문병원으로 지정됐고, 8월에는 조선대병원이 호남권 감염병전문병원으로 선정됐다.

감염병전문병원, 제자리걸음 이유는?

하지만 감염병전문병원은 현재 답보상태에 머물러 있다. 국회 예산 심의 과정에서 모든 권역을 대상으로 동시에 사업비를 투입하기 어렵다는 지적에 따라 호남권 1개 권역에만 우선적으로 전문병원을 설치하기로 하면서 다른 권역은 아직 논의조차 되고 있지 않다.

호남권역인 조선대병원의 경우 2018년 권역 감염병전문병원 구축사업에 28억2,200만원이 전액 집행됐으나 여전히 실제 집행으로는 이어지지 않고 있다. 음악격리병상을 30병상 가량 구축해야 하는 대규모 건립에 설계와 착공 등이 지연된 탓이다. 조선대병원은 오는 2023년 개원을 목표로 준비하고 있다.

국립중앙의료원은 중앙 감염병전문병원 등 현대화 사업을 수행하기 위해 선결돼야 하는 서초구 원지동 이전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서초구 원지동에 중앙 감염병전문병원 건립을 반대하는 지역 주민과 마찰로 지난 2018년이 돼서야 사업계획 적정성 검토가 끝이 났다. 하지만 최근에는 전략환경영향평가에서 소음환경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 원지동 이전이 한걸음도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지난해 국립의료원에 배정된 설계비 예산(현대화 사업 65억3,300만원·감염병전문병원 구축 18억200만원)은 쓰이지 못하고 불용 처리됐다. 사업이 지연됨에 따라 올해도 (감염병전문병원 구축)예산이 339억원에서 51억원으로 6배나 넘게 깎였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올해 국립중앙의료원 현대화 사업에 책정된 예산은 51억원으로, 당초 정부안인 339억2,100만원에서 288억원 이상이 삭감됐다.

감염병전문병원 강조 했건만…메르스 교훈 잊은 정부

이에 감염병 전문가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산 속도가 빨라지고, 확진환자수가 급격히 늘어날 경우 메르스 사태가 또 다시 재연될지 모른다는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특히 대규모 감염병 위기를 대비한 중앙 감염병전문병원 확충이 필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고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김우주 교수는 “정부가 메르스를 겪고 국가방역개선대책 중 하나로 감염병전문병원을 5개 권역으로 늘린다고 했으나 조선대병원만 지정됐을 뿐 당장 환자를 수용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메르스 때도 음압격리병상이 많이 부족해 그 때의 교훈을 통해 감염병전문병원이 마련되길 기대했는데 아직까지 안 됐다는 게 아쉬울 따름”이라고 했다.

김 교수는 “앞으로 환자가 늘어난다면 경증환자는 7~10일, 중증환자는 2~3주 이상 머무르게 된다”며 “어느 순간 음압격리병상이 포화돼 2015년 메르스 때처럼 환자들이 먼 곳까지 이동해 가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감염병전문병원은 (전문가들이) 그렇게 강조했음에도 불구하고 한 곳도 즉시 활용할 수 없다”며 “환자가 늘어난다면 음압격리병상을 찾아 시도를 넘나드는 상당히 어려운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대한감염학회도 “지난 2015년 메르스(MERS) 이후 정부는 민간 의료기관의 감염관리 수준을 짧은 시일 내 과감한 개혁을 통해 성공으로 이끌어 냈다”며 “하지만 음압 격리가 필요한 대규모 감염병 위기를 대비한 국가 중앙 감염병 전문병원은 5년이 경과돼 결국 새 위기상황에 봉착했음에도 그 약속이 이행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감염학회는 “감염병 위기상황에서는 확진자의 치료나 의심환자의 격리 시설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며 “더 이상 민간병원에 위탁한 국가지정 격리병상에만 의존할 수 없다. 대규모 감염병 위기는 언제 어떤 모습으로 다시 반복될지 모른다. 더 이상 미루지 말고 건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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