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side&人sight]ODA 전문가인 윤상철 국립중앙의료원 국제보건의료연구센터장

의사들은 누구나 한번쯤 슈바이처를 꿈꾼다. 해외의료봉사를 떠나는 이유도 잠시나마 슈바이처가 돼서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의로 시작한 해외의료봉사활동이 뜻하지 않게 그 나라 의료 생태계를 파괴시킬 수도 있다.

안과 전문의로서는 최초로 한국국제협력단(KOICA) 국제협력의사로 활동한 윤상철 국립중앙의료원 국제보건의료연구센터장은 현장에서 이런 안타까운 상황을 수없이 지켜봤다. 윤 센터장은 KOICA 국제협력의사로 지난 2007년부터 3년간 에티오피아에서 안과 분야 ODA(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 사업을 했으며 그 이후에도 말라위 실명예방사업을 진행하는 ‘Project BOM’에 참여하는 등 국제보건의료 활동을 꾸준히 하고 있다.

국립중앙의료원 윤상철 국제보건의료연구센터장은 최근 청년의사와 인터뷰에서 단기 해외의료봉사활동이 의도하지 않은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윤 센터장은 최근 본지와 인터뷰에서 현지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채 진행되는 단기 해외의료봉사활동의 위험성을 지적했다. 윤 센터장은 KOICA 국제협력의사로 에디오피아에 있을 때 안과 진료를 하는 단기 해외의료봉사활동으로 인해 에디오피아 안과 지원율이 떨어지는 현상을 경험했다. 해외의료봉사단이 때만 되면 정기적으로 와서 무료로 안과 진료를 해주기 때문에 환자들이 에디오피아 의사들에게 진료를 받지 않고 ‘외국인 의사’들을 기다린다는 것이다. 에디오피아 안과를 찾는 환자가 감소하면서 안과를 전공하겠다는 의사도 줄었다.

윤 센터장은 “해외의료봉사단이 1년이나 6개월에 한번씩 정기적으로 오다 보니 환자들이 외국인 의사를 기다린다. 외국인 의사가 더 잘 치료할 거라는 인식이 강하다”며 “무료로 치료해주는 사람들이 외부에서 들어오면 그 나라 의료시스템은 작동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윤 센터장은 “한 발 뒤로 물러 나서 보면 그 나라 환자들을 지속적으로 치료하고 돌보는 건 현지인들이다. 좋은 의도로 시작한 해외의료봉사활동이 의도치 않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했다.

윤 센터장은 “KOICA도 단기 의료봉사에 부정적이기 때문에 적절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면서 실질적으로 변화할 수 있도록 끌고 가고 있다. 하지만 민간에서 자발적으로 이뤄지는 해외의료봉사활동은 그렇지 못하다”며 공급자 중심의 시각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에디오피아에 에이즈(HIV) 환자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시립병원 의료진을 대상으로 감염예방교육을 한 해외의료봉사단을 그 예로 들었다.

윤 센터장은 “시립병원 의사 1명이 1년 동안 진료한 에이즈 환자가 한국 의사가 평생 본 환자 수보다 많을 것이다. 교육을 듣고 있던 에디오피아 의사들도 필요 없지만 외국인 친구를 만나는 게 좋아서 듣고 있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공자 앞에서 문자 쓴 격이라는 것이다.

선의로 하는 해외의료봉사활동이 좋은 결과를 낳으려면 철저한 사전 현지 조사가 필수라는 게 윤 센터장의 지적이다. 그들에게 정말 필요한 게 무엇인지 파악한 후 그에 맞춰 봉사활동을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단기 해외의료봉사활동일수록 사전 조사가 철저해야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게 현실이다.

윤 센터장은 “현지 교민 회장이나 잘 아는 한국 사람을 통해 수박 겉핥기 식으로 조사해서는 소용 없다. 전문가가 현지 의료인과 함께 현지 상황을 잘 파악해야 한다”며 “국제 보건 현장은 발리나 몰디브가 아니다. 단기 해외의료봉사활동이라면 현지에서 정말 필요한 게 무엇인지 철저히 조사해서 그에 맞는 체계적인 프로그램을 운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센터장은 “흔히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고 하는데 그 사람들에게 물고기가 필요한지부터 파악해야 한다”며 “해외의료봉사 계획을 세울 때 그 나라 보건의료 문제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에게 조언을 구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윤 센터장은 단기 해외의료봉사활동이 가져올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해 지적했지만 그 자체가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단기 해외의료봉사가 나쁘다는 게 절대 아니다. 의도와 다르게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걸 지적한 것이다. 오랜 기간 해외의료봉사를 할 의사가 얼마나 되겠는가. 장기 해외의료봉사활동만 장려하면 그 수가 극단적으로 줄 수밖에 없다. 단기 해외의료봉사일지라도 제대로 하자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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