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에는 돈이 든다① ‘0원’인 내시경 소독수가

중동호흡기증후군(MERS, 메르스) 사태에 C형간염 집단 감염 사태까지 발생하면서 의료기관 내 감염 관리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감염 관리는 환자 안전과도 직결되는 문제다. 환자안전법이 제정돼 시행을 앞두고 있을 만큼 환자 안전은 강조되고 있지만 의료제도의 현실이 이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지적이 많다. 중요하지만 비용은 많이 들고 효과는 눈에 띄지 않기 때문에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주지 않으면 한계가 있다. 이에 청년의사는 환자 안전 강화라는 이상과 현실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 진단하고 그 대책을 알아보고자 <안전에는 돈이 든다> 기획을 마련했다.

[청년의사 신문 송수연] 미국 UCLA(University of California, Los Angeles) 로널드레이건의료센터에서 지난 2014년 10월부터 2015년 1월까지 환자 7명이 슈퍼박테리아의 일종인 ‘카바페넴내성 장내세균’(CRE)에 감염돼 논란이 일었다. 감염원은 췌장·간 질환 진단과 치료를 위해 사용한 내시경이었다. 내시경 7개 중 2개가 슈퍼박테리아에 감염되었던 것이다. 미국 보건당국은 췌장암이나 간 질환 등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내시경은 일반 위내시경과는 달리 세척과 소독이 어려워 박테리아를 제대로 걸러내지 못했다고 했다.

내시경 소독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일깨워준 사건이다. 내시경을 이용한 검사와 시술이 늘면서 세척 및 소독의 중요성도 커지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의료 현실을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내시경 검사 비용으로 100만원 가량을 받고 있는 미국에서도 감염 사고가 발생하는데 별도 소독 수가 없이 5만원 정도인 수가로 모든 과정을 처리해야 하는 우리나라에서 감염 사고가 발생하지 않은 것은 천운이라는 말도 나온다.

내시경 1개 소독하는 데 40분

서울대병원 소화기내시경센터에서 내시경을 소독하는 모든 과정을 기자가 직접 확인하고 나니, 소독 수가가 ‘0원’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현재 내시경 소독에 드는 비용은 전액 병원이 부담하고 있다.

서울대병원 소화기내시경센터에는 내시경 소독만 전담하는 인력이 2명이며 자동세척기 8대를 보유하고 있다. 내시경 소독은 전세척(precleaning)→세척(cleaning)→소독(disinfection)→헹굼(rinsing)→건조(drying)→보관(storage) 단계로 진행됐다.

내시경 검사가 끝나자 그 자리에서 바로 효소세척액으로 내시경 표면 등에 붙은 이물질부터 제거했다. 이어 검사실 바로 옆에 있는 소독실로 가져가 분리 가능한 부품들을 모두 제거한 후 누수 검사를 진행했다. 누수 검사는 내시경의 겉과 속의 파손 유무를 검사하는 것으로 세척액으로 인한 파손의 진행을 줄이기 위해 내시경을 세척액에 담그기 전에 한다.

누수 검사를 마치자 솔 세척이 시작됐다. 조작 버튼 부위는 짧은 솔로, 내시경 내부는 긴 솔로 세척했다. 이때도 효소세척액을 사용했다. 5L짜리 효소세척액은 12만원 정도다. 내시경 내부는 총 세 방향으로 세척이 이뤄졌다. 흡인 밸브가 설치된 구멍에서 내시경 선단 방향과 유니버설 코드 방향으로, 또 조직 검사를 위한 겸자가 있는 부분부터 내시경 선단 방향으로 솔질이 5분 정도 진행됐다.

소화기내시경센터 김순정 수석기사는 “몸에서 나오는 성분은 단백질 성분이 많기 때문에 효소가 든 세척제를 사용해야 한다. 일반 세척제보다 단가가 높다”며 “소독에 사용하는 솔도 모두 일회용으로 한번 쓰고 버린다”고 말했다.

솔 세척을 끝낸 내시경은 자동세척기에 들어갔다. 서울대병원에서 사용하고 있는 자동세척기는 올림푸스 제품(OER-AW)으로 3,600만원 정도다. 이때 소독액이 들어간다. 대한소화기내시경학회는 식품의약품안전처, 미국 FDA, 유럽 CE, 일본 후생성 등이 인정한 기관에서 인증 받은 소독액을 사용하도록 하고 있다. 서울대병원은 자동세척기와 함께 소독액도 올림푸스 제품(아세아이드액)을 사용하고 있었다. 이 소독액 하나의 가격은 19만원 정도로 20회 정도 사용할 수 있으므로 내시경 1회 소독 시 소독액만 1만원 정도 들어간다는 게 소화기내시경센터의 설명이다.

김순정 수석기사는 “우리 병원은 기계에 착색이 안 되고 소독 후 냄새도 덜한 이 제품을 선택했지만 좀 비싸다”며 “이전에는 조금 싼 소독액을 써보기도 했지만 일하는 사람들이 냄새 때문에 버티질 못하더라”고 말했다. 그는 “대학병원 대부분이 안전성과 인체 유해 여부 등을 따져서 이 정도 수준의 소독액을 쓴다”고 했다.

자동세척기를 이용할 경우 소독과 헹굼까지 한꺼번에 진행되며 그 시간이 30분 정도 걸렸다. 만약 자동세척기가 아닌 수동으로 세척할 경우 솔 세척을 한 내시경을 소독액에 일정 시간 담가 놓은 후 정수된 물로 충분히 씻어내야 한다.

이렇게 소독과 헹굼 과정을 거친 후 내시경 표면은 부드러운 천으로 닦고 내부에는 알코올을 뿌려 건조시킨다. 알코올로 빠르게 건조시켜 세균 증식을 막기 위해서다.

내시경 1회 소독 시 소독액 값만 5,600원

소화기내시경학회는 내시경 세척 및 소독에 필요한 여러 장비와 기구들은 간접비용에 포함된다고 하더라도 소독액과 자동세척소독기는 100% 필수 재료와 장비로 직접 비용으로 산출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내시경 소독에서 가장 많이 소모되는 재료는 소독액으로, 일반적으로 많이 사용하는 것은 ‘Cidex-OPA’라는 제품이다. 이는 1갤런(약 3.8리터)에 4만원이고, 자동 세척기에 3.5갤런이 들어가므로 세척기에 소독액을 가득 채우는 데 14만원이 든다. 3.5갤런으로는 25개의 내시경을 세척할 수 있다. 즉, 내시경 1회 소독에 들어가는 소독액 값만 5,600원인 것이다.

여기에 자동세척기를 구입해 1일 10회씩 365일 사용한다고 가정하면 1회 소독당 342~958원의 감가상각이 발생한다. 소화기내시경학회는 여기에 인건비와 솔 등 소요재료 값 등을 더해 내시경 1회 소독 원가를 1만7,860원으로 산정했다.

하지만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학회가 산정한 원가의 절반도 안되는 6,400원을 내시경 소독 원가로 산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나마 심평원은 스스로 산출한 원가의 30% 정도인 1,900~2000원대로 소독 수가를 책정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소독액 비용만이라도 별도로 책정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자동세척기를 이용하든 수동으로 세척하든 필수적인 재료가 소독액인 만큼 이 부분은 원가로 보전해 줘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내시경을 사용하는 횟수가 적은 개원가에서 소독액 원가 보전 요구가 거세다.

개원가를 중심으로 구성된 대한위장내시경학회는 올해 역점 사업으로 소독액 원가 보상을 추진하고 있다. 위장내시경학회 김용범 회장은 “소독액은 유통 기한이 있기 때문에 오래 두고 쓸 수 없다”며 “내시경을 많이 하는 병원은 모르지만 하루에 한두 번 하는 개원가의 경우 내시경 건수에 따라 소독 수가를 책정해서 주면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내시경을 적게 하는 곳도 소독은 철저히 할 수 있도록 소독액은 정책 급여로 반드시 원가보전을 해줘야 한다”고 했다.



▲ 출처 : 대한소화기내시경학회 52회 세미나 자료집

“소독은 환자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

미국과 같은 내시경 감염 사고를 막기 위해서라도 이번 기회에 제대로 된 소독 수가를 책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소화기내시경학회 김용태 이사장은 “내시경 소독을 위해서는 소독액이나 장비 외에도 인력과 공간도 많이 필요하다”며 “정부는 소독 비용을 따로 책정하는 경우는 없다며 수술할 때 쓰는 칼 등을 예로 들어 이야기한다. 하지만 내시경 소독은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말했다. 김 이사장은 “내시경 소독은 환자 안전을 위해 지켜야 할 최소한의 안전장치”라며 “기본적인 것을 지킬 수 있도록 해주면서 환자 안전, 감염 관리 등을 강조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충북대병원 소화기내과 한정호 교수는 “내시경 세척과 소독은 국민 안전, 생명과 직결된 과제다. 건강보험의 한정된 재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지난 10년을 돌아보면 각종 보장성 강화가 효율적으로 사용됐는지 의문”이라며 “정작 기본적인 소독에 대한 수가는 인정하지 않거나 원가를 논하지도 못하는 상황이 지속되는 것은 생명의 가치를 존중하고자 하는 정부의 의지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건양대병원 소화기내과 구훈섭 교수는 “소화기 내시경 기기는 입 또는 항문을 통해 위장관 내로 삽입돼 점막과 접촉하는 의료기구다. 타액, 소화액, 분변, 혈액 등에 오염돼 각종 세균과 바이러스, 진균 및 항산성 세균 등이 이를 통해 전염될 수 있다”며 “내시경의 철저한 세척과 소독을 위해서는 여기에 필요한 재료와 기구, 공간, 인력 소모가 필연적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이에 대한 정부 차원의 적절한 비용 책정을 통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흑자인 건강보험재정 투입해서 파이 키워야”

흑자인 건강보험재정을 투입해서라도 환자 안전과 관련된 소독 수가 등에 대한 파이를 키워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소화기내시경학회 류지곤 총무기획이사는 “수가 신설이나 인상을 요구하면 결국은 의사들끼리 싸우게 된다. 전체 파이가 정해져 있어서 한쪽을 증액하면 다른 한쪽은 감액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며 “결국 어이없는 악순환이 계속될 뿐”이라고 말했다. 류 이사는 “건강보험 재정이 흑자라고 하는데 잘못된 것이다. 흑자인 건강보험재정을 투입해서라도 파이를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류 이사는 “그동안 내시경 소독은 환자들을 위해 의료기관들이 모두 부담해 왔지만 내시경 관련 수가도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있고 수면내시경도 건강보험을 적용하면 반토막 날 것이라고 한다”며 “내시경을 하면 할수록 손해를 보는 구조에서 소독 수가마저 제대로 반영해주지 않으면 앞으로는 누가 소독에 신경을 쓰겠느냐”고 말했다.

저작권자 © 청년의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