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욱의 블루하우스

[청년의사 신문 박형욱] 위헌법률심판과 같은 헌법재판은 통상 하나의 법률조항을 심판대상으로 한다. 그런데 하나의 법률조항이 위헌이냐 합헌이냐는 칼로 무를 베듯 명확한 것이 아니다. 위헌성의 정도가 완전히 선을 넘어 쉽게 위헌이라고 판단할 수 있는 경우도 있지만 위헌성은 있지만 위헌이라 단정할 수 있는 선에 못 미치는 경우도 많다.


어느 법률조항이 헌법 제15조 직업선택의 자유를 제한하는 정도가 100이라는 기준선을 넘어섰을 때 위헌이라고 가정하자. 한 법률조항이 직업선택의 자유를 제한하는 정도가 20이라면 당연히 합헌이다. 그런데 법률조항이 10개이고 개개의 법률조항이 직업선택의 자유를 제한하는 정도가 각각 20이라면 총체적인 제한의 정도는 200이 된다. 규제의 효과는 100을 훨씬 넘었지만 헌법재판소는 그런 총체적 효과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여러 규제가 누적되어 그 효과가 축적되고 위헌성이 가중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일정한 양적 축적의 결과 질적 전환이 이루어진다는 양질전환의 법칙처럼 규제가 쌓이고 쌓이면 그 규제의 대상이 공무원의 하부조직원인지 민간인인지 구별이 안 가는 상황까지 이른다.

의료분야는 규제가 넘치고 넘친다. 끝없는 규제 수요가 존재하다. 고 신해철 의료사고의 결과 의료사고를 낸 의사에 대해 형사재판에서 무죄판결이 내려질 때까지 진료를 중지시키자는 주장까지 있다.

통상 의료사고는 과실여부를 떠나 의료행위 중 예상치 못한 악결과가 발생하는 경우를 말한다. 의사의 과실이 없어도 환자의 상태 자체로 의료사고는 늘 발생할 수 있다. 그런데 의사의 과실여부가 판정되기도 전에 사실상 면허를 정지시킨다는 것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헌법상 무죄추정의 원칙을 의사에게만 유죄추정의 원칙으로 바꾸어 놓자는 이야기다. 설령 형사상 과실이 있어도 그것만으로 의사의 자격을 정지시킬 수는 없다. 사안을 객관적으로 조사하여 의사의 자질을 갖추지 못했는지를 평가하여 결정할 문제다. 문제는 그러한 기전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처럼 계속되는 규제 수요에는 일정한 명분이 있다. 많은 경우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 그러나 앞서 거론한 형태의 과도한 규제는 찬성하기 어렵다. 그런데 규제가 도입될 때는 정치적 과정에서 위헌성을 갖는 과도한 규제가 도입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어찌 되었건 개개의 규제는 그럴 듯하고 약간의 위헌성은 있지만 위헌이라고 단정할 수 있는 선에는 못 미치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이런 규제, 저런 규제가 쌓이면 그 총체적인 결과는 판이하게 달라진다. 보건복지부만 해도 얼마나 많은 과와 인원이 업무를 수행하는가. 한 사람이 한 가지의 규제만 신설해도 이 부서, 저 부서에서 만든 규제가 깔때기처럼 일선 의료기관에게 가중되어 온다. 또 국회의원은 얼마나 많은 법안을 만들어 대는가.

그런데 규제란 것은 일단 만들어지면 어지간해서는 없어지지 않는다. 담당공무원 입장에서는 규제를 완화했다가 부작용이라도 발생하면 모든 걸 덤터기 써야 한다. 누가 나서서 규제를 없애겠다고 하겠는가?

의과대학에서 보건의약관계법규를 가르치는 교수로서 매년 급변하는 관련 법령을 보고 놀라게 된다. 민법이나 형법과 비교하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빨리 너무 많이 변한다. 너무 많은 규제가 도입된다. 변호사로서 일한 경험에 비추어 보았을 때 변호사에게 가중되는 규제의 정도가 1이라면 의사에게 요구되는 규제의 정도는 100쯤 될 것이다. 그리고 그 규제는 계속 많아지고 축적되고 있다.

법무부와 달리 보건복지부는 의료인이나 의료기관을 공무원의 하부조직원 쯤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래서 재정투입을 통하여 바람직한 행태를 유도하기보다 주로 규제라는 칼을 휘둘러 의료인과 의료기관을 강제해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하나의 패턴으로 굳어져 있다.

합당한 정책추진의 모습은 아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면 마땅히 규제의 총량적 효과가 야기하는 부작용, 그 총체적 위헌성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문제는 조직적으로 규제를 도입하는 법적 구조는 강고하지만 과도한 규제를 없애고 합리화하는 업무에 관심을 기울이는 공무원은 거의 없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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