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엽 건양대병원 이비인후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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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의사 신문 청년의사]

올해 들어 아흔다섯 되시는 내 할머니.
여든을 넘기시면서 이리저리 몸이 편찮으셨다.
무릎이 아프다 하셨고.
속이 쓰리다 하셨고,
밤에 잠을 못 이뤄 힘들다 하셨고,
가끔은 새벽에 이불을 적셔 부끄러워하셨고,
결국 몇 해 전부터는 치매가 와서 나를 못 알아보곤 하신다.

그런데 치매가 막 시작되던 해, 정기적으로 약을 타러 병원에 모시고 가던 어느 날. 지난 달 약이 잔뜩 남아 있는 걸 보고서야 가족들은 할머니가 약을 제대로 못 챙겨 드신 걸 깨달았다.

문제는 그달,

할머니는
속이 아프다는 말씀을 하시지 않았고,
밤에 잠도 잘 주무셨고,

새벽에 실수를 하신 적도 없으며,
정상범위에서 약간씩 벗어나 있던 간 수치와 신장 수치도 정상으로 돌아왔다는 거다.

이후, 부모님이 내린 결론.

무릎이 아프다고 병원에 모시고 가니 진통소염제를 처방해줬고,
진통소염제를 드시니 속이 아팠고,
속이 아프니 잠을 제대로 못 주무셨고,
수면제가 추가되면서, 새벽에 이불을 적시는 일들이 생겼고,
이렇게 몇 달을 치료받고 나니, 간과 신장이 나빠지더라는 것.

결국, 의사들이 병을 만들어 병을 치료하더라는 말씀.

반박하고 싶었지만, 치매약을 제외한 모든 약을 중단한 할머니는 그 이후에도 고지혈증을 제외하곤 아주 건강하시다. (심지어 고지혈증도 나와 그저 비슷한 수준. 헐)

고백하건대, 진료실에서 만나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복약리스트를 보면 밥알 수 만큼 약알 수가 많은 분이 더러 계신다. 물론, 이유 없이 처방된 약이 없겠지만, 어쩌면 그분들도 의사들이 만든 병을 또 다른 의사가 치료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까지는 이상적인 고민이고.

어렵게 병원을 찾은 어르신을 약 없이 돌려보내는 것도 실제 필드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어르신들 뜻을 따르자니, 병 드리고 약 드리는 꼴이 될 것 같고. 그 뜻을 저버리자니 수익도 줄고 환자도 줄 것 같아 고민이라는 게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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