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방송서 부정적 이미지 부각…전문가들, "누군가에겐 생명의 기회"

[청년의사 신문 이혜선] # SBS 드라마 ‘애인있어요’의 배경이 되는 천년제약은 위장관치료제 ‘푸독신’의 임상시험 중 골밀도 저하라는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나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러나 회사 임원들은 이 사실을 은폐하고 임상시험을 지속하다 환자가 사망에 이른다. 이를 폭로하려고 한 연구원은 자살로 위장된 채 살해당한다.

#최근 방송된 MBC PD수첩 ‘임상시험의 빛과 그림자’편은 임상시험 참가의 위험성을 집중 조명했다. 방송에 따르면, 생물학적동등성시험 참여는 짧은 시간 고수익을 올리지만, 중도 하차 시 약속된 금액을 못 받기 때문에 부작용이 발생해도 참가자들이 이를 숨김으로써 건강을 해쳐 ‘피알바’라고 불린다. 다국적 제약사의 임상시험이 한국에서 많이 이뤄지는 것에도 문제를 제기했다. PD수첩은 서울이 전 세계 임상시험 건수 1위 도시이지만 임상시험에 참가한 환자들이 보호받고 있지 못하다며, 임상시험이 많이 진행되는 게 과연 좋아할 일이냐고 의문을 제기했다.

앞서 두 사례처럼 임상시험은 정말 위험하고 문제가 많을까. 또 임상시험에 참여한 환자들은 정말 보호를 받지 못할까. 뉴욕이나 도쿄 등의 세계적 도시들이 임상시험을 기피해서 서울에서 임상시험이 많이 진행된 걸까.

이에 대해 서울대병원 의생명연구원장 겸 임상시험센터장인 방영주 교수는 “과거에도 임상시험을 두고 ‘마루타’라고 하는 이야기가 있었다”며 “그러나 임상시험은 더 이상 생존가능성이 없는 환자 중 일부에게는 새로운 기회다. 실제로 임상시험에 참여해 10년 이상 생존한 환자도 있다. 부작용이 발생하는 일부 환자의 사례만을 두고 임상시험의 폐단을 지적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반박했다. 서울대병원 임상시험센터는 국내에서 임상시험을 가장 많이 하는 기관 중 한 곳이다.

한국임상시험산업본부에 따르면, 세계 임상시험 총 규모 순위에서 한국은 2010년 10위에서 2014년 7위로 상승했다. 1위는 미국, 2위는 독일, 3위는 영국이 차지했다. 도시별 임상시험 규모에선 서울이 독보적이다. 서울은 2011년 1위로 뛰어오른 후 2014년까지 이를 유지하고 있다. 2위는 휴스턴, 3위는 뉴욕, 4위는 런던 순이다.

한국, 특히 서울에서 임상시험이 많은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우수한 의료진과 체계화된 임상시험 시스템 등 임상시험 인프라를 첫손에 꼽는다. 여기에 임상시험 참여자들의 수준도 높고, 서울대병원·삼성서울병원·세브란스병원 등 초대형 병원들이 몰려 있어 다수 환자 모집에 용이할 뿐더러, 비용도 미국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하다는 것이 서울로 임상시험이 몰리는 이유라고 보고 있다.

글로벌 CRO(임상시험수탁기관, Contract Research Organization)인 ICON의 김종란 부사장은 본지와 인터뷰에서 “한국은 임상연구와 관련해 아시아 국가들 중에서 가장 능률화되고 효율적인 규제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역시 글로벌 CRO인 퀸타일즈의 아난드 타마라트남 아태지역 총괄 부사장 역시 “한국은 병원 시설 및 기술, 연구진의 수준 등 모든 면에서 훌륭하다. 아시아 지역에서 한국이 1위다”라며 “한국은 미국과 유럽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훌륭한 인프라를 가지고 있다. IT가 발달됐고 자체 제약사도 있다. 또 정부가 제약기업들을 지원하고 있어 한국의 신약을 세계 시장에 내놓을 때 신약 개발 성공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국가”라고 평했다.

이런 점 때문에 보건복지부 역시 임상시험을 하나의 산업군으로 보고 지난 2015년 8월, 임상시험 5대 강국 도약을 천명하며 ‘임상시험 글로벌 경쟁력 강화 방안’을 수립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임상시험 통합정보시스템 및 네트워크 구축, 임상시험 유치 활성화를 위해 임상시험 전 과정에 걸친 원스톱 서비스(One-Stop Service) 제공 및 비즈니스 편의시설을 지원해 국내 미진출 글로벌 제약기업의 국내 진입을 유도키로 했다. 또한 국내 CRO 활성화를 위해 기관 인증 및 컨설팅을 통한 특화 전략으로 글로벌 임상 유치에 나설 계획 등을 발표했다.

여전히 임상시험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상반응 등의 이유로 불신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의료계 및 제약회사 등의 관계자들은 이같은 시선은 오해라고 입을 모은다.

최근 방영된 PD수첩에서 임상시험에 대한 부정적인 면이 방송되자 제약업계 관계자들은 기자에게 “사실과 다르게 왜곡된 부분이 많다”고 토로했다.

국내 A제약사 관계자는 “생동성시험 참가자들이 이를 ‘피알바’라고 지칭한다는 것은 그럴 수 있다고 하더라도 방송내용은 너무 왜곡돼 있다”고 지적했다. 일부 시민단체의 이야기를 여과 없이 그대로 내보냈다는 것이다. 방송에서 다뤄진 것처럼 생동성시험이나 임상시험을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프레임은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법에서도 생동성시험 시 적정한 사례를 주도록 정해져 있고, 3개월 내 생동성시험에 재참여가 불가능하게 하는 것은 참여자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라는 것이다.


일부 참가자들이 부작용을 보고하지 않거나 금지돼 있는 흡연, 음주 등을 하는 것은 참여자 본인의 건강을 고려하지 않은 행동이며 약물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평가하는 데도 부정확한 데이터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방송을 본 B제약사 관계자는 “방송만 보면 제약사, 의사 모두 세상에서 가장 나쁜 집단인 것처럼 보인다”면서 “임상시험의 부정적인 면만을 부각하며 크게 왜곡했다”고 했다.

다국적 제약사들의 국내 임상을 규제하고 국내 제약사를 지원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도 동의할 수 없다는 이도 있었다.

C제약사 관계자는 “다국적 제약사들이 국내에서 임상시험을 하는 것을 나쁘게 볼 게 아니다”라면서 “신약 개발 시 의료진과 임상시험 디자인을 논의하곤 하는데 이때 다국가 임상을 많이 진행한 경험이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신약개발에 투자를 많이 하고 있는 D제약사 관계자 역시 “신약개발에 임상시험은 필수다. 임상시험이 없으면 신약 자체가 존재할 수 없다. 국내 제약사들의 신약개발 열기가 뜨거운데 부정적인 면이 부각되면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서울만 임상 1위, 글로벌 격차 커

다국적 제약사 관계자 역시 같은 입장이다. 다국적 제약사 한 관계자는 “PD수첩에 나온 내용은 시민단체 입장에서만 바라본 잘못된 시각”이라며 “다국적 제약사가 임상을 많이 해 국내 기업이 불이익을 받는다고 하는데 (임상시험에 대한) 기본 지식을 갖고 있나 의심스럽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사실 우리나라는 임상시험을 많이 하는 곳이 아니다. 국내에서 진행되는 임상시험은 전 세계를 기준으로 보면 극히 일부다. 해외국가들은 지역적으로 고루 발달돼있어서 임상시험 숫자가 퍼져있다”며 “서울이 도시 임상으로 보면 1위지만, 국내에서 서울에 임상을 위한 인프라가 집중돼있는 특징 때문에 두드러지게 나타난 것”이라고 했다.

서울이 임상시험 진행 1위라는 것만 두고 한국이 임상시험을 많이 하고 있다고 볼 수 없다는 의미다.

서울대병원 임상시험센터 방영주 교수도 같은 의견을 제시했다. 방 교수는 “인구 백 만 명 당 임상시험수를 보면, 미국이 단연 1위이고 캐나다, 영국, 프랑스, 일본 등 선진국이 상위권이다. 우리나라 임상시험 진행 건수가 세계 10위권이고 서울은 도시기준으로 1위라고 하지만 아직 격차는 크다”고 했다.

또한 다국적 제약사의 국내 임상을 규제하고 국내 제약사의 임상시험을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에도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우리나라 전체 임상시험 중 국내 회사가 개발한 후보물질 임상시험은 상대적으로 적다. 이는 우리나라 임상시험 역량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국내 기업이 개발하는 신약의 수가 다국적 제약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최근에 국내 제약사들의 임상시험이 과거에 비해 훨씬 효율적으로 이뤄지고 있고, 신약개발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는 것은 다국적 임상시험을 유치하면서 우리나라 임상시험의 능력과 질이 선진국 수준으로 올라섰기 때문이라고 했다.

저소득층 임상 참여는 비윤리적?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8월 임상시험 5대강국을 위한 ‘임상시험 글로벌 경쟁력 방안’을 발표했다. 그 내용 중에는 건강보험급여의 확대·적용을 통해 저소득층 또는 난치성 질환자들의 임상시험 참여를 확대하겠다는 방안이 포함돼 있다. 연구자 임상시험의 시험군과 대조군에 대해 통상적인 요양급여 비용 전체를 적용토록 허용해 신약접근성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저소득층에게 임상시험 참여 기회를 늘리는 것은 임상시험으로 돈을 벌라고 하는 것과 같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주장 역시 임상시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데서 비롯됐다는 지적이다.

방 교수는 “임상시험의 중요한 3대 원칙 중 하나는 ‘임상시험의 잠재적 혜택은 환자의 신분에 상관없이 동일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아무래도 사회적 지위가 높은 층이 임상시험 접근에 더 유리하다. 정부의 저소득층 지원은 이러한 잠재적 불평등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라고 했다.

복지부 최종희 서기관 역시 PD수첩과의 인터뷰에서 이 부분에 대해 명확히 설명했다.

그는 “저소득층 또는 난치성 질환자들의 임상시험 참여 확대는 약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본인이 부담할 수 없는 경우, 저소득층 환자가 임상시험에 참여해 비용부담 없이 치료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날 수 있다는 취지”라며 “생동성시험 시 참여자에게 적정한 사례를 주도록 돼 있는데 그 부분을 오해한 것 같다”고 했다.

임상시험 참여자 보호 지속 강화

국내 임상시험 수준이 향상되고 있는 것은 임상시험 참여자에 대한 보호 장치가 지속적으로 마련되고 있다는 점에서도 엿볼 수 있다.

한국은 지난 2000년 1월 ICH(International Conference on Harmonization)의 GCP (Good Clinical Practice)에 준하는 국내 임상시험관리기준(KGCP)을 마련한 이후, 지속적으로 국제적 기준에 맞도록 제도를 보완해오고 있다.

2013년 11월에는 ‘임상시험 피해자 보상에 대한 규약 및 절차 마련을 위한 가이드라인’이 마련돼 임상시험 피해자에 대한 보상원칙(기준), 보상 제외기준, 보상 절차 등이 마련됐으며, 또한 2014년 3월에는 임상시험 및 대상자 보호프로그램(Human Research Protection Program, HRPP) 가이드라인도 마련했다.

구체적인 내용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지만 임상시험 대상자를 보호하기 위한 가이드라인이 마련된 됐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는 게 식약처 관계자의 말이다.

식약처 관계자는 “장기계획 중 하나가 국내에 임상시험 대상자 보호프로그램 인증제를 도입하는 것이다. 현재 도입하려는 인증제는 미국의 인증제를 참고한 것이며, 의무사항은 아니지만 다국가 임상을 진행하는 주체나 임상시험 참여자들이 인증을 받은 곳을 선호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이미 (임상시험을 많이 하고 있는) 빅5병원들은 미국 임상시험 및 대상자 보호프로그램 인증협회(Association for the Accreditation of Human Research Protection Program, AAHRPP)로부터 인증을 받았다”고 했다.

또한 식약처는 지난해 4월, 1상 임상에 참여한 자는 생동성시험과 마찬가지로 3개월 내 다른 임상시험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의약품 임상시험 계획 승인에 관한 규정’을 개정했다. 병원 등 임상시험실시기관은 임상시험계획서에 따라 시험 실시 2주일 전까지 시험대상자의 중복 참여 여부를 식약처(안전평가원 약효동등성과)를 통해 확인해 사전에 제외시켜야 한다.

올해부터는 임상시험 종사자들에 대한 전문성과 윤리성 향상을 위한 의무교육도 실시한다. 임상시험 등 종사자는 매년 임상시험 관련 교육을 40시간 이내 범위에서 이수해야 한다. 주요 내용은 전문성 향상에 필요한 전문지식, 임상시험 대상자 보호에 필요한 윤리적 소양 등이다.

병원에서도 임상시험 참여자를 별도 관리하고 있다. 서울대병원은 임상시험 참여자가 응급실에 올 경우 우선 진료를 받도록 하고 있으며, 임상시험윤리센터를 임상시험센터와 독립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임상시험윤리센터는 임상시험 피험자의안전과 권리를 보장하는 업무를 맡고 있다. 국내에서 임상시험을 많이 진행하는 빅5병원 등은 이런 기구를 마련해놓고 있다.


임상시험, 균형 잡힌 시각 필요

국내 임상시험승인건수는 1998년 42건에 불과했으나 2010년 439건, 2011년 503건, 2012년 670건, 2013년 607건, 2014년 652건, 2015년 657건으로 꾸준히 증가했다. 특히 서울은 지난 2011년부터 2014년까지 4년 연속 전 세계에서 임상시험이 가장 많이 수행된 도시 1위로 선정될 만큼 많은 임상시험이 실시되고 있다.

임상시험이 늘어나는 이유는 다국적 제약사가 실시하는 다국가 임상시험과 국내 제약사들의 신약 개발이 활발해졌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에는 국내 제약사들의 임상시험계획 승인이 활발해지고 있다. 지난 2015년 국내에서 실시된 임상시험계획 승인건수를 살펴보면, 종근당이 총 30건의 임상시험계획을 승인받으며 전체에서 두 번째로 많은 임상시험계획을 승인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외에도 20위권 내에 한미약품, 일동제약, CJ헬스케어 등 국내 제약사들이 포함돼 있다.

지난해 한미약품이 굵직한 다국적 제약사들에게 개발 중인 약물을 높은 가격에 기술 수출한 이후 국내에서는 신약개발에 대한 열기가 뜨거운 상태다. 임상시험은 양면성이 있는 만큼 균형잡힌 시각이 필요하다는 게 관계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다만, 부정적인 부분이 부각돼 긍정적인 면까지 희석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했다.

다국적의약산업협회(KRPIA) 관계자는 “신약에 대한 임상시험을 통해서 국내 환자들은 치료비에 대한 부담 없이 치료 기회를 얻을 수가 있다. 희귀질환이나 암에서는 치료의 기회를 얻기 위해 임상시험에 참가하고자 외국으로 가는 국내 환자들도 있다”면서 “임상시험은 굉장히 조심스럽게 진행된다. 임상에 실패한다면 천문학적 비용이 투입된 신약을 개발하는 데 차질이 빚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국적 제약사들이 임상시험 국가를 선정할 때 신중한 이유다. 더구나 이제는 국내 교수들이 임상 책임연구자(PI)를 맡을 정도로 임상경험이 축적됐다. 다국적 제약사의 임상시험이 없었다면 국내 임상시험의 역량이 이렇게 높아졌을 것이라고 단정할 순 없다”고 했다.

방 교수는 “임상시험은 생존 가능성이 없는 이에게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또한 국내 신약개발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임상시험의 질은 양적팽창과 함께 개선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선진국과 작은 차이가 발생한다. 외국 임상을 더 유치해서 배워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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