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훈의 제4의 불 - 융합과 미래

[청년의사 신문 정지훈] 미국 항공우주국(NASA)과 구글 퀀텀 인공지능 연구소 등은 지난 2015년 12월8일 양자컴퓨터인 ‘D웨이브 2X’ 실물을 공개했다. 이 컴퓨터는 일반 컴퓨터에 비해 1억배 이상 빠른 처리 속도를 구현한다고 하는데, 이는 지금까지 발표된 양자컴퓨터 가운데 가장 빠른 속도다.


구글과 나사는 2013년 5월부터 양자컴퓨터 개발을 위해 협력을 해왔는데, 구글은 최근 각광받고 있는 기계학습 분야에 양자컴퓨팅을 도입해 획기적인 성과를 낸다는 목표로 양자컴퓨터를 개발하고 있다. 양자컴퓨터 원리를 처음 구상한 사람은 양자역학의 거장 리처드 파인만이며, 옥스퍼드대의 데이비드 도이치 박사가 작동원리를 고안했다. 일반적인 컴퓨터는 트랜지스터로 만들어진 게이트를 논리 로직으로 사용하고, 이들의 조합으로 연산을 하게 되는데, 양자컴퓨터는 연산법칙에 양자원리를 이용하는 것을 말한다.

양자컴퓨터가 일반적인 컴퓨터보다 빠른 것은 잘못된 솔루션들을 서로 상쇄하여 사라지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모든 영역에 이런 특징을 접목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이런 연산방식이 잘 풀어낼 수 있는 종류의 문제들이 있다. 그렇다면, 양자컴퓨터가 많이 도입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까?

현재 상당수의 암호화 기술은 소인수분해의 계산상 난점을 활용한다. 대표적인 것들이 공개키암호화 기술들이다. 공개키암호화 방식은 많은 메신저 등에서 이용되는 표준 암호화 기법으로 암호해독이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컴퓨터가 연산으로 풀어내는데 사실상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는 것을 이용한 암호화 방식이다. 그런데 양자컴퓨터는 소인수분해 등의 계산을 하는데 연산속도를 혁명적으로 증가시킨다. 보통 컴퓨터가 수백 년이 걸리는 소인수분해 연산이 양자컴퓨터로는 몇 시간에서 몇 분에 끝나기 때문에 이 경우에는 불가능하다고 여겨질 정도로 오래 걸리는 연산이 가능한 시간의 범위 안으로 떨어지게 된다. 이렇게 암호해독이 가능한 양자컴퓨터가 저렴하게 상용화된다면, 기존의 암호체계 자체를 완전히 새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각국 정부가 양자컴퓨팅 기술을 개발하게 된다면 이제는 굳이 메신저 등에 대한 감청을 하기 위해서 업체의 협조를 구하지 않고, 그냥 인터넷에서 감시 대상의 암호화된 메시지를 가로채더라도 그 메시지의 개인 키를 몇 시간에서 몇 분이면 해독해서 볼 수가 있게 된다. 유사하게 현재의 금융시스템 등에도 큰 파장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양자컴퓨터가 상용화될 경우에는 이에 대비한 새로운 암호체계와 보안체계가 구축되어야 한다.

또 한 가지 양자컴퓨터의 활용 영역으로 주목받고 있는 것이 인공지능 분야다. 실제로 구글도 나사와 양자컴퓨터 개발을 진행하면서 인공지능과 연관된 기계학습 분야에서의 응용을 가장 중요한 목표라고 밝히기도 하였다.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양자컴퓨팅을 활용한 양자학습이 기계학습의 학습 성능을 향상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 알려지고 있고, 특히 작업이 복잡할수록 양자 효과에 의한 학습속도는 점점 더 빨라질 수 있다는 것이 밝혀졌기 때문에, 현재와 같이 방대한 데이터가 지속적으로 더욱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이를 활용하여 학습하는 방식이 더욱 빨라지게 된다면 빠르고 효율적으로 학습능력을 갖추고 외부환경에 다양하게 대응하는 인공지능의 탄생이 현실화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일부 전문가들은 양자컴퓨터가 현재까지는 구현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강인공지능(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을 탄생시키는 초석이 되는 기술이 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지난 2015년 12월의 구글과 나사의 양자컴퓨터 발표는 여러모로 양자컴퓨터의 실용화 가능성을 알렸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그렇지만, 아직까지는 실용화까지 여전히 많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기본적으로 양자를 통제하는 기술은 쉽게 상용화가 가능한 기술이 아니다. 현재 큐비트의 유지를 위해 초전도체를 이용하기 때문에 제조 단가가 무척 높으며, 이를 제대로 유지하는 데에도 어마어마한 비용이 들어간다. 또한 완전히 다른 방식의 연산을 해야 하기 때문에 소프트웨어도 큰 문제다. 예를 들어, 구글의 의도대로 인공지능 기계학습에 양자컴퓨터를 활용하기 위해서는 양자 원리를 활용한 양자학습 알고리즘이 개발되어야 한다. 이런 알고리즘이 없다면, 원리에 충실한 양자컴퓨터가 있다고 하더라도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

정리하자면 이번 구글과 나사의 발표는 미래의 양자컴퓨터 상용화라는 측면에서 중대한 진전이라는 것은 틀림이 없다. 그렇지만, 아직까지 이들을 만나보기 위해서는 풀어야 할 문제들이 많기 때문에, 지나친 낙관은 금물이다. 확실한 것은 양자컴퓨터가 가져올 큰 변화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이해하고, 대비는 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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