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사 신문 정승원] 국내 최초로 존엄사를 인정한 일명 김할머니 사건이 진료비 소송까지 막을 내리며 일단락됐다. 대법원의 연명의료 중단 결정에 따라 인공호흡기를 제거했더라도 김할머니의 사망까지 발생한 진료비를 유족 측이 세브란스병원에 지급해야 한다는 선고가 나온 것이다.

판결문을 보면 이번 소송 제기 자체에 의문이 생긴다. 1심과 2심 재판에 따르면, 이번 사건에서 다룬 연명의료의 범위는 인공호흡기 부착에 한정된다. 즉 법원이 연명의료 중단을 명했다는 것은 인공호흡기 부착을 제외한 다른 치료를 지속하라는 뜻이 된다. 그런데 유족 측은 김할머니의 연명의료 중단 결정이 나면서 환자·보호자와 병원 측의 의료계약이 끝났다고 봤다. 유족 측의 주장대로라면 인공호흡기 제거 후에 환자와 병원 간 의료계약이 끝났기 때문에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으면 안 된다. 그런데 김할머니는 인공호흡기 제거 후에도 200여일 간 병원에서 수액과 영양공급 등을 받았다.

재판부도 연명의료 판결 당시 연명의료 중단의 범위가 인공호흡기에 한정된다는 점에 주목했다. 당시 판결로 중단하게 된 연명의료는 인공호흡기 제거일 뿐 수액주사나 영양공급 등은 판결 이후에도 지속돼야 한다고 본 것이다.

김할머니 사건은 국내 최초로 법원에서 존엄사를 인정한 사례다. 때문에 사건의 당사자들도 존엄사에 대한 인식이 분명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연명의료 판결의 취지는 김할머니가 인공호흡기 장치에 의존해 억지로 생명을 연장하기 않도록 한 것일 뿐 영양이나 수액공급 등 최소한의 장치도 배제하라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인공호흡기 중단 이후 발생한 진료비도 유족 측이 내야 한다. 인공호흡기 제거와 함께 모든 치료를 전부 중단해 김할머니가 사망했다면, 병원이나 의사 측에 법적 책임을 묻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도 없지 않나.

이번 판결은 연명의료 중단 이후 발생할 수 있는 민사상 책임공방 시 판례가 될 것이다. 하지만 명심해야 한다. 연명의료를 중단한 환자가 살았다고 그 책임을 의사와 병원에 물을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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