反유디치과법 이전 개설됐던 L병원, 급여정지 취소소송 승소했지만 폐업L병원 원장 "유죄 판결 받지도 않았는데 왜 범죄인 취급인가" 분통

[청년의사 신문 송수연] 경기도 의정부시에서 재활병원으로 이름을 알린 L병원이 어느 날 갑자기 문을 닫았다. L병원 원장인 K씨도 수백억원에 달하는 빚더미에 앉았으며 범법자가 될 위기에 놓였다.

K씨와 L병원의 운명을 가른 것은 지난 2012년 2월 시행된 일명 ‘반(反)유디치과법’이다. 의료인은 어떤 명목으로도 둘 이상의 의료기관을 개설·운영할 수 없도록 한 의료법 제33조 8항은 이중개설금지법, 1인1개소법 등으로도 불린다.

지난 2011년 11월 ‘합법적인 절차’에 의해 개설됐던 L병원이 의료법 개정으로 한 순간에 위법한 병원이 됐다. K씨가 운영하고 있는 병원은 L병원 하나였지만 동업한 의사 J씨가 또 다른 병원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이중개설금지 위반으로 적발된 것이다. 1년 넘게 법정다툼을 벌이고 있는 K씨는 범법자로 내몰린 현 상황이 아직도 이해하기 힘들다고 했다.


재활병원으로 입지 굳혔던 L병원

K씨는 지난 2011년 11월 선배 의사 J씨와 경기도 의정부시에 재활병원인 L병원을 개설했다. 병원 개설은 쉽지 않았다. 건물 매입에 인테리어, 의료장비 구입 등 할 일도 많았고 들어가는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J씨는 L병원 건물을 매입하면서 은행으로부터 90억원을 대출받았으며 K씨도 120억원 정도를 대출받았다. L병원은 K씨 명의로 개설됐다.

K씨는 제대로 된 재활병원을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재활치료는 물론 환자들이 일상생활을 원활하게 할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도 마련해 진행했다. 병원 직원들은 휴일까지 반납하고 몸이 불편한 환자들과 함께 지하철 타는 연습도 했다. 재활치료를 받는 환자들이 평상시에도 자유롭게 외출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였다. 김장철이 되면 환자들은 물론 지역민과도 함께 김장을 담그는 행사도 진행했다.

노력이 통했는지 L병원을 찾는 환자들이 늘었고 입소문도 났다. 187병상인 L병원의 병상가동률은 항상 90% 이상이었으며 개원한 지 몇 년 만에 자리도 잡았다.

경찰 조사만으로 급여비 지급 중단한 공단

그러던 어느 날, K씨는 경찰로부터 조사 받으러 오라는 통보를 받았다. 의료법 위반 혐의로 고발됐다고 했다. 2014년 9월경이었다. 하지만 당시 경찰 조사에서는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그런데 한 달 뒤 다시 경찰 조사를 받게 됐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을 통해 의료법 제33조 8항을 위반했다는 민원이 접수됐다는 것이다.

경찰 조사가 끝나고 사건이 검찰로 송치되자 공단은 요양급여비 지급을 중단했다(2014년 10월 31일). 그 금액만 9억원에 달했다. 건강보험 진료를 주로 하는 요양기관이었던 L병원은 공단의 요양급여비 지급이 중단되자 당장 경영난에 빠졌다. 120명이 넘는 직원들의 월급이 체불되기 시작했다. 의약품 대금 등도 지불할 수 없었다.

K씨는 공단 지사를 찾아가 유죄라는 확정 판결도 나지 않았는데 요양급여비 지급을 중단한 것은 부당하다고 항의했지만 소용없었다. 그렇게 K씨의 법정다툼이 시작됐다

임금체불로 형사고소까지

K씨와 L병원 직원들은 어떻게든 병원을 살려보려고 노력했다. 요양급여비 지급이 중단되자 2014년 11월부터 월급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직원들은 병원에 나와 환자들을 돌봤다. 그렇게 3개월 동안 병원을 유지했지만 한계가 있었다. K씨는 병원을 닫기로 결정했고 직원 임금 체불로 형사고소까지 당했다. 그러나 직원들 대부분은 K씨가 형사처벌을 받는 것을 원치 않는다며 소취하서를 제출했다.

K씨는 “요양급여비 지급이 중단되면서 직원들이 제일 큰 피해를 입었다. 3개월 동안 월급을 받지 못했고 퇴직금도 못 받았다”며 “직원들도 월급을 일부러 미지급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에 끝까지 많이 도와줬다”고 말했다. K씨는 “직원들도 이런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더라”며 “그들도 한 순간에 직장을 잃게 된 것”이라고 했다.

L병원에는 K씨 포함 의사 3명, 간호사 35명, 물리치료사 60명, 행정직원 29명 등 총 127명이 근무했다.

“아는 사람의 시체를 보는 기분”

K씨는 병원 문을 닫기로 했지만 그 절차도 간단하지 않았다. 일단 입원해 있는 환자들을 모두 다른 병원으로 전원시켜야 했다. 당시 L병원에 입원해 있던 환자는 180명이었다. K씨와 직원들은 올해 2월 1일부터 환자들을 만나 상황을 설명하고 입원할 병원을 섭외해 알려줬다. 그 과정에서 일부 환자들은 지역 보건당국에 부당한 조치라며 민원을 제기하기도 했다.

K씨는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건 환자들 아니겠느냐. 환자들로서도 황당한 일이 벌어진 것”이라며 “다른 병원으로 가야 한다고 하니 화를 내는 분들이 많았다. 하지만 상황을 설명하니 이해하더라. 보건소에 찾아가 항의하거나 방송국에 제보하는 환자들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환자들을 다른 병원으로 모두 이송하는 데 한 달 정도 걸렸다. 하루 20명 정도 오는 외래 환자들에게도 사정을 말하고 소견서와 처방전을 써서 다른 병원을 안내했다.

K씨는 환자들을 다른 병원으로 보내고 두 달 정도 휴업한 뒤 지난 4월 30일부로 L병원을 폐업했다. 현재 L병원은 은행으로 넘어가 공매가 진행되고 있다. 문을 닫고 압류 딱지 등이 여기저기 붙어있는 병원을 보는 K씨는 그 심정을 표현할 길이 없다고 했다.

“3년 정도 병원을 운영했다. 건물은 무생물이지만 병원 자체는 생명체다. 사람들이 왔다갔다 하고 그 안에서 생활하는 환자들이 있다. 입원환자들에게는 생활 터전이기도 하다. 환자들을 모두 퇴원시키고 텅 빈 병원을 둘러보는 데 마치 아는 사람의 시체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숨이 다 빠져나간 시체를 보는 기분이었다.”

회생 신청도 못해…“왜 범죄인 취급인가”


▲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국민건강보험공단 전경 모습 김지환 기자

병원 문을 닫은 K씨에게 남은 것은 수백억원에 달하는 빚뿐이다. 최근 공단을 대상으로 제기한 요양급여비 거부 처분 취소 소송에서 승소했지만 받지 못한 급여비 9억원 가량은 다시 환수 금액으로 넘어간다는 게 공단 측의 설명이다.

K씨는 이 외에도 L병원에 지급된 요양급여비(약 93억원)를 환수한다는 통보를 받았으며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도 47억원에 달하는 산재보험급여비 환수 통보를 받았다. L병원을 개설할 때 받았던 대출금 등을 합치면 K씨가 갚아야 할 부채가 250억원에 달하는 셈이다. K씨는 감당하지 못하는 빚 때문에 회생 절차를 밟으려 했으나 이마저도 여의치 않았다고 한다.

“공단의 환수금은 준조세채권에 속하는 것이어서 탕감이나 협상이 되는 채무가 아니라 회생 신청을 해도 받아들여질지 미지수라고 하더라. 온갖 채무 독촉에 시달리고 있지만 회생 신청도 못하는 처지다. 이 채무를 어떻게 변제할지 계획조차 세울 수 없다. 이 채무를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모르겠다.”

K씨는 무엇보다 유죄 판결을 받기도 전에 범죄인 취급하며 요양급여비 지급을 중단한 공단의 조치를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K씨는 “검찰이 기소도 하지 않았고 유죄 판결도 나지 않았는데 공단이 왜 요양급여비 지급을 중단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지급 거부를 미뤄달라고 했을 때 공단 측에서는 자기들이 받아야 하는 돈이 100억원 가까이 되는데, 지급 거부를 통해 일부의 채권을 확보해 놓는 거라고 하더라. 그러면서 의사들에게 나중에 환수 처분을 내려봤자 재산을 은닉해 놓기 때문에 받을 길이 없다고 했다”고 전했다.

K씨는 “아직 판결이 나지도 않았는데 나는 100억원을 빚진 사람이고 재산을 은닉할 사람이 됐더라”며 “법치국가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고 말했다. K씨는 “지난 3년 동안 어떻게 하면 환자들을 제대로 진료할 수 있을까 고민했던 것이 한 순간에 무의미하게 무너졌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K씨가 공단을 대상으로 제기한 요양급여비 환수 처분 취소 소송에 대한 선고는 오는 24일이다.

저작권자 © 청년의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